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29 화. 포사, 노리개가 되는가.

서 휴 2023. 3. 18. 16:28

29 . 포사, 노리개가 되는가.

 

산악을 누비던 견융반(犬戎班) 또한 포사(褒似)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 어지간한 일은 모두 좌선봉 만야속(滿也速)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으로 포사(褒似) 만을 끼고 잠만 자려고 하였다.

 

       흐흐. 여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맛이 좋은 여자가 다 있었다니.

       태어나 처음 만나는 여자로구나

 

       이렇게 완숙(完熟)된 여자를 만나다니

       어 후. 좋고좋도다

 

포사(褒似)는 견융반(犬戎班)의 우악스러운 힘에 노리개가 되어,

밤낮으로 시달리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포사(褒似)는 지쳐 눈물 흘리다가, 견융반(犬戎班)

잠시 나간 틈 사이에 급히 목을 매며 자결하고 말았다.

그때가 유왕(幽王)의 재위 11년이었으며 기원전 771년의 일이다.

 

            포사의 눈물

 

       태어남이 나의 뜻이었나요.

       아름다운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나의 바람이었나요.

 

       어찌 태어난 것을 두고

       섣불리 말할 수가 있겠는가.

 

       아름다움이 무슨 죄인가요.

       아름다움을 사랑받은 것이 무슨 죄인가요.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저 남자를 홀리는

       아름다움이지 죄는 아닐 것이다.

 

       나의 아름다움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아름다운 일 일진데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사람의 잘못을

       어찌 나에게 탓하려 하시나요.

 

       어찌 너의 아름다움을 탓할 수가 있으랴.

       너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여,

 

       아름다움에 빠져 버린 넋이 헤어나질 못하여

       매사에 게을러지게 되면서, 좋은 일에도

       올바른 정성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리라.

 

       너의 아름다움이 나라의 만백성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되니

 

       너의 아름다움과 이를 탐하는 자를

       어찌 탓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느냐.

 

       아름다운 사랑은 탓하지 않는다마는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에 따르는 피해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려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면,

       이는 큰 죄가 될 것이니라.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여자로 태어난 나를 너무 탓하지 마세요.

 

       나는 외롭게 태어난 여자로서 주어진 환경에서

       할 도릴 다하며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어요.

 

       나를 사랑한 사람의 모든 잘못을

       모두 나에게 씌우시다니요.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내 아이는 무슨 잘못으로 죽어야 하나요.

 

       그래 어린아이는 죽어야 할 잘못이 없도다.

       다만, 자식은 부모를 따라가느니라.

 

       부모가 건강한 인덕으로 씨를 뿌렸더라도

       때론 나쁜 해충을 만나 죽을 수도 있지만

 

       그릇된 씨앗은 싹은 틔웠으나

       제대로 자라지 못하며 시드는 경우가 많으니라.

 

       너무나 억울해요.

       세상을 이렇게 허무하게 살다 가라니요,

 

       세상을 이렇게 떠나야 한다니요.

       너무나 억울해요.

       이 서러운 한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나요.

 

()의 침으로 40년 만에 태어난 포사(褒似)는 유왕을 완전히 홀려

왕비와 세자와 온 백성들에게 온갖 불행한 일만을 저질렀으며,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게 하면서, 결국 주() 나라를

망하게 하고는 스스로 자결하며,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뭐, 뭐라 하였느냐

       포사(褒似)가 죽었다고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목을 매 자결하였습니다.

       에 키. 이놈아! 너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

 

견융반(犬戎班)은 포사(褒似)가 목을 매 자결하였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군막을 지키던 용사를 단칼에

목을 베여버리고, 한동안 멍하게 서서 죽은 포사를 그리워하였다.

이때 이 장면을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錦繡圍中称國母 (금수위중충국모)

       수놓은 비단옷을 휘감고 국모라고 칭했네

 

       腥膻隊里作番姿 (성단대리작번자)

       오랑캐 막사에서 다시 자태를 뽐냈지만

 

       到鬪不免投繯苦 (도투불면투환고)

       종내에는 목메어 죽는 고통을 면하지 못하누나.

 

       爭似爲妃快樂多 (쟁사위비괘락다)

       왕비가 된 것은 쾌락을 즐기려 함이었던가.

 

견융반은 매일 꿀 같은 잠자리를 하여주었던 포사(褒似)가 별안간

자결해버리자, 크게 충격을 받아 의욕을 잃고 멍하게 있는걸

보다 못한 만야속(滿也速)이 성안의 어여쁜 여인을 골라온다.

