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7 화. 진문공, 이름뿐인 땅을 얻는가.
진군(晉軍)이 행군하여 3월에 양번(陽樊) 땅에 주둔하자, 양번(陽樊)의
수장인 창갈(蒼葛)이 먼저 나와서 진문공(晉文公)을 맞이하였다.
양번(陽樊) 땅은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동남쪽에
있었으며, 태숙(太叔) 대(帶)가 머무는 온읍(溫邑)과는
약 90리로, 사흘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진문공은 좌군 대장 조쇠(趙衰)에게 범(氾) 땅의 주양왕(周襄王)을
영접하여 낙양성으로 호송하도록 명령했으며 또한, 우군 대장
극진(郤溱)에게는 태숙(太叔) 대(帶)와 외후(隗后)가 함께 머물고
있는 온성(溫城)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14일 후인 4월 4일이 되었을 때,
좌군 대장 조쇠(趙衰)는 범(氾) 땅의
주양왕(周襄王)을 호위하여 왕성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도 우군 대장 극진(郤溱)은 태숙(太叔) 대(帶)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혀 온성(溫城)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하루가 지나자, 주양왕이 낙양성에 환궁했다는 소식이 금세
온성(溫城)까지 전해지자, 태숙(太叔) 대(帶)의 수비군은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이탈자가 속출하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외후 안 되겠소. 빨리 달아납시다!
아니, 어디로 달아나요?
허 어, 그대의 고향인 적적(赤狄)으로 가야지요.
이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한 태숙은 외후를 수레에 태우고
온성(溫城)을 탈출하여 습성(隰城)이라는 곳을 통과하려 할 때였다.
야 이, 역적 놈아,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억, 저놈은 제일 무서운 위주가 아니냐?
저놈한테 걸리다니 이거 큰일 났구나!
위주(魏犨)의 기세가 어찌나 험악했던지 태숙(太叔) 대(帶)는 감히
도망가지 못하고 멈추어 선체로 위주를 향해 애원하기 시작한다.
위주(魏犨) 장수, 나를 도망가게 해준다면
다음날 그대의 은공을 반드시 갚겠소!
여기 이 보물들도 모두 가져가시오!
살려 달라고! 좋다, 천자께서 놓아주라 하면
그때 너를 살려 보내주마!
위주는 콧방귀를 뀌며 힘차게 덮쳐들자, 태숙(太叔) 대(帶)가 칼을
빼 들었으나, 위주는 큰 칼로 그의 몸통을 두 동강 내고 말았다.
살려주세요! 연약한 여자입니다!
이런 음란한 계집을 살려서 어디에다 쓴단 말이냐?
이 음탕한 계집에게 일제히 활을 쏘아 죽여라!
위주(魏犨)가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외후(隗后)를 세워 놓고
활을 쏴서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꽃같이 아름다운 외후(隗后)는 태숙(太叔) 대(帶)를
만나 음욕을 맘껏 즐기었으나, 왕실에 너무나
큰 풍파를 일으켰으며, 반년도 채 되지 못하여
수많은 화살을 맞고 밤송이가 되어 죽어 갔다.
우군 대장 극진(郤溱)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며, 그때 마침
위주(魏犨)가 두 구의 시체를 끌고 와서 보고하자, 극진(郤溱)은
너무 성급하게 죽였다면서 위주(魏犨)를 타박했다.
아무리 역적이라 해도 죄를 밝힌 후에
죽여야 하거늘! 그대는 너무나 경솔했소!
죄인들을 함거에 실어 천자에게 보내어
그 죄를 묻게 하는 편이 옳지 않았겠소?
그런 점도 있습니다만! 천자는 동생을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차라리 빨리 죽여 명쾌히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속히 죽여 버린 것이오.
탄식하던 극진(郤溱)은 즉시 두 구의 시체를 신농(神農) 땅에 흐르던
개울가에 묻어주면서, 태숙(太叔) 대(帶)의 왕실 내란은 종식되었다.
신농(神農)은 온(溫) 땅에 있었던 지명으로,
신농씨(神農氏)가 오곡의 씨앗을 처음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라고 한다.
이어서 극진(郤溱)은 온성(溫城)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파발을 시켜
양번(陽樊)에 주둔하고 있던, 진문공에게 승첩을 만들어 보고했다.
태숙(叔父)과 외후(隗后)가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자,
진문공은 그 즉시 어가를 타고 친히 왕성인 낙양성으로 들어갔다.
