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화. 때가 되면 별도 사라진다.
이때 공자 려(呂)는 성(郕) 나라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병을 얻어,
겨우 본국에 돌아왔으나, 며칠 사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주환왕(周桓王) 8년으로 기원전 712년 봄의 일이었다.
주공. 상경이신 공자 려(呂)께서 돌아가셨나이다!
아니. 왜 갑자기 돌아가셨느냐?
성(郕) 나라에서 병을 얻었사옵니다.
아아. 자봉(子封공자려의 자)을 잃다니 너무나 슬프도다!
나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다니 이를 어쩌란 말이냐?
아바마마. 진정(鎭靜)하시옵소서!
아바마마, 후하게 장례를 치러드리고
집안을 넉넉히 도와주시옵소서.
정장공(鄭莊公)은 국내의 내정은 제족(祭足)에게 맡기고, 군사 업무는
공자 여(呂)에게 맡기면서, 그 덕에 밖으로 나가 마음껏 활동했었다.
그러나 성(郕) 나라를 제(齊) 나라와 함께 정리하고, 이제 막 허(許)
나라를 토벌하려던 차에 공자 려(呂)가 갑자기 죽자, 정장공은 너무
슬퍼하며 울다가 마음을 수습하며, 공자 여(呂)의 집안을 보살펴
주었으며, 공자 려(呂)의 동생 원(元)을 대부로 삼아 위로하였다.
세자 홀(忽)은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나는 이제 많이 늙었도다!
앞으로 이 나라의 모든 정사는
세자가 꾸려나갈 생각을 가져야 하노라!
아닙니다! 아버님. 아직도 힘이 넘치시옵니다.
허 어, 고맙도다.
세자야! 상경(上卿) 자리에 고거미(高渠彌)를 앉혀
공자 려(呂)를 대신코자 하는데 생각이 어떠하냐?
아바마마, 고거미(高渠彌)는 욕심이 많고, 성격이
사나운 자로 중용(重用)하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정장공은 세자 홀(忽)의 말을 들어 제족(祭足)을 상경(上卿)으로
삼고, 고거미(高渠彌)는 아경(亞卿)으로 삼도록 명하였다.
그해 7월에 정(鄭) 나라의 시래(時來) 땅에서
정(鄭), 제(齊), 노(魯) 3국의 군주가 모여,
허(許)를 치기 위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시래(時來)는 황하에 접한 땅으로 지금의 형양시 동북쪽에 위치하여
세 나라 모두가 뱃길이 통하는 곳이었기에 모이기 편리한 장소였다.
칠월 초하룻날 시래(時來) 땅에서
노(魯)와 제(齊)를 만나기로 하였느니라!
출발에 앞서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마음으로
태묘(太廟)에 엄숙하게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과인은 천하에서 가장 큰 모호(蝥弧) 깃발을 만들어
이 깃발로 천하를 평정(平靜)하고 말겠노라!
정장공은 출정할 준비를 서두르면서, 지난번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모호(蝥弧) 깃발을 만들어, 천명(天命)을 들어 죄를 토벌하겠다는
봉천토죄(奉天討罪)라는 글씨를 금분(金粉)으로 써서 빛나게 했다,
모호(蝥弧)는 못된 벌레는 활로 쏘아 죽인다는 뜻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24개의 금방 울을 매다니
멀리에서 보아도 너무나 크고 화려하여
보는 사람마다 절로 감탄하게 만드는구나.
모호(蝥弧) 깃발은 세 사람의 키만큼이나 높으며, 또한 세 사람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워, 아무나 들 수 없을 만큼 웅장(雄將)하였다.
방(榜)을 붙여 알리노라!
이 큰 모호(蝥弧) 깃발을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우리 정군(鄭軍)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삼을 것이며
과인이 타고 다니는 노거(輅車)를 상으로 주겠노라!
커다랗고 무거운 모호(蝥弧) 깃발을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에게
정군의 선봉장으로 삼으며, 또한 정장공이 타고 다니는 수레를
상으로 주겠다는 방을 보자, 군사들은 혀를 내 두른다.
임금님이 타고 다니는 화려한 수레를 노거(輅車)라고 한다.
방(榜)을 써 붙인 대로 시합(試合)날 자가 되자,
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때 자줏빛 전포(戰袍)에 황금빛 갑옷을 걸쳤으며, 은투구를 쓴
검은 얼굴에 용(龍) 모양의 수염을 틀어 올린 한 장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모호(蝥弧) 깃대를 움켜쥔다.
나는 대부 하숙영(瑕叔盈) 이외다!
노거(輅車)에서 깃대를 뽑았습니다!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세 걸음 물러서서
그리고 다시 노거(輅車)에 깃대를 꽂아 놨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나는 힘이 이렇게 셉니다!
자. 노거(輅車)의 수레꾼은 어디에 있느냐?
자, 이곳으로 노거(輅車)를 몰고 오너라!
삥 둘러싼 군사들이 탄복하여 우렁찬 손뼉을 치는데, 머리에 긴 꿩
깃을 꽂은 관을 쓰고, 녹대(綠帶) 비단으로 이마를 감싸고, 붉은색
전포와 무소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선다.
