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 화. 허욕은 허욕으로 끝나는가.
주공. 대부 도숙堵叔 이옵니다.
주공, 진작에 강화講和를 맺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렵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초군楚軍이 눈앞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강화講和를 청할 여가도 없게 되었사오니
주공께서는 서둘러 동구桐丘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도숙堵叔은 경망스럽게 떠들지 마시라.
그대는 왜 항복과 도피만을 생각하는가.
그대는 주공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주공. 신 숙첨叔詹에게 모두 맡겨 주시옵소서.
숙첨叔詹은 정문공鄭文公에게서 승낙을 받자, 무장한 군사들을
신정성新鄭城의 내성 안에 매복시켜놓고, 대담무쌍大膽無雙 하게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밖에서 모두 잘 들여다보게 하였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주공. 이것은 이른바 공성空城의 계計 입니다.
아울러 백성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후일 삼국시대의 명 전략가인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서성西城의
성문城門을 활짝 열어놓고 성루에 올라가 거문고를 뜯음으로써
위군魏軍 장수인 사마의司馬懿를 스스로 물러가게 하였는데
바로 이때의 숙첨叔詹이 쓴 계략計略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투어강鬪御疆 장수님. 정탐 병입니다.
신정성新鄭城의 내성內城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무슨 말인가. 어서 가보자.
허 어. 참으로 이상하구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군鄭軍의 움직임이 전혀 없구나.
우리 보고 마음대로 들어오라는 것이 아니냐.
이건 반드시 우리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계책計策 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병사는 경솔히 나가지 마라.
중군中軍이 올 때까지 진채陣寨 만을 세우도록 하라.
선봉장으로 가장 먼저 외성外城의 순문純門을 통과한 초楚 나라
장수인 투어강鬪御疆은 내성內城 앞에 이르러, 의외의 광경에
주춤하며, 영윤인 자원子元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영윤令尹 임. 이제 도착하십니까.
왜 무슨 일이 있소.
정군鄭軍의 동태가 이상합니다.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정군鄭軍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보고 맘대로 성안에 들어오라 합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어서 가보도록 합시다.
자원子元은 투어강鬪御疆과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신정성新鄭城의
동태를 살펴보다가 이외의 광경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런 동정이 없기는커녕
성벽에는 깃발들이 정연하게 꽂혀 있고
무장한 군사들이 성벽 위에 숲처럼 늘어서 있구나.
아니. 어쩜 저럴 수가 있습니까.
저 많은 군사가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정鄭 나라는 뛰어난 지략가智略家가 많다고 하더니
과연 저들의 계책은 측량하기가 정말 어렵구나.
쉽사리 공격하지 말고, 정군鄭軍의 동태를 살펴보아
약점을 탐지한 후에 공격하도록 하자.
자원은 신정성의 광경을 바라보며 여기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돌아가 도화부인을 어떻게 대할까를 먼저 염려하게 되어,
과감하게 공격하지 못하고 좋은 기회만을 잡으려 기다리게 된다.
영윤令尹 임.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제환공齊桓公이 송宋 과 노魯의 군사들과 함께
정鄭 나라를 구원하러 오는 중이랍니다.
투어강鬪御疆,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정탐 병들의 보고이옵니다.
아니 정말이오. 이거 큰일 났구나.
영윤令尹 임, 투어강鬪御疆 입니다.
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제환공齊桓公이 우리의 귀로歸路 를 끊으면
우리는 앞뒤에서 공격받게 됩니다.
허 참, 그렇게 될 수도 있겠도다.
허 긴, 진陳 나라 쪽으로 돌아오면 퇴로가 막히고 말지.
투어강鬪御疆 장수, 우리가 이번에
정鄭 나라 도성의 외성까지 쳐들어가 갔으니
이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겠소.
자. 모두 이긴 것으로 하고 돌아가도록 합시다.
후퇴 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언제 덮칠지 모르는 적군의 기습이오.
모든 군사에게 알리시오.
말에 매달린 방울을 모조리 떼어내고
입에는 함매銜枚를 하며 조심스럽게 철군합시다.
자원子元은 한 달 동안이나 정군鄭軍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한번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환공齊桓公이 송宋 과 노魯 나라
군사들과 연합군聯合軍을 만들어 구원군으로 오고 있다고 하자.
다잡은 걸 놓쳤다는 듯이 크게 아쉬워하면서도,
초군楚軍이 승리 했다고 큰소리를 치고는,
전군에 철군하도록 비밀 명령을 내렸다.
그는 정군鄭軍의 추격에 대비하여, 마치 초군楚軍이 계속 머물러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밤을 새워 정鄭 나라를 떠나가고 말았다.
정경正卿 숙첨叔瞻 어른.
초군楚軍의 군막이 뭔가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오.
자, 성루城樓에 올라가 봅시다.
허 허, 그렇군, 저건 빈 군막이 분명하오.
초楚 나라 군사는 이미 다 달아나고 말았소.
저것이 빈 군막이라는 것을 어찌 아십니까.
군막이란 군사들이 거처하는 곳이므로
당연히 움직임이 많고 기세가 진동振動 합니다.
자, 다들 자세히 보시 오.
새 떼들이 잔뜩 모여 놀고 있지 않소이까.
빈 군막이 아니라면 어찌 겁 많은 새들이
군막 위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겠소이까.
부장副將은 어서 빨리 가 확인하고 오너라.
정경正卿 나리. 확인하여보니 초군楚軍은 이미
모두 철수하여 버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제환공齊桓公이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모양이오.
틀림없이 초楚 나라 영윤令尹 자원子元이
그 소식을 먼저 듣고 달아난 것이 분명하오.
정경 나리. 정탐 병이옵니다.
