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 화. 사람 됨됨이를 알아야 한다.
동맹을 맺는 날이 되었다. 제(齊) 나라가 쌓은 제단은 7층으로 매우
높았으며, 7층의 맨 위에는 커다란 대황기(大黃旗)를 세워놨는데,
휘날리는 사이로 방백(方伯) 이란 글자가 뚜렷이 보였다.
제단 아래에는 제단의 사방을 빙 둘러 가며
높고 커다란 청, 홍, 백, 기(旗)를
제(齊) 나라의 용맹한 장수들이 잡고 있으며,
그 뒤로 씩씩한 군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층마다 향탁(香卓)을 놓아, 지나치며 몸에
붙은 잡귀를 몰아내게 배려하였으며,
중간층에는 안내인으로 동곽아(東郭牙)가 있었다.
제단의 맨 위인 7층에는 붉은 상(床)인
착주반(着朱盤) 위에 삽혈(歃血)의 피를 담을
옥우(玉盂 =옥잔)를 놓았다.
그리고 양편에 술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床)인
반점(反坫)을 놓고, 금으로 만든 술통인 금준(金樽)과
옥 술잔인 옥가(玉斝)를 올려놓았다.
이처럼 준비한 상(床) 양옆으로 시중들 시인(寺人) 들이 있으며
중앙에는 관중(管仲)이 영접관(迎接官)으로 서 있고, 그 옆에
제환공이 노장공을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모두 제(齊) 나라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노장공을 겁박
주어 앞으로 두말없이 제(齊) 나라를 잘 따르라는 뜻이 들어있었다.
어휴 우, 저 높은 곳을 올라가게 하다니.
어휴, 제단의 기상(氣象)이 정연(定連) 하고,
너무 엄숙하여 나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구나.
노장공(魯莊公)이 어깨가 움츠러들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동맹 의식을 진행하는 제(齊)의 중손추(仲孫湫)가 다가와 말한다.
신하 한 사람만을 데리고 제단에 올라가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은 단 아래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조말(曺沫)은 갑옷 차림으로 노장공 곁에 붙어서 보호하고 있었다.
노장공은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제환공의 위세에 눌려
몸을 떨었으나, 그 뒤를 따르는 조말(曺沫)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 잠깐 서시 오!
오늘은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경사스러운 날이오.
이런 자리에 어찌 흉기를 지니고 올라갈 수 있겠소?
허리에 찬칼을 이리 내려놓으시오!
제단의 중간 층계에 서 있던 동곽아(東郭牙)가 조말(曺沫)의 앞을
가로막으며 차고 있는 칼을 내려놓게 하였다.
그러나 조말(曺沫)이 대답 대신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조말(曺沫)의 살벌한 기(氣)에 눌려, 동곽아(東郭牙)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그때 조말(曺沫)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들고 있던 칼을 내밀어
주었다. 노장공과 조말은 다시 걸음을 옮겨 올라갔으며, 이윽고
제단 맨 꼭대기에 이르자,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두 분은 맞절하시옵소서!
다음 차례는 삽혈(歃血) 행사이옵니다.
검은 소와 하얀 소의 피를 그릇에 담아
두 군주 앞에 내놓겠나이다.
바로 그때 조말(曺沫)이 별안간 품 안에서 시퍼런 단도를 꺼내더니,
제환공의 목에 갖다 대면서, 찔러 죽일 기세로 꼭 끌어안는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물러서지 못할까?
어서 물러나도록 하라!
예상치 못한 조말(曺沫)의 행동에 제환공(齊桓公)은 기절할 듯이
놀랐으며, 공포의 빛이 얼굴에 역력(歷歷) 하자, 관중(管仲)도 또한,
매우 놀랐으나 침착하게 재빨리 조말(曺沫)에게 다가가 물어본다.
그대는 누구 시 오?
나는 노(魯) 나라 장수 조말(曺沫) 이오!
으음. 조말(曺沫) 장수를 여기서 만나는구려.
어서 원하는 바를 말씀하시오?
