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1 화. 역사를 물으며 적을 물리치는가.
전희(展喜)는 제군의 선봉장인 최요(崔夭)의 안내를 받게 되며,
본영에서 제효공을 알현하면서 호군(犒軍)에 필요한 물품을
바치게 되자, 제효공(齊孝公)은 오만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말한다.
제후(齊侯)께서 제군(齊軍)을 친히 이끄시고
노(魯)나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우리 주군께서 신에게 상국의 군사를 영접하라는
임무를 맡기시어 이렇게 오게 되었나이다.
노(魯) 나라는 우리 제군(齊軍)이 두려워!
이렇게 호군(犒軍) 할 물품을 가지고 왔는가?
소인배들은 두려워할지 모르겠으나
저희 노(魯)나라에는 그런 소인배는 없사옵니다.
소인배가 아니고 무릇 군자 된 사람이라면
제군(齊軍)을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너희 노(魯)나라는 시백(施伯) 만한 지혜로운 자도
없고, 조귀(曹劌) 같은 용기 있는 무장도 없잖느냐?
더욱이 기근(飢饉)이 심하게 들어 들판에는 풀잎도 없는
속이 텅 빈 껍데기 땅이 되어 있지 않으냐?
백성들은 배고파 신음하며 죽어가는데!
무얼 믿고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가?
제후(齊侯)께서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십니다.
우리 노(魯) 나라는 예로부터 믿는 것이 있사옵니다.
다름 아닌 주무왕(周武王)을 생각해보셨는지요?
주무왕(周武王)께서는 태공망(太公望)이신
강태공(姜太公)에게 제(齊) 나라를 내리셨고,
주무왕(周武王)의 아드님이신 주성왕(周成王)께서는
우리의 선조이신 주공 단(但)의 아들인 백금(伯禽)을
노(魯) 나라의 군주로 봉하시었나이다.
주성왕(周成王)께서는 희생(犧牲)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면서, 강태공과 주공 단(但)에게 손을
맞잡게 하시고는 서로에게 맹세하게 하셨나이다.
두 사람의 자손들은 왕실을 받들고 서로 해치지
않겠노라! 라고 맹세를 시킨 것입니다.
이 맹서는 서약서로 만들어 맹부(盟府)에 보관하고
지금도 태사(太史)에게 관장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환공께서는 아홉 번이나 회맹을 열 때도
그때마다 노(魯) 나라를 가장 높이 우대했나이다.
또한, 가(柯) 땅의 회맹에서 제환공께서는
우리의 선군이신 노장공과 함께
왕실을 잘 받들어 나가기로 맹세하셨나이다.
가(柯) 땅에서 제환공(齊桓公)이 노장공(魯庄公)과 만나 회맹 할 때
조말(曺沫)이 따라가 제환공을 단검으로 위협하며,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다시 돌려받은 곳이며, 그때 두 나라는 우호를 합의했다.
지금 제후(齊侯)께서는 제(齊)의 군위를 물려받아
군위에 오르신 지 이제 9년이나 되었나이다.
지금도 우리 주공께서는 늘 말씀하십니다.
제후(齊侯)께서는 제환공의 패업을 계승하여
반드시 맹주의 지위에 오를 것이라 하시며
이제는 제후들과 친목을 도모하시어,
패공이 될 때가 되었다고 말해 왔습니다.
노(魯)나라 백성들은 모두가 노후(魯侯)의 말을
믿는바, 제(齊) 나라의 침공을 두려워하겠나이까?
제후(齊侯)께서 우리나라를 정벌하시려는 일은
선왕의 간절한 명을 버리시고!
선대의 맹세를 어길 뿐만 아니라!
제환공께서 이룩하신 백업을 무너뜨리고,
나라 사이의 좋은 관계를 원수지간으로
만드는 일이 되옵니다.
저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헤아려 보면
제후(齊侯)께서는 절대 그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희(展喜)는 거듭 강조하며 말하자, 제효공(齊孝公)은 한참이나
전희(展喜)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하게 된다.
그대는 돌아가 노희공에게 전하라!
나는 노(魯) 나라와 친목을 원할 뿐
다시는 군사를 내지 않겠노라!
제효공(齊孝公)이 말을 마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임치(臨淄)로
돌아가자, 이후 사가(史家)들은 전획(展獲)과 같은 훌륭한 현인을
조정에 불러들였다면,
장차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노(魯) 나라를
더욱 발전시켰을 것이라면서, 유하(柳下)의 초야에
묻혀 살게 한 장손신(臧孫辰)이 비난받게 된다.
전희(展喜)가 노(魯) 나라로 돌아와 보고하자, 노희공(魯僖公)은
몹시 만족하였으며, 전희(展喜)를 즉시 대부로 승진시켰다.
이때 장손신(臧孫辰)이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주공, 이번에 어이없는 일을 당한 것입니다.
제군(齊軍)이 비록 물러갔다고는 하나?
그것은 우리 노(魯) 나라를 가볍게 본 짓입니다.
주공, 청컨대 신이 중수(仲遂) 공자와 함께
초(楚) 나라에 다녀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가서 초군(楚軍)을 청해, 장차 제효공(齊孝公)이
우리 노(魯) 나라를 감히 엿보지 못하도록
제(齊) 나라를 정벌토록 만들겠습니다.