하숙영(瑕叔盈) 장수는 잠시 멈추시오!
여기 영고숙(穎考叔)이 기다리고 있소이다!
영고숙(穎考叔)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모호(蝥弧) 깃발의 쇠사슬을
풀고는 등 뒤로 손이 가더니, 깃발을 뽑아 등에 메고 뛰어오르면서,
모호(蝥弧) 깃발을 높이 던졌다가 손으로 다시 받아내었다.
그리고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번갈아 마치 창을 돌리듯이 옮기니
깃발은 춤을 추듯, 휘 이익 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허 어 ! 진정 범 같은 신하로다!
이 노거(輅車)를 받고 선봉에 설 만하도다!
정장공을 비롯한 신료들과 군사들이 감탄하여, 모두 다 손뼉을
치는데, 이때 젊은 장수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다가왔다.
영고숙(穎考叔) 장수는 실력을 다 보인 겁니까?
여기 공손 알(謁)이 기다리고 있소이다!
아하. 젊은 장수, 공손 알(謁) 이로 구만!
허허! 이 큰 모호(蝥弧) 깃발은 나의 것이오!
노장(老將)께서는 모호(蝥弧) 깃발은 저에게 양보하시고
다음에 좋은 일로 겨뤄 보도록 하시지요!
아니 되오! 내, 반드시 선봉장(先鋒將)이 될 것이오.
허 어. 내 참! 이리 내놓으시오!
노장(老將)께서는 모호(蝥弧) 깃발을 이리 넘기란 말이오!
영고숙(穎考叔)이 깃대를 잡은 체 노거(輅車)를 끌고 달아나버리니,
공손 알(謁)이 방천화극(方天畫戟)을 뽑아 들고 쫓는 일이 벌어진다.
저 늙은 놈이 공실(公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아주 건방진 늙은이로다!
영고숙(穎考叔)은 도망가지 말고 거기 서거라!
정(鄭) 나라 창업자 정환공(鄭桓公)의 손자인 공손(公孫) 알(閼)은
덩치도 크면서 정(鄭) 나라 제일의 미남이라 불릴 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졌으나, 성격 만큼은 난폭하고 교활하였다.
거기에 정장공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었으며, 더욱이 공실(公室)
사람이라며,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인 행동을 자주하고 있었다.
어어, 큰일 나겠구나! 누구라도 다치면 안 된다!
대부 공손 획(獲)은 어서 세 사람을 불러들여라!
세 사람이 모두 모였구나.
범들끼리는 싸우는 게 아니다!
세 장수는 모두 우리 정(鄭) 나라 선봉장이다!
하숙영(瑕叔盈). 영고숙(穎考叔). 공손(公孫) 알(謁).
세 사람에게 하나씩 노거(輅車)를 하사하겠노라!
공손 알(謁)은 정장공이 노거(輅車)를 하사해주어 받았음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앙심(怏心)을 품게 된다.
7월 초하루가 되자, 국내문제를 제족(祭足)과 세자 홀(忽)에게
맡기고, 시래(時來)에서, 제희공(齊僖公)과 노은공(魯隱公)을
만나 정중히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왕실의 조공(朝貢)에 충실하지 않은
허(許) 나라를 왕명을 받들어 토벌하겠소이다
제(齊) 나라가 중군(中軍)을 맡아주시고
우군(右軍)은 노(魯) 나라가 맡으시며,
저희 정(鄭) 나라는 좌군(左軍)을 맡겠습니다.
중군(中軍)은 당연히 정(鄭) 나라가 맡아야 하는데
어찌 제(齊)를 중군(中軍)에 편성하는 것이오?
제희공(齊僖公)께서는 후작(候爵) 일 뿐만 아니라,
제(齊) 나라는 큰 나라이니 중군을 맡아야 합니다.
허 어. 고맙소이다.
제희공(齊僖公)은 자신을 우대해 주자 매우 흡족해 하였으며,
정장공(鄭莊公) 또한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바이므로,
상대의 힘을 북돋워 주면서, 제(齊), 노(魯), 정(鄭).의 연합군은
허성(許城)을 물샐틈없이 에워싸게 하였다.
허장공(許莊公)은 지난날의 죄를 뉘우치고 항복하라!
그것만이 백성들의 살상을 피할 수 있노라!
제희공(齊僖公)이 옷소매에서 격문(檄文)을 꺼내 큰소리로 읽자,
정장공과 노은공이 공수(共手)를 받들어 정중히 듣는다.
먼저 이 격문(檄文)을 성안으로 쏘아 보내어
허(許) 나라에 알리고 난 후에 삼 일을
기다려보고 그 다음 날 공격합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셋째 날 이른 아침에 연합군의 병거(兵車)들이 빽빽이 늘어서고
물샐틈없이 허성(許城)을 에워싸자, 허성(許城)의 백성들은 매우
놀라며 경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춘다.
허성(許城)은 지금의 하남성 허창(許昌)으로,
정(鄭) 나라 신정(新鄭)에서 정남쪽으로 2백여 리다.
그런즉, 80Km 떨어진 인접한 나라였으므로
정장공이 평소에 꼭 가지려고 탐을 내는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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