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 화. 농담이 죽음을 부르는가.
남궁장만(南宮長萬)은 무거운 창을 높이 던질 뿐만 아니라, 떨어질
때도 한 손으로 서슴없이 척척 받아내며, 감히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실력이라, 구경하는 사람들도 박수갈채를 치며 탄성을 질렀다.
아 하. 열 번째 던집니다.
휙, 하하. 열 번 다 받아냈소!
아니 열 번 중에 한 번도 실수를 안 한다니
정말 배알이 꼬이는구나!
남궁장만이 두 손을 번쩍 쳐들고 크게 포효하면서 승리를 외치자,
송민공은 은근히 벨이 틀어지며 시기하는 마음이 일었다.
박국(博局)을 이리 가져오너라!
자, 지금부터 박국(博局)을 두도록 하자.
주공, 몇 판을 두는 겁니까?
척극(擲戟) 놀이를 열 번 하였으니
박국(博局)도 열 판을 둬야 하지 않겠소?
주공, 좋습니다!
주공, 척극(擲戟) 놀이를 열 번 이겼으니!
주공, 박국(博局)은 한판만 이겨도 되는 거지요?
허 어, 그렇게 되는구먼!
그러나 한판마다 지는 사람은 밥그릇만큼 큰
저 금잔(金盞)에 벌주를 가득 채워 마시는 거요!
박국(博局)은 송민공(宋閔公)이 고수(高手)이므로, 이에 남궁장만은
평소에 열판을 두면 두세 판은 이겼으므로 자신이 있었다.
주공, 알겠습니다!
제가 먼저 돌을 놓겠습니다!
박국(博局) 이란, 옛날에 씨줄과 날줄로 12줄을 쳐놓고 두는 바둑으로,
그 바둑판은 매우 두터운 나무판으로 되어있었다.
12줄 위에 돌을 이리저리 놓으며 상대방 말을 잡기도
하고, 집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남궁장만은 이미 척극(擲戟) 놀이에서 열판을 모두 이겼으므로,
박국(博局)에서 단 한판만이라도 이기면 승리하는 것으로 아주
쉽게 생각하여 자신만만하여졌다.
허 어 어. 다섯 판이나 지다니?
으흐흐. 어이 취한다!
허 어, 다섯 잔째가 아니겠소?
남궁장만 장수. 견딜 만하겠소?
남궁장만은 이날 따라 다섯 판을 모두 패하고, 다섯 잔의 벌주를
마시게 되니, 독한 술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 어, 여섯 번이나 졌소?
남궁장만 장수. 이제 항복하시오?
뭔 소리요? 아직도 네 판이나 남았소!
끝까지 두어야 하지요?
나는 열 번의 척극(擲戟 ) 놀이를 하였잖소?
한판만 이겨도 내가 승리하는데 왜 그만두자는 거요?
죄수 놈이 고집도 세구먼!
남궁장만은 박국(博局)에서 한판만 이겨도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둘 것을 고집하였으나, 이미 술에 취하여 숨이 가빠지니 자세가
흐트러졌으며 말도 거칠어지고 바둑판의 돌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지면 아홉 판째가 되오!
너무 취했는데 이제 항복하시오!
아직 끝나지도 않았잖소?
어 흠, 노(魯) 나라에 포로가 되었던 자가
어찌 감히 과인을 이길 수 있겠는가?
허어, 죄수가 되더니 고집만 세졌구나!
옥살이하며 고집만 키운 것이냐?
송민공이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낄낄대며
비웃게 되니, 남궁장만은 바짝 약이 올라 대꾸도 못 하면서, 술에
취하여 숨을 거칠게 내뿜으며 박국(博局) 판만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때 밖에서 궁인이 들어와 조심스럽게 아뢰는 일이 생겼다.
주공, 잠시 말씀드리겠나이다.
무슨 일이냐? 어서 해보아라!
주공. 왕실에서 사신이 왔사옵니다.
무슨 일러 왔다더냐?
주장왕(周莊王)이 세상을 떠나고
새 왕이 즉위하셨다고 하옵니다.
새 왕이 즉위하셨다면 마땅히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여야 하겠구나!
