42. 별은 뜨고 별은 지고.
제 148 화. 아름다운 여인이 말이 없다니.
도화(桃花) 부인 식규(息嬀)는 여러 해를 초문왕(楚文王)과 살면서도,
멸망한 식(息) 나라를 잊지 못하여, 한 번도 그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그렇지 않은가?
언제나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웃으며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초문왕(楚文王)은 그대를 너무 사랑하거늘!
그대는 나를 보고 한 번도 왜 웃지를 않는가?
도화(桃花)야! 웃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십구나!
초문왕(楚文王)은 식후(息侯)의 부인이었던 식규(息嬀)를 빼앗기
위해 식(息) 나라를 멸망시키면서까지 무리하게 자기의 부인으로
삼았으며, 그런 후에는 너무 어여뻐하며 사랑하게 되었다.
도화(桃花) 부인은 무얼 하고 있소?
그동안 웅간(熊艱)과 웅운(熊惲)을 낳지 않았소?
대관절 나와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오?
오늘은 그 답을 듣고야 말 것이오!
초문왕(楚文王)의 채근(採根)에도 불구하고 도화 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소리 내지 않으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대관절 나와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울지만 말고 오늘은 꼭 답을 하여야 하오!
아녀자의 몸으로 두 남자를 섬겼으니!
무슨 면목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이까?
어여쁜 식규(息嬀)가 다시 입을 다물고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리자,
초문왕은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을 보게 되면서, 가슴이 미어지며
찢어지는 듯 아파져 오자, 혼자서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부인은 너무 슬퍼하지 마오!
이 모든 것은 채애공(蔡哀公) 때문이 아니겠소?
내가 부인의 원수를 갚아주고 말겠소!
초문왕(楚文王)은 자신의 잘 못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한 여인의
눈물에 군사를 일으켜 채(蔡) 나라를 쳐들어가게 되었다.
느닷없는 초(楚)의 침공을 당하게 된 채애공(蔡哀公)은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면서 몹시 고심하다가 육단(肉袒)을 생각했다.
육단(肉袒)은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항복할 때
행하는 의식으로, 웃통을 벗고, 목에는 밧줄을 메고,
입에는 구슬을 물고, 회초리 한 묶음을 등에 지고,
손에는 한 마리의 양(羊)을 이끌고 적장 앞으로
나아가, 승리한 쪽의 처분에 따르겠다는 뜻이 된다.
혹은 신하가 그 군주에게 죄를 청하며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을 전하는 의식이다.
채애공(蔡哀公)은 윗옷을 벗고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성 밖으로
나가, 초문왕(楚文王) 앞에 꿇어 엎드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왕이시여. 신 투단(鬪丹) 이옵니다.
채애공(蔡哀公)이 사죄와 복종을 하겠다며
윗옷을 벗고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꿇어 엎드려 용서를 빌고 있나이다.
한 나라의 군주가 육단(肉袒)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치욕(恥辱)을 받는 것이옵니다.
왕이시여, 이는 반드시 죽일 수가 없나이다.
저놈은 장난삼아 형제를 죽게 한 아주 고약한 놈이다.
왕이시여. 용서하여 주소서.
왕이시여. 살려만 주시옵소서.
부고(府庫)에 있는 보화(寶貨)를 모두 다 드리겠나이다.
명심하라. 다음에는 용서치 않으리라!
채애공(蔡哀公)의 이러한 행동에 초문왕(楚文王)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채(蔡)의 부고(府庫)에 있는 보화만을 빼앗아 돌아갔다.
채애공(蔡哀公)이 초문왕(楚文王)에게
육단(肉袒)으로 용서를 빌었다 하지요?
그렇소이다! 나도 소문을 들었소이다.
중원(中原) 천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초(楚) 나라가 강대해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중원(中原)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초(楚) 나라를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제(齊) 나라 밖에 업소이다.
우리가 모두 제(齊) 나라와 동맹을 맺어
각자 자기 나라를 지켜내야 하지 않겠소이까?
채애공(蔡哀公)이 육단(肉袒)의 모습으로 용서를 빌었다는 사실은
중원의 제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초(楚)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원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초문왕(楚文王)의 행패에 각 나라 제후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중원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제환공(齊桓公)에게 의지하려는 분위기가 일기 시작하였다.
송(宋)과 진(陳) 나라는 초(楚)와 가까운바
초(楚) 나라를 반드시 견제(牽制) 해야 하오.
제(齊) 나라만이 초(楚) 나라를 막을 수 있소이다.