좋소, 나 조말(曺沫)은 말할 것이오!
그동안 우리 노(魯) 나라에 많은 수모를 겪게 했소.
듣자 하니, 제(齊)나라는 약한 자를 돕고 힘없는 자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는데, 어째서 우리 노(魯) 나라를
위해선 단 한 번도 힘을 쓰지 않는 것이오?
그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조말(曺沫)은 어서 말해보시오?
좋소, 말하겠소!
지난봄에 우리 노(魯)의 부용국인 수(遂)를 빼앗았소.
이것은 제(齊)가 강한 것만을 믿고서 한 짓이오.
잡아간 포로들과 빼앗은 땅을 돌려주면 우리 노(魯)는
제(齊) 나라를 믿고서 피를 발라 맹세 할 것이오!
조말(曺沫)의 말을 들은 관중은 즉시 제환공(齊桓公)을 돌아보며,
조말(曺沫)의 요구 사항에 대한 답을 물어보는 것이다.
주공께서는 노(魯)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허 어, 알겠노라. 장수 조말(曺沫)은 안심하라.
과인은 수(遂) 땅과 요구 사항을 돌려주겠노라.
고맙사옵니다. 이 조말(曺沫)은 엎드려
제후(齊侯)께 큰절을 올리나이다.
제환공이 겁에 질린 가운데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승낙하자,
일촉즉발의 위기는 지나가고, 동맹 의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입술에 피를 바름으로써 삽혈(歃血) 의식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노장공과 조말이 숙소로 돌아가자, 제(齊) 나라 대부들은 이 일을
뒤늦게 알고는 조말(曺沫)의 무례한 행동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주공. 신 동곽아(東郭牙) 이옵니다.
조말(曺沫)은 참으로 무엄한 자입니다.
당장에 노장공(魯莊公)을 붙잡아
조말(曺沫)에게 당한 모욕을 갚으시옵소서!
과인도 조금 전의 그 공포를 생각하면
조말(曺沫)을 씹어 먹어도 성이 풀리지 않겠도다.
내 어찌 이런 모욕을 받고
그자를 온전히 살려 보낼 수 있으리오!
내일 날이 밝으면 조말(曺沫)을 잡아 죽이리라!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주공께서는 이미 조말(曺沫)에게 수(遂) 땅을
돌려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시었사옵니다.
일반 백성들도 한 번 약속하면 지켜야 하거늘!
주공께서는 어찌 두말을 하시려 합니까?
하지만 그 약속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한 것이라, 아까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오.
중보(仲父)! 나는 수(遂) 땅을 돌려주지 못하겠소!
주공,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한 약속도 약속입니다.
위협을 받은 상태에서 약속했다 하여 그것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작은 기분 풀이에 불과하오나?
약속한 대로 수(遂) 땅을 돌려주시면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신망(信望)을 얻을 것입니다.
주공께서 수(遂) 땅만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서슴없이 조말(曺沫)을 죽이시옵소서!
하지만 천하를 거느리는 패공(霸公)이 되려 하신다면
약속대로 수(遂) 땅을 노(魯) 나라에 돌려주십시오.
관중(管仲)의 말을 듣고 있던 제환공(齊桓公)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깊은 뜻을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들며 말을 하였다.
중보(仲父)의 말씀이 백번 옳소이다.
나는 수(遂) 땅이 아니라 다만 천하를 바랄 뿐이오.
다음날 제환공은 다시 노장공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조말을
용서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임치(臨淄)로 돌아오자마자, 그가
원하는 대로 빼앗았던 수(遂) 나라와 촉(蜀) 땅을 되돌려주었다.
제환공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협박당하여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말이긴 해도
한번 뱉은 말은 그대로 지키고 마는 사람이로구나!
제환공은 의(義)로운 사람이다!
제환공은 믿고 따를 만한 제후(諸侯) 이다.
우리도 동맹에 가담하도록 합시다!
옳소! 우리도 제환공에게 연락합시다!
제 141 화. 자기 그릇만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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