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야기

댓잎소리

서 휴 2013. 10. 1. 12:12

댓잎소리

서길수

 

 

솨그락

 

늦가을 오후 녘 길

아무도 걷지 않는 대나무 숲길

떨어져 쌓인 댓잎 소리만이 울리는 길

 

파란 하늘에 가볍게 떠가는 흰 구름을

기다란 장대들이 모여 하늘로 향하며

 

수 없는 이파리들이 깃발처럼 하늘을 향하여

흩어졌다 모여졌다

 

지나는 사람에 도

하얀 구름처럼

맑은 희망을 가리며 보여주며

 

그래요 우리의 인생

파란 하늘을 향하여 가며 걸으며

긴 장대처럼 을 세워 가며 걸으며

 

꼿꼿이 먼 하늘을 향하여 갔었지

그래 그렇게 갔었어.

대나무처럼 꼿꼿이 갔었어.

 

대나무는 새순을 돋는 데 몇 년씩이나 걸리고

꽃을 피우는데 오년이나 십년

아니 이삼십 년 만에 한번 피기도 하고

꽃을 피우고는 누렇게 죽는다고 하지

 

대부분은 을 피우지도 못하고

먼 하늘만 쳐다보다 수명이 다하여 죽는 다고하지

그래 그렇다 하는구먼.

우리의 인생처럼

 

가다보면

산길도 가고

강가도 가고

후미진 길도 갔겠지

 

다 그래

다 그렇게 갔었어.

누구나 가는 길이지

그래 다 같이 그렇게 가는 길이야

 

가며 걸으며 꼿꼿이 가는 것은 참 힘들어

꼿꼿이 가는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하잖아

 

대나무도 혼자 서있기 힘들데

그래서 대나무 숲이 있잖아

대나무끼리 같이 서 있는 거야

 

솨그락

밟히는 소리만이 들려

떨어진 대나무 이파리들 소리야

 

대나무는 있잖아

하늘을 향하여 줄기차게 손짓을 하지

 

단 한번 을 피우기 위하여

이 닿을 때까지 흔든데

하늘을 향하여

 

매일매일 쑥쑥 자라

대나무는 한없이 솟고 싶은데

더 이상 자라지 않는데

 

그러나

그것으로 먼 하늘을 향하여 손짓하지

 

자기의 을 말하는 것 같아

마지막 한번 을 피우겠다고

 

꽃을 피우면 대나무는 죽지

죽기 전에 베이는 일이 더 많아

우리인생이 중도에서 꺾이는 일이 많이 있듯

 

그래도 대나무는 꺾이지는 안 해 베일망정

차라리 베이는 게 나을 거야

 

아니야,

베이지도 말고

꺾이지도 말고

 

꼿꼿이 가면 얼마나 좋겠어.

꼿꼿이도 갈 수도 있는 거야

 

꼿꼿한 사람들은

베이려 해도

꺾으려 해도 꼿꼿이 가기만 하였대.

다 그렇게 갔었다고 하는구먼.

 

이제 찬바람이 불어

늦가을이 다가왔지

 

늦가을 날 대나무 숲길을 걸으면

댓잎들이 떨어져 쌓여있어

 

대나무는 가을이라도 낙엽이 없어

단풍처럼 요란한 색깔이 없어

 

힘이 다하여 떨어지다 뿐이야

떨어진 이파리들은

그저 하얀 것처럼 회색에 가까워

 

내세울게 없다며 색깔을 만들지 않는 걸까

밟으면 솨그락 소리만 들려

 

먼 길을 걸어온 꼿꼿한 사람들도

내세울게 없다며 대나무 숲길을 걷듯

 

촌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 걸까

이나 몇 권 남기고 가는 걸까

 

대나무가 을 피우듯

어렵게 을 피우고 사그라지고 말까

댓잎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