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8 화. 대낮에 귀신이 보이는가.
중보仲父는 지난번에 대낮인데도
유아兪兒를 알아보았도다.
중보仲父는 모르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관중管仲 이라는 말에 수초竪貂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면서 비웃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때는 주공께서 유아兪兒의 생김새를 자세히
말씀하여 주셨기에, 중보仲父가 주공에게
아첨阿諂 하려고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댄 것입니다.
네놈은 군신 간에 이간離間을 시키려 하느냐.
이간離間 질이 아니옵고 사실을 말씀드리옵니다.
정이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신의 방법대로 한번 해보시면 어떠시겠는지요.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주공, 일단 궁으로 돌아가 중보仲父에게 물으시되
주공께서는 귀신을 보았다고만 하시고
그 모양새는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그래도 중보仲父가 귀신을 알아맞힌다면
중보仲父는 틀림없는 성인이라 할 수 있나이다.
허 어. 좋다. 그렇게 한번 하여보자.
제환공齊桓公은 말을 마치자, 수레를 몰고 궁으로 돌아가면서도
여전히 불안에 떨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병이 들며 드러눕고 말았다.
병의 증세는 꼭 학질瘧疾 처럼 몹시 추위를 타는 듯이
몸을 떨며 이에 두꺼운 이불까지 덮었으나,
견디지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다.
소문이 나자, 조정의 신료臣僚 들이 알게 되었으며, 서로 병문안을
하고자 모여들며, 누워 있는 제환공齊桓公을 찾아오고 있었다.
주공.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중보仲父는 이리 가까이 와보시오.
과인이 어제 사냥을 갔다가 귀신을 본 뒤로
무섭고 떨려 견딜 수가 없소이다.
중보仲父는 내가 본 귀신의 모양새를 말해보오.
그러나 관중管仲이 귀신의 생김새를 말하지 못하자, 수초竪貂는
그 모습을 보면서 관중管仲 이 나가자 엷게 비웃으며 말을 한다.
신은 처음부터 대답하지 못할 줄 알았나이다.
어찌 보지 못한 것을 알 수 있겠나이까.
관중管仲은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옵니다.
제환공의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으며, 관중管仲은 제환공의 병을
근심하여 거리마다 커다랗게 방문榜文을 써 붙여 누구나 보게 하였다.
누구든지 주공이 본 귀신의 생김새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내가 받는 녹봉祿俸의 3분의 1을 주겠노라.
며칠 후가 되자, 삿갓을 깊이 눌러쓰고, 조각조각 누빈 옷을 입은
허름한 한촌 사내가 관중管仲의 집에 나타나 대문을 두들긴다.
안에 누가 계시오!
누구신 데 이리 대문을 두드리십니까.
허 어. 그저 중보仲父 어른을 만나러 온 것뿐이오.
중보仲父 어른은 지금 계시는가?
예야. 어서 들게 하여 모시고 오너라.
반갑소. 어서 오시 오.
관중은 첫눈에 그 촌村 사내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았으며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 하고 그 촌村 사내를 방안으로 모셔 들였다.
중보仲父 어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서 이 자리에 좌정해 주시 오.
주공께서는 지금도 병환 중인지요?
그렇소이다. 별 차도가 없어 걱정이오.
중보仲父 께 몇 가지만 물어보겠나이다.
주공께서는 귀신을 보고 나서 생긴 병환입니까?
그러하오. 무슨 귀신인지 알 수가 없소이다.
주공께서는 어디에서 귀신을 보셨습니까?
사냥을 나갔다가 커다란 연못 속에서 나타난
알 수 없는 귀신을 보았다 하오.
그렇다면 아무 걱정할 게 없나이다.
주공께 오히려 좋은 일이 되겠나이다.
그대는 그 귀신을 알고 있다는 말씀이오?
그렇소. 개략槪略 짐작斟酌 이 갑니다.
그 귀신의 형상도 말 하실 수 있겠소?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괜찮으시다면
신이 주공을 뵙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허, 그래요. 그렇게 해봅시다.
자, 함께 궁실宮室로 가봅시다.
촌村 사내의 말에 관중管仲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으나,
굳이 주공께 직접 말하고 싶어서 하자, 그 길로 촌村 사내와
같이 궁으로 들어가 제환공齊桓公에게 알현謁見 시키었다.
주공. 어떠시나이까?
중보仲父, 한기가 들어 몹시 춥소이다.
그때 제환공齊桓公은 이불을 두껍게 쌓은 그 위에 앉아있었으며,
그 당시 한창 총애를 받고 있던 장위희長衛姬와 소위희小衛姬가
양옆에서 제환공의 어깨과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내시 수초竪貂는 한옆에 앉아 약사발藥沙鉢 을 들고, 약 마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몹시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주공, 귀신의 생김새를 말하겠다는
사람과 함께 왔나이다.
주공, 한번 불러 만나 보시려는 지요.
중보仲父, 어서 데리고 들어오시오.
아니, 저런 촌村 사람이 들어오다니
중보仲父께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그대인가.
그대는 의원醫員 인가.
신은 그저 촌 농부이옵니다.
허 어. 그대가 내 병을 알 수가 있겠는가. 쯔 쯔.
