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1 화. 강상, 고향을 떠나는가.

서 휴 2023. 3. 7. 20:49

    1. 강태공의 사상과 이념.

 

제 1 화. 강상, 고향을 떠나는가.

 

       누나. 이제 우린 둘뿐인 거야?

       그래. 다 돌아가시고 우리 둘뿐이란다.

 

       누나.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이제 어머님도 돌아가셨으니

       우리 둘만이 살아가야 해!

 

       이 고향에서는 먹고 살 수 없게 되었구나!

       다른 곳에서 품이라도 팔며 먹고 살아야겠어. 

 

       동생 상(尙)아, 이젠 가자!

       누나, 어디로 가는 거야?

       어쩌니, 멀긴 하지만 외할머니댁으로 가보자.

 

       상(尙)아, 너는 공부를 많이 하고 싶겠지만,

       남들처럼 스승님을 모실 수가 없구나!

 

       형편이 어려워 힘들겠지만,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理致)를 혼자서 배우며 혼자서 깨달아야 한다.

 

       내 동생, 상(尙)아!

       아버님이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실 거야?

 

       아버님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사람은 한 번 살다가 간다고 하셨어.

 

       한번 살다 간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시었어!

 

       자기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고 변함없이

       꿋꿋이 이어가야 성공한다고 하시었지!

 

       내 동생, 상(尙) 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용기와 희망을 절대로 잃어선 안 된다!

 

성(姓)은 곧 여(女)와 생(生)이니, 모계사회(母系社會)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姓)을 받음은, 그 여자(女)가 낳은(生), 그 여자의

자식이란 뜻이 된다.

 

       강(姜)이라는 글자는 양(羊)과 여(女)로 이루어졌으니,

       강(姜)에 대한 시조(始祖)를 찾아 올라가게 된다면

       그 먼 옛날, 양(羊)을 기르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양(羊)을 기르던 여인이 뼈가 굵은 여(呂)라는

       남자를 만나 자식을 낳게 되자,

       그 자식은 여씨(呂氏)가 되기도 하여,

 

       이름이 상(尙)이라면, 여상(呂尙)또는

       강상(姜尙)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옛날엔 여자의 자식인 강상(姜尙)으로 많이 불린.것 같다.

 

       점점 인구가 많아지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한 사람의 이름을 둘로 나누어 부르기가 불편하여

       성(姓)과 씨(氏)는 하나로 합해지게 되면서,

       오늘날의 성씨(姓氏)가 되었다.

 

하늘에서 신(神)이 내려와 땅에서 자식을 낳게 되면, 성이나 이름

뒤에 반드시 씨(氏)를 붙인다. 이는 하늘의 자식이란 뜻이 된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역사는 전설과 신화로 이어지며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기록이 되고, 유물이 발견되어 이를 증명하여 주게 된다.

 

놀랍게도, 불과 1백여 년 전에 중국 허난성 안양현 소둔촌 은허(殷墟)

땅의 유적에서, 갑골 문자 8천여 자를 발견하게 되며, 그중에 3천여

자를 해독함으로써, 은(殷)나라가 있었다고 밝혀졌다.

 

       은(殷)나라는 곧 상(商) 나라를 말한다.

       하(夏)나 상(商)나라 역시 그 옛날 환웅(桓雄.18대 ) 시대

       여러 제후국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 우리 역사에 나타나며

       이들 모두가 유물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중국인들의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내용이나

       그들 스스로 써나간 많은 사서(史書)의 내용과 같았다.

 

중국의 많은 사서(史書)에는 그들 중국의 문명의 창시자라 부르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자(孔子)까지도

모두 동이족(東夷族)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표방하는 환인(桓因. 7대), 

        환웅(桓雄.18대 ), 단군(檀君.47대) 시대가 열리며,

        우리는 이를 모두 고조선() 이라 부른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하늘의 명령이며,

이는 인간의 가치를 맨 먼저 앞세우라는 뜻이 된다.

 

        하늘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천손족(天孫族)은

        고조선()을 일으키면서, 천문(天文)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최초의 문명을 일으켰다.

 

이 천손족(天孫族)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인구가 팽창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퍼져나가게 되며, 황하(黃河) 유역으로 떠나간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과 섞이게 되면서, 그들이 본 동쪽 사람들은 

활을 아주 잘 쏜다며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이때의 동이족(東夷族)은 정통성을 지켜나갔기에,

        황하(黃河) 유역과 남방의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하며, 

        모두가 우러러보면서 존중하였다고 한다..