그해 여름 4월 정사(丁巳) 일에 주양왕이
범 땅에서 출발하여 다시 왕도로 돌아오자
주공과 소공이 함께 성 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그때가 주양왕 17년이며 진문공이 진후에
오른 지 2년 차인 기원전 635년의 일이었다.
진문공이 온(溫) 땅의 태숙(太叔) 대(帶) 일당을 토벌했다고 고하자,
주양왕은 잔치를 베풀어 진군의 노고를 위로한다.
숙부(叔父), 정말 고맙소!
경의 많은 노고를 위로하는 바이오.
자, 황금과 비단을 받아 군사들을 위로하시오!
망극하오나 신은 제후로서 할 일을 했을 뿐으로
하사하신 물품들을 감히 받을 수 없나이다.
왕은 같은 성씨의 제후를 숙부(叔父)라고 높여 불렀으며, 공을 세운
제후에게는 그 공로로 관작을 더하여 높여주거나, 왕실의 보물을
하사하여 주게 되면, 이렇게 의례적으로 겸양의 대답을 올리는 것이
보기 좋은 관례로 되어있었다.
주양왕은 워낙 큰 공을 세운 진문공(晉文公)이 하사품을 사양하자,
겸양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가볍게 한번 의중을 묻게 되었다.
숙부(叔父)께서 큰 공을 세우셨으니
짐이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
숙부(叔父께)서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황공하오나,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호 오, 그렇소, 경의 소원을 말해보시오?
내 기꺼이 들어주리다!
주상, 신이 훗날 죽은 뒤에 수장(隧葬)이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비록 지하에 누워있을망정 폐하의 무궁한
은혜를 입은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자 하나이다.
뭐라! 방금 수장(隧葬) 이라 하였소?
황공하오나 그렇사옵니다!
이때 진문공(晉文公)은 엎드려 사은품에 대한 겸양의 절을 올리면서
뜻밖의 청을 하였다. 수장(隧葬)이라, 함은 커다란 무덤을 만들게
되면서, 지하의 무덤 안에다 길을 내고 관을 안치하는 것으로,
주 왕실에서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엄격한 의례였다.
그런 걸 모를 리 없는 진문공(晉文公)이 굳이
수장(隧葬)을 청한 것은 곧 자신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양왕은 진문공의 엉뚱한 요청에 갑자기 안색이
돌변하면서, 불쾌한 감정이 노골적으로들어났다.
이건 보통의 청이 아니란 걸 깨달은 주양왕은 단번에 진문공의
요청이 관작이나 보물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봉지(封地)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양왕은 내줄 봉지(封地)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왕실의 직할지를 주게 된다면, 왕실은
식량을 조달할 땅이 너무나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주양왕은 도저히 줄 수가 없는 처지였으며,
그렇다고 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을 진문공이 무리한 걸 청하는 의도에
주양왕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엉뚱한 말을 하게 된다.
옛날 선왕께서 임금과 신하의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게 한 것이 예법(禮法)이오!
짐이 사사로이 왕실의 대전(大典)을
어지럽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숙부(叔父)께서 큰 공을 세우셨으니
짐이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
그 대신에 기내(畿內)의 땅에 있는 온읍(溫邑),
원읍(原邑), 양번(陽樊), 찬모(攢茅)의 네 고을을
숙부께 하사하니 봉지(封地)에 더하도록 하시오.
주양왕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땅을 내주긴 하였으되, 모두가
왕실 소유가 아닌 주인 있는 땅이었으므로 생색만 낸 것이었다.
기내(畿內)는 낙양성을 중심으로
사방 오백 리의 땅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내(畿內) 땅에서 나오는 산물로
왕실의 재정을 겨우 운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네 고을의 땅을 주겠다는 것은
왕실 운용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이다.
진문공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기내(畿內) 네고을의 땅을
하사받아 감사한다면서, 큰절을 올리고 왕궁을 나오게 되었다.
진문공이 왕궁에서 나오자, 길가에는 수많은 백성이 길 가득히
몰려나와 진문공과 진군의 위용을 보면서 서로 다투듯이 칭송한다.
정말 대단 하구나!
제환공이 다시 환생했도다!
진문공은 모든 일을 마치고 낙양에서 철수하여 강성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급한 성질을 참지 못한 위주(魏犨)가 투덜대기 시작한다.
천자도 어이없는 일을 말하는군?
주인이 있는 땅을 주다니!
주인들이 순순히 넘겨줄 리가 있겠는가?
천자는 좋은 말로 생색만을 내고
하 아, 우리 주공께선 헛농사를 지으셨도다!
진문공은 강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다가 드디어
위주(魏犨)가 투덜거리자, 이 말을 듣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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