어서 빨리 말해보시오.
주공, 귀신이 어찌 사람을 해칠 수 있겠나이까.
주공께서는 자기 스스로 병을 앓고 계시나이다.
귀신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니.
그런데 내 몸이 왜 이리 아픈 것인가.
귀신이 있기는 정말로 있는가.
귀신은 정말로 있사옵니다.
귀신의 이름과 생김새를 말하여 보아라.
예에, 천천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江 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망상罔象 이라는
귀신이 살고 있으며, 일명 목종沐腫 이라고 합니다.
생김새는 세 살 된 어린아이와 같사온데
푸른 얼굴에 검붉은 몸통을 지녔고
손톱과 눈동자 또한 붉으며
귀는 크고 팔뚝이 유난히 깁니다.
언덕에는 신峷 이라는 귀신이 있사온데
개犬, 처럼 생겼사온데 뿔이 달려있고
몸의 털에서 오색찬란五色燦爛 한 빛이 납니다.
또한, 산에는 다리가 하나인 외발로
깡충깡충 뛰는 기夔 라는 귀신이 있나이다.
제환공은 촌村 사내의 말에 점점 흥미를 느끼며, 더욱 궁금하여져
처음 봤을 때 무시하던 마음이 사라지며 귀담아들으려 하였다.
들판에 사는 방황彷徨 이라는 귀신은
뱀과 같사오나 머리가 둘이며
오색찬란五色燦爛 한 무늬로
길가는 사람들을 곧잘 미혹迷惑 시키나이다.
허 어, 그것이 다인가.
아닙니다. 땅속에는 분양墳羊 이라는 귀신이 있고
불 속에는 송무기宋無忌 라는 귀신이 있으며
넓은 못에는 위사委蛇 라는 귀신이 살고 있습니다.
허 어, 위사委蛇 라는 귀신은 어떻게 생겼는가.
위사委蛇는 몸통이 수레바퀴만 하게 생긴 뱀이오며
그 길이는 수레 끌채만 하고 보라색 옷을 입고
붉은 관冠을 썼사온데 조용하게 웅크리고만 있나이다.
그런데 이 위사委蛇는 수레바퀴 소리를 몹시 싫어하여
그 소리가 들리면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섭니다.
보통 사람은 그 생김새가 하도 괴상하여
똑바로 보지 못하고 놀랄 지경이 되옵니다.
하온데, 만일에 이 귀신을 똑바로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천하의 패권霸權을 잡는다고 합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위사委蛇에 관한 말을 듣자마자, 크게 웃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크게 감명을 받은 듯
환한 웃음을 짓고는 기뻐하며, 큰 소리로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하하하, 그대의 말이 맞도다.
내가 본 것이 바로 그 위사委蛇 로다.
호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신의 이름은 황자皇子 라고 하옵니다.
그대는 어느 곳에 사는가.
제齊 나라 서쪽 시골 마을에 사는
한낱 촌 농부에 불과하나이다.
허 어, 다행히 우리 제齊 나라 사람이구려.
그대는 벼슬을 하며 나를 도와주오.
신은 벼슬을 바라지 않나이다.
그러면 무엇을 바라는가.
주공께서 항상 주周 왕실王室 에 충성하시오며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쳐 주시면서
백성들이 편안히 농사農事 짓도록만
지금처럼 하여주신다면
신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나이다.
허 어. 정말로 고고孤高 한 선비로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선비가 있었다니
우리 제齊 나라의 복福 이로다.
제환공은 황자皇子의 말을 듣자 거짓말처럼 정신이 상쾌해지고,
아픈 증세症勢가 다 가셔버리면서 환한 웃음을 머금게 되었다.
황자皇子에게 많은 곡식과 비단을 내주도록 하라.
중보仲父 에게도 많은 상賞을 내리노라.
관중管仲과 촌사람이 모두 나가자, 수초竪貂는 불만을 드러내며,
제환공齊桓公에게 따지듯이 불맨 소리로 말을 한다.
관중管仲은 귀신의 생김새를 말하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많은 상賞을 내리시나이까.
과인이 듣기로는,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그의 습관에 아집我執이 생기기 쉽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며 일을 맡기는 자는
현명賢明 한 사람이라 하였노라.
만일 중보仲父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황자皇子의 말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주공. 신 수초竪貂는 언제나 머리 숙여
주공의 넓은 도량度量에 감복하나이다.
수초竪貂는 제환공齊桓公의 넓은 도량에 감복하게 되었으며,
위와 같이 어지럽던 중원中原에 제환공齊桓公이 등장하여
새 질서를 잡아가며 살기 좋은 평화 시대가 오는 듯 하였다.
제 139 화. 도화 부인은 내 것이다.
'(초안) 열국지 101∼200 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40 화. 허욕은 허욕으로 끝나는가. (0) | 2022.07.30 |
---|---|
제 139 화. 도화 부인은 내 것이다. (0) | 2022.07.30 |
제 137 화. 어려운 나라를 뒤늦게 돕는가. (0) | 2022.07.29 |
제 136 화. 한 여인이 위 나라를 구해내고. (0) | 2022.07.28 |
제 135 화. 위 나라는 망하는가. (0) | 202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