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화. 황천에서 모후를 만난다.
정장공(鄭莊公)이 양념한 양고기 한 마리를 영고숙(穎考叔)의 늙은
어머님을 위하여 보내주겠다고 하자, 영고숙(穎考叔)은 감격하여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이를 쳐다본 정장공도
먼 곳을 바라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하 아. 내 못 할 짓을 하였구나. 휴 우.
주공. 어이 탄식(歎息)하시나이까?
영고숙(穎考叔)! 그대는 복이 많아
봉양(奉養)해줄 모친을 모시고 있으나
나는 일국의 제후이긴 하나 그대만도 못하오.
그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구려.
내, 부득이하게 아우를 죽게 하였지만
어머니마저 멀리 보내어 천륜을 배반하였소!
주공,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주공. 살아계신 모후(母后)임을 다시 모시면 되옵니다.
단(段)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바이오니
살아계신 아드님은 주공 한 분뿐이옵니다.
모후께서도 많이 보고 싶어서 하실 것이오니
옛일을 잊으시고 다시 모시옵소서.
그리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황천(黃泉)에 가서 만나겠다. 막말하고 말았으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되었구려?
주공, 아니옵니다.
지금 곧 황천(黃泉)에서 만나시면 되옵니다!
이보시오. 영고숙(穎考叔)!
주공 앞에서 함부로 심한 말을 하면
아니 된다는 걸 잘 아시지 않소?
아웁니다! 아웁니다!
주공, 이승의 황천(黃泉)에서 만나시면 되옵니다!
이승의 황천(黃泉)이 어느 곳에 있소?
이승에 황천(黃泉)이 있다면 만나시겠사옵니까?
허 어. 만나야 하지 않겠소?
주공. 그러시면 되었사옵니다.
신이 황천(黃泉)을 보여 드리겠사옵니다!
정말이오? 무엇이 필요하겠소?
내가 도와줄 일을 말해보시오!
삽과 곡괭이를 지닌 장정(壯丁) 3백여 명과
백여 길의 삭율(索繂)을 주소서.
삭율(索繂)은 굵고 튼튼하게 꼰, 동아줄을 말하는 것이다.
영고숙(穎考叔)은 장정 3백여 명을 데리고 곡유(曲洧) 땅으로 갔다.
곡유(曲洧)는 지금의 하남성 언릉(鄢陵) 동남쪽
약 20키로 지점의 유수(洧水) 강안(江岸)의 고을로
허창(許昌市) 서쪽 약 40키로 지점에 있다.
곡유(曲洧) 땅에서 높은 산의 고개를 넘어 한참 동안 깊은 계곡에
들어가더니, 어느 한 산기슭에 다다라 붉은 흙이 깔린 곳을
만나자마자, 발로 비벼보고는 이제 됐다며 모두 모이라고 하였다.
이곳이 우비산(牛睥山) 이다.
우비산(牛睥山)은 황토(黃土) 흙이 기름져
약초(藥草)가 많이 자라나나?
많은 바위가 뾰족하고 너무 위험하게 서 있어
소들도 들어가고 싶어서 하지만,
소도 위험하여 곁눈질만으로 흘겨보며
비켜 가는 곳이라고 한다.
황토(黃土)는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는 흙이다.
그러나 황토(黃土)는 흙의 토질(土質)이
조밀(稠密)하여 수맥(水脈)이 잘 통하질 않는다.
파 내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암반(巖盤)을 만나야!
거기에서 암반(巖盤)을 따라 들어오는
수맥(水脈)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좋은 수맥(水脈)을 찾아야 한다.
자. 장정들은 이곳에 모여 빙 둘러서라.
자. 지금부터 다 같이 깊이 파 내려가야 한다.
자, 다 같이 열심히 파고들어 가보자.
장정 3백여 명이 열심히 며칠을 파고 들어가자, 깊은 곳에 다다라
암반이 나오며, 암반을 깨고 들어가자 물이 솟아나니, 자연스럽게
황토물이 고이는 누런 우물이 만들어진다. 곧 황천(黃泉)이다.
주공. 황천(黃泉)이 준비되었사옵니다.
주공, 황천(黃泉)에 방을 만들었사오니
황천(黃泉)에서 모후(母后)님을 만나시옵소서.
영고숙(穎考叔)은 삭율(索繂)로 나무토막들을 붙들어 매 사다리를
안전하게 만들자, 영고숙은 무강(武姜)에게 장공(莊公)이 후회하여
다시 모시며 효로써 봉양하고 싶다는 뜻을 정성을 다하여 말했다.
무강(武姜)은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였다.
영고숙(穎考叔)은 직접 모후(母后)를 업고
한참을 내려가, 황천(黃泉)의 방에 모시었다.