제齊 나라가 송宋과 노魯, 두 나라와 함께
우리나라를 도우러 달려오는 중이라 합니다.
정탐 병들의 보고에 정鄭 나라의 신료 들과 군사들은 한 결같이
숙첨叔詹의 뛰어난 지혜에 감탄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모두 다
그의 말이라면 믿고 따르게 되었다.
초楚 나라 장수將帥 들은 다 모이시오.
이번에 정鄭 나라 도성의 외성外城까지
쳐들어가 점령하고 돌아왔으니
이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자, 장수將帥 들의 생각은 어떻소.
자. 모두 이긴 것으로 하고 돌아가도록 합시다.
밤새 철수하여 멀리왔던 자원子元은 정鄭 나라 국경을 완전하게
벗어나자,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군처럼 북과 종을 울리면서
의기양양意氣揚揚 하게 영성郢城으로 돌아왔다.
선군先君의 군부인君夫人 께 아뢰오.
영윤令尹께서 정鄭 나라를 용감하게 치시고
이제 막 돌아오셨다고 보고를 올리라 하옵니다.
그런가. 승리하고 돌아왔으면
먼저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참전한 군사들에게 상벌을 밝혀주며
그다음으로 태묘太廟에 고誥 하여
선왕先王의 영혼靈魂을 위로하면 되는 일이거늘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미망인에게
먼저 보고하는 것이냐.
도화부인桃花夫人의 차가운 반응에 자원子元은 몹시 당황하였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더구나 얼마 안 가서 승리하였다는
말이 거짓임이 군사들의 입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정군鄭軍과 싸워 보지도 않고 돌아왔단다
제군齊軍이 정鄭 나라를 구원하러 오지도 않았는데
헛소문에 겁을 먹고 돌아온 것이란다.
이 같은 소문이 널리 퍼지자, 청년이 된 초성왕楚成王 뿐만 아니라,
도화부인과 조정의 신료들 마저도 영윤令尹 자원子元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의심의 눈초리로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허 어, 나를 믿지 않는다고, 좋다.
이 정도에서 물러날 내가 아니로다.
그렇다면 왕위를 빼앗기에 앞서, 먼저
도화부인의 몸부터 정복하면 꼼짝 못 하리라.
방금 뭐라고 하였느냐.
도화부인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고 하였느냐.
허, 거참, 마침 잘되었도다.
문병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예 내궁內宮으로 들어가
숙식하며, 기어이 도화부인을 정복하고 말리라.
친위親衛 군사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궁을 엄중하게 지켜야 한다.
누구도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도화부인桃花夫人이 병病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자원子元은
문병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아예 내궁으로 들어가 숙식까지 하면서,
친위대로 하여금 내궁을 엄중히 지키게 하였다.
이는 곧바로 소문이 났으며, 강직한 대부 투렴鬪廉이 소문을
듣자마자, 즉시 자원子元에게 따지겠다며 내궁으로 들어갔다.
수염이 많이 길었구나.
머리를 감고 수염도 깎아보자.
영윤令尹 께서는 무얼 하시오.
누구인가.
사사射師 인 투렴鬪廉 입니다.
영윤令尹 어른. 신하 된 자로서
어찌 내궁에서 수염을 깎고 있는 것이오.
어서 궁실宮室 밖으로 나가도록 하시오.
내궁內宮은 내 집이나 마찬가지다.
그대, 투렴鬪廉은 아무 상관하지 말라.
영윤令尹이 아무리 선왕先王의 동생이라 하지만
동생도 신하는 신하가 아니겠소.
신하는 신하로서 지킬 법도가 있는 법이오.
어찌 미망인未亡人이 계시는 내궁內宮까지 들어와
함부러 거처를 마련할 수 있더란 말이오.
투렴鬪廉 아. 네 이놈아.
너는 사사射師 로써 활터나 잘 관리하지!
주제넘게 여기까지 왜 들어왔느냐.
초楚 나라 국사國事가 내 손안에 들어있거늘
네깟 놈이 무엇이기에 간섭하려 하는 것이냐.
투렴鬪廉 아. 네 이놈아.
썩 물러가지 못하겠는가.
영윤令尹이 먼저 내궁內宮에서 물러나시오.
네놈은 내 말을 안 듣는구나.
애들아. 안 되겠다.
저 투렴鬪廉에게 쇠고랑을 채워서
저쪽 작은 방에다가 가두어 두어라.
투렴鬪廉이 물러서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자원은 분노를 터트리며
투렴鬪廉을 작은 방에 가둬버렸다.
이 소식은 곧바로 신료들에게 퍼져나갔으며, 도화부인도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분노하게 되며, 한참 궁리 끝에 얼마 전에 죽은
투백비鬪伯比의 아들을 부르는 것이다.
투곡어토 鬪穀於菟는 무얼 하는가.
투곡어토 鬪穀於菟, 그대는 속히 궁으로 들어와
왕실의 어지러움을 바로잡도록 하라.
왕이시여. 신 투곡어토鬪穀於菟 이옵니다.
선왕先王의 군부인께서 비밀지령을 주시었나이다.
영윤令尹인 자원子元을 몰아내라 하옵니다.
과인도 더는 참을 수가 없도다.
투곡어토 鬪穀於菟는 자원子元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신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나이다.
왕이시여, 아무 염려 마시옵소서.
투곡어토鬪穀於菟는 도화부인桃花夫人의 비밀지령이 떨어지자,
또한, 초성왕楚成王 에게서 승낙을 받자마자, 그날 밤으로 형제인
투오鬪梧와 그리고, 투어강鬪御疆은 아들 투반鬪班과 함께 왔으며
투씨鬪氏 일족의 가병을 거느리고 궁궐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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