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相思花
서 휴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이
참식나무 단풍나무 섭 그늘에 심어
군락을 이루듯 무리지어 피어나는 꽃
수선화과 상사화속 빨간 꽃 무릇
초가을 구월 어느 날
꽃대가 서서히 오르며
짙은 빨간 꽃술이 화려하게 만발하여
군락을 이룬 모습이 눈을 부시게 한다.
그렇게 붉은 꽃이 지고나면
마늘잎 같은 이파리가 나와 겨울을 난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한다니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라 부르나
보고픈 그리움에 애타다 죽으면
슬픈 꽃 상사화가 된다고
사랑을 기다리다 기다리며
피처럼 붉게 물들다 쓰러지는
슬픈 꽃 상사화가 된다고
피처럼 붉은 빛깔의 꽃은
영영 떠나버린 사랑의 영정이던가.
그리움에도 만나지 못하는 얼굴이련 가
이 아름다운 꽃무릇에 누가
이처럼 슬픈 이름을 붙였을까
슬픈 꽃 상사화라고
마늘 같은 뿌리 구근. 석산石蒜은
말려 갈아 탱화幀畵의 물감으로 썼단다.
구중궁궐
한번 다녀간 임금님 발소리가 그리워
까치발로 담장 넘어 보려다 눈물짓는 여인
그렇게 한이 서려 넝쿨나무가 되어
담장을 넘어가 그리운 사랑을 보려한다.
담장을 넘어 핀다하여 능소화
담장을 넘어가 그리운 임을 기다린다.
뜨거운 한여름 대낮
다른 꽃 들이 시들할 때
붉은 듯 노란 듯 요염한 자태로
그리운 임을 기다리는 능소화
바람이 불어도 비오는 장마에도
활짝 핀 얼굴로 임을 기다린다.
그러다 어느 날.
임의 품에 앉기 듯
큰 꽃이 툭하고 생을 마감한다.
능소화는 못 심게 하였단다.
임금님 여인을 넘볼까 봐
어느 양반이 몰래 심어 임금에게 들켰단다.
아름다운 시를 보고는
양반들에게 만 허용 하였다 하여
양반 꽃이라 불리기도 하였단다.
그 양반은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을
노래로 부르진 않았으리라.
아무나 심으면 불려가 볼기를 맞았다
나랏법이 그러 하였단다.
황해도 배천군 운달산雲達山 밑
예성강의 서쪽의 강서사江西寺 라
볼수록 부처를 보는 듯하여 견불사見佛寺 라.
통일신라 시절 도선道詵 스님이 많은 영혼을
천도하여 영은사靈隱寺라 불리기도 한단다.
크고 아름답기로는 강서사江西寺.
절 경내에 있는 능소화가 북한에선
제일 크고 아름다워 천연 기념물이란다.
강서사江西寺. 능소화야.
어느 사연이 그리 깊어
메마른 북한 땅에
스님이 되었는가. 비구님이 되었는가.
그리움에 한이 맺혀 응어리진 서러움을
끝내 풀어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 영혼이 깃든 상사화로 피다니
북한은 이렇게 슬픈 사연을 알고도 정하였을까
슬픈 사연이 많아 정하였을까
그저 크고 아름답다고 정한 것 일까
앞에 있는 아파트단지는 양반들만 사는가.
기다림이 많은 사람들만 사는가.
능소화가 담을 넘어와
지나는 이의 눈을 잡는다.
요염하게 웃는 모습으로 많이도 피어
지나는 이의 발길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