좋소, 틀림없이 그렇게 하시오!
세자 중수(仲遂)는 초(楚) 나라에 다녀오도록 하라.
노희공(魯僖公)은 즉시 세자 중수(仲遂)를 정사(正使)로정하고,
장손신(臧孫辰)을 부사(副使)로 하여 초(楚) 나라에 사절로 보냈다.
장손신은 초(楚)의 성득신(成得臣) 장수와는 녹상(鹿上)의 회맹에서
서로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먼저 설득해 나가기로 하였다.
성득신 장수, 안녕하십니까?
하, 오랜만이오. 어서 오시 오!
성득신 장수의 형님이 되시는
투곡어토(鬪穀於菟) 영윤(令尹) 께선 연로하신데,
어찌 영윤(令尹) 자리를 이어받지 않는 것이오?
초(楚)의 영윤(令尹) 자리는 다른 나라의 제일 높은 재상(宰相)이다.
공족 대부인 성득신(成得臣)은 초(楚) 나라 제일의 명장이라 불리는
인재로서, 영윤(令尹) 자리를 이어받을 재목으로 꼽히고 있었다.
내 공이 크지 않는데 어찌 영윤(令尹)을 꿈꾸겠소?
허 어, 공이야 세우면 되지 않겠소이까?
허허,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되는 일이오?
대관절 초(楚) 나라에는 어찌 온 것이오?
장군께 큰 공을 세워드리고자 찾아왔소!
큰 공이라면 무얼 말하는 것이오?
중원에서 초(楚) 나라를 섬기지 않는 나라는
제(齊)와 송(宋) 나라가 아니겠소?
성득신 장수께선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요?
만일 제(齊)와 송(宋) 나라 중 한 나라만 굴복시켜도
초왕(楚王)께서는 영윤(令尹)으로 삼으실 것이오!
그렇긴 하오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겠소?
성득신 장수께서 만일 제(齊) 나라를 공격하겠다면,
온 힘을 다해 군량(軍糧) 물자를 보급해드리겠소!
방금 하신 말이 정말이오?
사실 선뜻 제(齊) 나라를 공략할 수 없었던 것은
가장 큰 원인이 군사들의 군량(軍糧) 문제였소!
우리 초(楚)는 제(齊) 나라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군사들의 군량(軍糧)이 많이 들어가 쉬운 일이 아니오.
좋소. 우리 노(魯) 나라가 군량(軍糧)을 책임지겠소이다.
아니, 장손신(臧孫辰)께선 책임질 말을 하는 것이오?
그렇소. 우리 노(魯) 나라 세자 중수(仲遂)께서
직접 성득신 장수께 보증을 서면 믿겠소?
다음날 성득신은 노(魯) 나라 장손신(臧孫辰)과 세자 중수(仲遂)를
초성왕(楚成王)에게 인도하자, 장손신(臧孫辰)은 제효공(齊孝公)이
노(魯) 나라를 침공하였던 사실을 자세히 고했다.
제(齊) 나라는 녹상(鹿上)의 회맹을 어겼으며,
송(宋) 나라는 홍수(泓水)에서 대항했으므로
두 나라는 모두 초(楚) 나라의 원수가 됩니다.
대왕께서 만약 제(齊) 나라에 죄를 물으시겠다면
우리 노후(魯侯)께서 나라의 온 힘을 기울여
대왕의 향도(嚮導)가 되어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그 먼 곳을 공략할 수 있단 말이오?
왕이시여, 신 성득신(成得臣) 이옵니다.
모든 군량(軍糧) 문제는 노(魯)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여기 있는 세자 중수(仲遂)가 신에게 맹세하였나이다.
왕이시여, 만일 제(齊) 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신은 목숨을 바치도록 맹세하겠나이다!
초성왕(楚成王)은 이를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그 당시 초군(楚軍)은
홍수(泓水) 전투에서 송(宋) 나라를 격파한 이후로, 초군(楚軍)의
위세는 중원(中原) 천하에서 당할 나라가 없을 만큼 성장하였다.
이제 정(鄭)과 채(蔡)는 물론이며, 노(魯)와 위(衛) 나라까지 초(楚)를
종주국으로 섬기게 되자, 초성왕(楚成王)은 자신이 중원의 실재적인
지배자라고 생각하는 자만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좋다, 이제 제(齊)와 송(宋) 나라만 제압한다면
명실공히 천하의 패업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초성왕은 그해 가을이 되어 출정 준비가 모두 끝나고, 초군(楚軍)이
질서정연하게 정렬하자, 제(齊) 나라를 정벌토록 명령한다.
성득신(成得臣)을 대장으로 삼고,
투의신(鬪宜申)을 부장으로 삼으며
신공(申公) 숙후(叔侯)를 사마(司馬)로 삼노라.
그대들은 일치단결하여 제(齊)를 정벌하고 돌아오라.
성득신은 총대장이 되어 제(齊) 나라 원정길에 올랐으며, 이번 원정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굳게 다짐했다.
이번 원정에 반드시 성공하여야 한다!
초(楚) 나라 영윤(令尹) 자리에 오르고 말리라!
제 332 화. 속전속결 만이 승기를 잡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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