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3 화. 목표를 성급히 쫓지 마라.
공자 칩(縶)은 초야에 묻혀있는 건숙(蹇叔)을 찾아, 모시러 가는
길이므로, 몇 명의 수행하는 무사와 함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상인(商人)의 조촐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폐백(幣帛)을 실은 두 수레를 인솔하고, 보름 동안 열심히 길을
물어가며, 그제야 드디어 명록촌(鳴鹿村)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 하. 이런 아늑한 곳이 다 있었구나.
산은 높고 깊으며 숲도 울창하구나.
신선들이 사는 마을처럼 신비롭기만 하구나.
밭을 매는 한 농부가 앞서 노래를 부르니 다른 농부가 따라 부르며
흘러들어오는 노랫가락에 공자 칩(縶)의 발길이 멈추게 되었다.
山之高兮无攆 (산지고혜무련)
산은 높아 돌아가려 하는데
途之濘兮无燭 (도지영혜무촉)
흙더미에 묻혀버린 듯 불빛이 없구나.
相將隴上兮 泉甘而土沃 (상장총상혜 감천이토옥 )
서로 함께 밭고랑 사이에 앉아있음이여!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지도다.
勤吾四體兮 分吾五谷 (근오사체혜)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이니 오곡이 생기는구나!
三時不害兮 餐飧足 (삼시불해혜 찬손족)
하루 세끼 거르지 않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도다.
樂此天命兮 無榮辱 (락차천명혜 무영욕)
즐거운 곳에서 천명(天命)을 다하니
영화(榮華)도 굴욕(屈辱)도 없는 것이로다.
공자 칩(縶)은 세속의 먼지가 전혀 묻지 않은 명록촌(鳴鹿村)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서 흥에 겨워 탄식의 말을 하게 된다.
바깥세상은 전쟁으로 살기 어려운데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양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곳이로구나.
현인군자가 사는 곳엔 고고한 기풍이 흐른다더니,
건숙(蹇叔) 선생이 어떤 분인지 가히 짐작이 가는구나!
옛말에 작은 마을에도 군자가 있으면
비속한 풍습을 바르게 잡는다는데
오늘 건숙(蹇叔) 선생이 사는 동네에 이르니
한낱 밭을 가는 농부들조차도
모두 덕이 높은 사람들의 모습이로구나.
근주자적(近朱者赤) 이란 말이 있다.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면
붉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近朱必赤 近墨必緇 (근주필적 근묵필치)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면 붉게 되고
먹(墨)을 가까이하면 검게 된다.
주사(朱砂)는 수은(水銀)과 황(黃)의 화합으로 만들어진 붉은 물질로
한번 묻으면, 붉은색이 잘 지워지지 않으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상 사용하던 붉은 인주(印朱도장밥)가 주사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은 주위 환경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며,
좋은 사람 속에 살면 좋은 사람에 물드니, 좋은 친구를 사귀야
한다고 강조하는 뜻으로, 서진(西晉)의 문신(文臣)인 부현(傅玄)이
편찬(編纂)한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오는 말이다.
잠깐 만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건숙(蹇叔) 선생의 집이 어디쯤입니까?
이 길로 곧장 가면 대나무 숲이 나옵니다.
그곳에 가면 샘이 있고 모옥(茅屋)이 있습니다.
공자 칩(縶)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인사를 올린 후에 다시 수레에
올라타고 반 리쯤 가게 되니 농부가 말한 곳에 모옥(茅屋)이
있으며, 눈을 들어 살펴보니 풍경이 과연 깊숙하고 아늑했다.
안에 누가 계십니까?
누구 이시온지요?
예, 동자(童子) 야. 건숙(蹇叔) 선생임이 안에 계시냐?
아예, 냇가에 가셨는데 곧 오실 겁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시어 기다리시지요.
아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공자 칩(縶)은 사립문 밖 돌 위에 걸터앉아 얼 만큼 지나자,
체구가 장대한 한 거한(巨漢)이 사슴을 어깨에 메고 다가오자,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알고, 먼저 인사를 하게 된다.
함자(銜字)가 어찌 되시오?
건병(蹇丙) 이라 합니다만. 어떤 일인지요.
건숙(蹇叔) 이란 분과 어떤 사이입니까?
저의 부친이 되시옵니다.
선생은 누구시기에 이 깊은 산골까지 오셨습니까?