 

이(夷) 자는 하늘의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활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의 둥글고 큰마음이 동이족(東夷族)의 가슴에

들어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따라, 본 열국지의 지명이나, 사람들의 이름에

       이(夷) 자를 즐겨 쓰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동이족(東夷族)이라는 이름은 중국(中國)인들이 고조선()

사람들의 후예를 자기들과 구분하기 위해 쓰는 명칭이다.

 

     고조선()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으로는

     신시(神市), 배달(倍達), 청구(靑丘)가 있다.

 

      고조선()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부여( )와 고구려(高句麗)가 되고

 

      고조선()을 세운 건국자의 이름을 따서

      백제(百濟)가 세워지게 되며,

 

      고조선()의 호칭인 묘민(苗民)을 따서

      그 후예인 묘예(苗裔) 족이라며

      신라(新羅=대륙의 신라)가 세워졌다.

 

저마다 천손족(天孫族)의 후예로서 환웅(桓雄) 시대에서 시작된 걸

나타내나, 정통성을 가져오지 못한 중국 사람들은 별개로 자기들의

시조를, 환웅(桓雄) 시대 때인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쓴  주요한 사서(史書)에 고조선()이 

       곧 자기들의 조상이라며, 그 뿌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2권 제1편에 따르면 황하 유역의 서쪽에서

주(周) 나라를 세웠던 희씨(姬氏)는 환웅(桓雄시대 제5대 천황인 

태우의(太虞儀)의 12번째 아들인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에서

시작되었다고 적혀있다.

 

       주(周) 나라를 세운 희씨(姬氏)가,  곧 그들 스스로

       천손족(天孫族)의 후예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주(周) 나라는 희씨(姬氏) 왕조로, 중국 역사가 아니라

       이는 곧 우리 옛 조선(古朝鮮) 역사의 일부분인 것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時代)의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항상, 이상적인 인간 즉, 군자(君子)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동이(東夷) 나라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배우며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옛날 기후의 변화에 따라 사막이 생기고 또한 추워졌으며, 인구는

늘어나면서, 고조선()의  어느 부족이든 간에 먹을 걸 찾아

점차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흩어지게 되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황하(黃河) 유역의 평야 지대인

       중원(中原)과 남방(南方) 쪽으로 옮겨가며 살았으나, 

 

       그 들은 타민족과 섞이면서 서로간의 이해타산으로

       싸움을 벌이게 되는 등으로, 밀리는 사람들은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면서 남방계에 흡수되게 된다.

 

       남방(南方) 쪽으로 옮겨간 사람들은 화하족(華夏族)에

       섞이게 되며, 태족(傣族)의 방계(傍系)를 이루게 되었다.

 

       화하족(華夏族)은 남방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하였으므로, 북방의 동이족(東夷族)과 문화 양식이

       다르며, 언어체계도 알타이어가 아닌 남방 계통으로

       티벳어 계통의 한장어(漢藏語)를 구사하게 되었다.

 

       이들은 춘추시대에 이르러서야 화하족(華夏族)으로

       불리고, 춘추시대 이후에는 제하(諸夏)라고도 칭했다.

 

       점차 화하(華夏)와 제하(諸夏) 등의 옛 명칭을 버리고

       자기들은 스스로 한족(漢族)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夏). 은(殷). 주(周) 나라도 모두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이다.

황하(黃河) 일대는 그들이 말하는 동이족(東夷族)이 서로 나라를

세우고, 서로 지배했기 때문에 황하(黃河) 유역 일대는

동이족(東夷族)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진(秦)과 한(漢) 대를 거치면서 미개한 화하족(華夏族)이

       더욱 대거 유입되면서, 옛날부터 고조선()에서

       이어져가던 고유 전통이 대부분 무너지게 된다.

 

       한족(漢族)은 동이족(東夷族)이 쇠약해지자,

       황하(黃河)의 평야 지대인 중원(中原)에서 다시

       번창하게 되면서, 점차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夷) 자를 오랑캐 이(夷) 자를 만들어 왜곡시킨 것은 수(隋)와

그다음의 당(唐)나라가 고구려(高句麗)를 침공하였다가 무참히

패배하면서, 지금의 북경(北京) 이하 지대까지 쫒겨 내려가게

되었으며, 그때 당(唐)나라의 재정은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치욕적인 패배의 수치심을 덮기 위해, 내치(內治)를

       다지면서, 그들의 사상에 맞추어 역사서를 써나갔다.

 

       이때 동이족(東夷族)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고

       오랑캐라 부르며, 폄하(貶下)하는 의미를 많이 담았다.

 

제 2 화. 강상, 조가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