정장공(鄭莊公) 또한 급하게 긴 삭율(索繂)의 사다리를 타고 깊이
내려가 황천(黃泉)에서 어머니 모후(母后)를 만나게 되었다.
어마마마. 소자 오생(寤生) 이옵니다.
오, 주공. 손 한 번 잡아봅시다.
어마마마, 이 오생이 오랫동안 불효하였나이다.
어마마마.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아니요. 아니요. 모두 나의 잘못이오!
나도 모르게 둘째 단(段) 만을 감싸며
편애(偏愛)만 하였던 나의 잘못이었소.
왜, 내가 편애(偏愛)를 하였는지 나도 모르겠소?
주공, 이 어미가 단(段)을 죽이게 했소!
주공. 아무쪼록 이 어미를 용서할 수 있겠소?
주공, 오오, 이 어미를 용서하여주시오?
어머님, 그만 눈물을 보이지 마시옵소서!
어머님, 왜 이리 수척해지셨습니까?
어머님, 건강이 너무 안 좋아 보이옵니다.
어머님, 이제 일어나십시오!
어머님, 어서 내궁(內宮)에 돌아가시어야 합니다.
어머님, 자, 제 등에 업히시옵소서.
정장공(鄭莊公)은 팔을 뻗어 어머니 무강(武姜)을 일으키다가
모자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그리웠던 정에 또다시 대성통곡 하였다.
어머니, 제등에 업히세요!
주공, 괜찮겠소!
어머니, 어머니를 업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 무강(武姜)을 엎고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땅 위로 올라왔다.
이것은 모두가 영고숙(穎考叔)이 힘들게 도운 공이 아니겠는가?
이에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영고숙을 찬미했다.
黃泉誓母絶彝倫 (황천서무절이륜)
황천이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고 인륜을 끊었도다.
大隧擾疑隔世人 (대수요의격세인)
큰 동굴을 파니 세상과 격리하는 줄로 의심했다.
考叔不行懷肉計(고숙불행회육계)
고숙이 양고기 계책을 행하지 않았더라면
庄公安肯認天親(장공안긍인천친)
장공은 천륜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모후(母后)가 쫓겨가 있는 작은 변방 영곡(潁谷) 땅의 읍재(邑帝)
영고숙(潁考叔)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정장공(鄭莊公)과
모후(母后) 사이가 불화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올빼미의 나쁜 습성을 효도에 빗대어 설파한 뒤에,
곡유(曲洧) 땅의 황토(黃土) 땅을 파 내려가
우물(泉)을 만들면 황천(黃泉)이 된다는
아주 단순한 발상(發想)으로
정장공과 모후를 기어이 만나 화해하게 하였다.
정장공(鄭莊公)은 황천에서 모후(母后)를 직접 등에 업고 나오며,
비로소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과 정을 느끼며, 거친 계곡을 지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비산(牛睥山)을 겨우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친히 모후인 무강(武姜)을 부축하여
어가(御駕)에 태우고 손수 말고삐를 잡으며 달렸다.
어가(御駕)가 신정(新鄭)으로 향하니, 백성들이 몰려나와 정장공을
지극한 효자라며 모두 손을 흔들며 극진한 효성을 칭송하였다.
이에 어느 시인이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黃泉誓母絶彝倫 (황천서무절이륜)
황천에서나 만나자며 모친과 인륜을 끊었는데
大隧擾疑隔世人 (대수요의격세인)
큰 동굴을 파니 세상과 격리한다며 의심을 샀다.
考叔不行懷肉計 (고숙불행회육계)
고숙이 양고기를 품는 계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면
庄公安肯認天親 (장공안긍인천친)
장공은 어찌 천륜을 다시 이를 수가 있었겠는가?
영고숙(潁考叔)은 이에 대한 공로로 대부 벼슬을 하사받았으며,
그리고 군사(軍事) 일을 관장하게 되면서, 정장공(鄭莊公)을 크게
도우며, 전쟁과 외교 면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이때가 주평왕 50년이며, 정장공 23년으로 기원전 721년이었다.
죽은 자의 혼(魂)이 간다고 여기는 세계는
누런 샘물이 흐르는 황천(黃泉)이다.
황천(黃泉)은 땅 깊은 곳에 지하수가 흐르는 곳을
말하며, 고대에는 사후생활을 믿고 있었으며,
저승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황천(黃泉)은 구천(九泉)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혼(魂)이 여러 곳을 떠돈다는 표현에서
구천(九泉)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황천(黃泉)은 도교적, 불교적 세계관이 어울린
저승 세계로, 이승의 생활과도 다르지 않은
곳이며, 이곳에서 지옥이나 극락에 가기도 하고
또는 환생하는 곳이라고도 생각하였다.
제 44 화. 할머니가 손자를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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