백리해(百里奚) 라는 분이 우리 진(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계시는데, 저에게 편지를 주어
부친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시어 잠시 쉬고 계시면
부친께서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누추하오나, 이쪽 초당(草堂)으로 드시지요.
건병(蹇丙)은 응접실(應接室)인 초당으로 공자 칩(縶)을 안내하고
나자, 마침 짊어지고 온 사슴을 가져가 동자(童子)에게 말한다.
귀한 손님이 오신듯하다.
사슴 다리를 잘 익혀보아라.
할아버지가 오시거든 속히 알려주어야 한다!
건병(蹇丙)은 초당(草堂)에 들어와 공자 칩(縶)에게 인사의 예(禮)를
올리고 나자, 둘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농사와 누에 치는 일을 이야기하다가, 무예(武藝)와 병법(兵法)의
이야기에 들어가니, 건병(蹇丙)은 모든 병장기의 사용법을 정연하게
풀어가며, 막힘이 없도록 술술 이야기하니 공자 칩(縶)은 감탄하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
참으로 박식하고 훌륭하도다.
할아버지께서 돌아오고 계십니다.
건숙(蹇叔)은 이웃에 사는 두 노인과 집 앞에 이르자, 문밖에
서 있는 두 대의 수레를 보고 의아(疑訝) 하게 생각한다.
이 같은 벽지(僻地) 산골에 무슨 연고로
큰 수레가 두 대씩이나 와 있는가?
건숙(蹇叔)은 두 노인과 초당(草堂)에 들어와 공자 칩(縶)과 아들
건병(蹇丙)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데, 건숙(蹇叔)의 눈동자는 아주
맑아 호수처럼 아늑하며,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건숙(蹇叔), 선생께서는 인사를 받으시오.
소인. 공자 칩(縶) 이옵니다.
찾아뵙게 되어 영광이로소이다!
어떤 일로 이 깊은 벽촌(僻村)까지 오시었소?
백리해(百里奚)의 편지를 가져왔습니다.
백리해(百里奚)라 하셨소.
내 아우 백리해(百里奚)라 하시었소.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오!
나의 아우의 편지를 가져오셨다니
먼저 보여줄 수 있겠소?
백리해(百里奚)의 서신을 전해 받은 건숙(蹇叔)이 봉함(封緘)을
뜯고 편지를 읽어나가는 모습이 자못 신중하게 보였다.
우매한 아우는 형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우(虞) 나라가 망하는 데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초(楚) 나라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진목공(秦穆公)이 초(楚) 나라에서 이 몸을
빼내어 정사를 맡기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형님의 식견과 재주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우의 뜻을 헤아려 주시어,
형님의 재주와 지혜를 발휘하신다면,
이제 진(秦) 나라를 위할 수 있겠는바
진(秦)의 군주에게 형님을 천거하였습니다.
군주께서도 형님의 덕망과 인품을 사모하여
폐백(幣帛)을 내려, 형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 명록촌(鳴鹿村)에서 나오시어,
평생에 품으신 큰 뜻으로 이 진(秦)나라의
앞길을 열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만일 형님께서 산림을 사랑하사,
그냥 머물러 계시겠다 하시면,
이 아우 백리해도 벼슬을 버리고 형님과 함께
명록촌(鳴鹿村)에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건숙(蹇叔)은 편지를 다 읽고 나자, 공자 칩(縶)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소상(昭詳)히 물어보았다.
포부가 큰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가
현사(賢士) 임을 알게 되어, 지혜를 발휘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초楚 나라에 주고,
간신히 진(秦) 나라로 데려올 수가 있었습니다.
진목공(秦穆公)은 백리해(百里奚)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진(秦) 나라 국정을 모두 맡기려 하였으나!
상경(上卿)의 벼슬을 한사코 거절하시며,
선생을 모셔와야만 정사를 맡겠다고 하십니다.
공자 칩(縶)은 백리해(百里奚)의 전후 사정을 빠짐없이 설명하여
주며, 건숙(蹇叔)에게 양해의 말씀도 전한다.
저희 주공께서는 직접 올 수가 없어
예물을 가지고 선생을 모셔오라며
저에게 명命 하시어,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소이까. 지난날 우(虞) 나라 우공(虞公)이
백리해(百里奚)를 알아보지 못하여
우(虞) 나라가 망하고 말았는데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를 알아보고
진(秦) 나라의 정사를 맡긴다면
앞으로 진(秦) 나라는 크게 일어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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