 

       여기. 호경(鎬京)의 미인을 대령하였습니다.

       포사(褒似)를 닮았는가 어디 보자

 

       그렇지, 얼굴로 봐선 모르지

       잠자리를 해봐야 알겠도다

 

       아, 포사(褒似)만 한 여자가 없구나

      아아. 정말 없구나없어

      죽은 포사가 살아있는 나를 애타게 하는구나

 

견융반이 죽은 포사를 몹시 그리워하자, 부하들이 호경(鎬京)

여인을 골라 받히니, 견융반은 매일 술로 밤을 새우게 되었다.

 

       견융 놈들.  안 가고 저러고 있느냐

       견융반은 죽은 포사에 미쳐있고

       견융반의 용사들은 미녀를 거둬들이면서

       부녀자를 희롱하기에 바쁩니다

 

       포사의 그림자가 정말 대단하구나

       죽어서까지 사내를 미치게 하는구나

 

견융은 주유왕을 잡아 죽인 일에 큰 전공을 세운 쾌거로 생각하며

호경(鎬京)의 민가에 돌아다니며, 부녀자들을 희롱하면서 약탈을

일삼았으며,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신후(申侯)는 사고(司庫)가 텅텅 비어있으므로, 할 수 없이 신()

나라에서 황금과 비단을 실어와 견융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조촐하나 맛있게들 들어주시오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이다

       이것은 모두 신()나라에서 싣고 왔소

 

       서융반. 내 말을 들어보시오

       이제 왕실도 평정되었으니,

       이 황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들 가시오

 

       신후(申侯)께서는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주() 나라가 이제 평정(平靜)되었는데,

       인제 와서 바쁠 게 뭐가 있겠소?

       견융(犬戎), 내 알아서 돌아가게 하겠소

 

견융(犬戎)이 떠나지 않으면서 계속 행패가 심해지자. 호경(鎬京)

백성들은 모두가 신후(申侯)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에 신후는 궁리 끝에 밀서 세 통을 삼로 제후에게 밀서(密書)

보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왕실을 구원하도록 요청했다.

 

       신이 삼가 어려움을 요청하니

       삼로(三路)의 제후들은 들어주시오

 

       유왕(幽王)의 못된 버릇을 고치고자,

       견융(犬戎)을 끌어드린 것을 먼저 용서해 주시 오

 

       나의 뜻이 본의와 달리 유왕(幽王)을 죽게 하였으며,

       지금 호경(鎬京) 성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말았소

 

       매일같이 견융(犬戎)은 심한 행패를 부리고 있소

       호경(鎬京) 성민에게 많은 원망을 듣고 있는 바이요

 

       이들이 돌아가지 않으며, 호경(鎬京) 성내의

       부녀자를 희롱하고 약탈을 일삼는 바이니,

 

       각 제후는 하루속히 호경(鎬京)에 진입하여

       주() 나라 왕실을 평정하여 주기 바라오

 

신후(申侯)는 가까우면서 군사가 많은 세 나라의 제후에게 밀서를

보내면서, 하루빨리 거병하여 줄 것을 촉구하며 하소연하였다.

 

       북로(北路)의 진후(晉侯) 희구(姫仇)

       동로(東路)의 위후(衛侯) 희화(姫和)

       서로(西路)의 진군(秦君) 영개(贏開)

 

       정() 나라에는 특별한 내용을 적어 보내면서,

       더불어 신속히 거병할 것을 종용하였다.

 

신후(申侯)는 삼로(三路)의 제후국이 근왕군(勤王軍)을 출발시킨다는

보고를 받게 되자 겨우 안심하며, 미리 대비할 일을 준비하였다.

 

       견융반(犬戎班)은 어디 있소

       왜 그러시오

       내가 좋은 술과 여자를 보내줄까 하오

 

       웬일로 고마운 말씀을 다 하십니까

       견융반(犬戎班), 기왕 노는 거 실컷 놀아보시오

 

       허 어, 놀리시는 겁니까

       허허. 여하튼 견융반(犬戎班) 고생이 많소이다.

 

       지금은 잘 쉬고 있으나

       지방에 있는 제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왜 제후들로부터 무슨 기별이 있었소

       그런 건 아니나, 제후들이 구경만 하고 있겠소이까

 

30 . 삼로의 근왕군을 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