왕실의 주장왕(周莊王)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태자 호제(胡齊)가
즉위하여 주희왕(周僖王)이 되었다는 소식으로, 이때가 기원전
682년이며 송민공 7년이고 제환공 재위 4년의 가을이었다.
궁인이 보고 올리는 말을 듣게 된 남궁장만은 취한 중에도 고개를
들어 송민공(宋閔公)을 바라보며 간청하듯 말하였다.
주공.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남궁장만은 아직 낙양(洛陽)의 번화한
거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하였나이다.
주공, 제가 한 번 다녀오면 어떻겠습니까?
취중에서도 남궁장만이 꼭 가고 싶어 간절히 바라며 아뢰었으나,
이때 송민공(宋閔公)은 크게 비웃으며 또 놀려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서니
어찌 포로가 되었던 죄수를
사신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더냐?
이 말에 모여 있던 궁인들이 낄낄대며 웃어대니, 남궁장만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이 분노로 가득차며 터질 듯 붉어졌다.
마침내 남궁장만(南宮長萬)은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야. 이놈 아! 죄수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아느냐?
이 죄수 놈이 술에 취하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송민공(宋閔公)은 화가나 곁에 놓여있던 창을 들고 힘껏 찔렀으나,
술에 취했다고는 하나? 남궁장만은 척극(擲戟)의 명인답게 창끝을
날렵하게 피하면서, 앞에 놓여있던 무거운 박국(博局) 판을 번쩍
집어 들더니 송민공(宋閔公)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말았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송민공은 장작처럼 쓰러졌으나
남궁장만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쓰러진
송민공의 배 위에 올라타자마자
쇳덩이 같은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후려쳤다.
구경하던 궁인들이 뇌수가 터진 송민공(宋閔公)의 머리를 보게
되자, 너무 끔찍스러워 대경실색하게 되었으며, 모두 비명을
내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남궁장만(南宮長萬)은 주먹질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을 그때는
송민공의 머리에서 하얀 뇌수가 피와 범벅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궁장만은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린 걸 알게 되나? 이미
두 눈에서는 퍼런 인광이 뿜어져 나오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엄청난 일이 한순간에 벌어지다 보니
모두 놀라 달아나고 버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말리려 드는 사람도 없었으며
이미 늦어버린 때라 말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남궁장만은 어떠한 판단도 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으며, 창을
들고 이궁(離宮) 문을 나서면서 병거를 몰아, 상구성(商丘城)으로
돌아갔으며, 잠시 조당의 조문(朝門) 앞에 서 있게 된다.
남궁장만 장수. 왜 조문(朝門) 앞에 서 있는 거요?
주공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무도한 놈이 예법을 모르기에 내가 죽여 버렸소!
허 어. 장수가 많이 취하셨구려!
이 구목(仇牧)에게 장난하지 마시오?
장난이 아니오! 난 취하지 않았소!
내 손을 보면 알 것이 아니오.
아니 온 손에 피투성이가 아니오?
아니 정말이구나. 이거 큰일 났구나!
이놈아! 네 놈이 주공을 죽였단 말이야!
주군을 죽이고 어찌 살기를 바라느냐?
구목(仇牧)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보며 그의 말이 농담(弄談)이
아니란 걸 알고는 기겁을 하며 들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갈겼다.
이놈아, 어찌 주공을 죽일 수 있단 말이냐?
이놈아 내 칼을 받아라!
남궁장만은 들고 있던 창을 내던지면서, 주먹으로 구목(仇牧)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니 구목(仇牧)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즉사했다.
범같이 빠르며 너무 힘이 센 장수 남궁장만이
두 사람이나 죽이며 피를 보고 나니,
눈에서는 붉은 불꽃이 더욱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남궁장만은 송민공(宋閔公)과 구목(仇牧)을 죽이면서, 피를 본
맹수가 되어 창(槍)을 꼬나잡고 씩씩거리며,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태재(太宰) 나리, 큰일 났습니다.
왜, 무슨 일이더냐?
남궁장만 장수가 주공을 죽이고
대부 구목(仇牧)까지, 죽였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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