제환공이 중원 회맹의 맹주가 되었으니
이제 제환공에게 우리가 다 같이 뭉쳐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제후들 스스로 반초(反楚) 동맹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제(齊) 나라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으므로, 동맹을 더욱
공고히 구축(構築) 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초(楚) 나라의 행패를 막아야 하나이다.
다음 해 봄에 위(衛) 나라 견(甄) 땅에 제후들을
모두 불러 다시 모이도록 하시옵소서.
제환공(齊桓公)은 마침내 견(甄) 땅에 모든 제후를 불러, 삽혈(歃血)
행사로써 동맹을 맺었으므로, 중원의 제후들로부터 맹주(盟主)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왕실의 주희왕(周僖王)도 선(單) 나라 선백(單伯)을 파견해
줌으로써, 이 견(甄) 땅의 회합을 정식으로 인정하였다.
어지러움이 시작된 춘추시대 이래로, 첫 번째 패공(覇公)이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 된 것이다. 이때가 제환공 재위 7년 만의 일이다.
중보(仲父). 패공(覇公)은 되었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소?
주공. 아직도 어지러운 세상이옵니다.
주공께서 패공(覇公)은 되었사오나
중원(中原)의 제후들은 자기들의 이득을 위하여
주공을 우두머리로 내세운 것에 불과할 뿐이옵니다.
때에 따라 상황이 변하면, 제후들은 언제든지
동맹에서 탈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천하를 이끌 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으며
또한, 천하를 제압할 군사력도 부족하옵니다.
주공,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주공, 진정한 패업(覇業)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역사는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일으켜 세우려는 세력들 간의 끊임없는 충돌인 것입니다.
관중(管仲)은 패공(霸公)에 오른 것에 만족해하는 제환공에게 이렇게
간하면서,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주공. 초(楚) 나라를 주시해야 하옵니다!
중보(仲父)는 초(楚) 나라에 대해 말해보시오?
주공, 기존의 질서를 지켜내려는 중원의 여러 나라와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이룩하려는 욕심으로
온 힘을 쏟아 붓고 있는 초(楚)의 초문왕(楚文王)과
이제는 충돌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나이다.
양측의 힘이 팽팽해질수록, 이 시대는
더욱 어지러움으로 치달을 수 있사옵니다.
주공께서 중원의 맹주로 부상(浮上) 하였사오나?
아직 초(楚) 나라를 제압한 것은 아니옵니다.
오히려 이리 떼 같은 초(楚) 나라의 야성을
더욱 자극해 놓았을 뿐으로!
이를 잘 파악하는 초(楚) 나라도 더더욱
중원 진출의 야망을 더욱 키워나갈 것입니다.
초(楚) 나라로 인하여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오니
이에 대해 대비를 꼭 하셔야만 하옵니다.
중보(仲父),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겠소?
주공, 아무래도 정(鄭) 나라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때의 정여공(鄭厲公)은 역성(櫟城)에 머물면서, 정백(鄭伯)의 자리를
되찾고자, 수시로 초(楚)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도움을 받으려다가
뒤늦게 제(齊) 나라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정백(鄭伯)의 자리에 올랐다.
정여공(鄭厲公)이 제(齊) 나라의 도움을 받아
신정(新鄭)을 접수하고 정백(鄭伯)에 올랐다고 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초(楚) 나라를 배신하고 회맹에 가담하여
제환공(齊桓公)을 맹주로 세웠다는 것이 사실인가?
왕이시여, 그러하옵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찌 하루아침에 배신한단 말인가?
정여공(鄭厲公)은 제(齊) 나라만 알고
우리 초(楚) 나라가 있는 것은 모르는구나.
괘씸하도다. 그냥 둘 수 없도다!
내 반드시 정(鄭) 나라를 정벌하고 말리라!
초문왕(楚文王)은 일절 조공도 바치지 않고, 사자를 보내지 않는
정(鄭) 나라의 정여공(鄭厲公)에게 분노하였으므로, 이에 또 한
차례 군사를 일으켜 정(鄭) 나라를 향해 쳐들어가게 되었다.
제 149 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아랴.
'춘추 열국지( 101∼200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50 화. 섣부른 욕심으로 죽는가. (0) | 2023.06.07 |
---|---|
제 149 화. 자신의 죽음을 어찌 아랴. (0) | 2023.06.04 |
제 147 화. 지은 만큼 죗값을 받는가. (0) | 2023.06.03 |
제 146 화. 17년 만에 복위하는가. (0) | 2023.06.03 |
제 145 화. 지극정성에 하늘도 감명 받나. (0) | 202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