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1 화. 어찌 칼날을 피할 수 있으랴.
제 241 화. 어찌 칼날을 피할 수 있으랴.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여희(驪姬)가 열흘 만에 순수(巡狩)에서 돌아온
진헌공에게 교태를 부리며 상냥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나 내용은 강했다.
군후께서는 먼 곳을 다녀오시느라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제 연로하셨사오니!
그냥 세자에게 군위(君位)를 물려주시고,
우리 둘이 조용히 살면 어떻겠나이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주공. 세자가 마음이 곱고 성실하오니
섭섭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세자가 마음이 곱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미 때가 늦지 않았는가?
세자를 따르는 무리가 많기도 하다!
자. 이봐. 내가 아직도 건강(健康) 하잖아?
자. 어때. 이 단단한 내 팔뚝을 보아라!
이번 사냥에서도 멀리 있는 커다란 사슴에게
힘껏 활줄을 당기어 한 방에 잡았지. 어험!
사슴 다리는 아직도 안 익었는가?
예. 지금 대령(待令) 하고 있사옵니다.
이쪽은 세자께서 제사 지내시고
올려 보내신 술과 고기이옵니다.
으음. 그래, 맛있게 보이는 구나!
어디 맛을 좀 볼까? 이리 가져오너라!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혹시나 모르옵니다.
고기를 개에게 던져보아라!
아니. 저런 개가 뻗어버리는구나!
술잔에 술을 따라 보아라.
혹시 모른다. 시녀(侍女)인 네가 먼저 마셔보아라.
아니. 그게. 그게 아니 온대요?
네 이년아! 무얼 망설이느냐?
내용을 알고 있던 어린 시녀가 당황하며 말하자, 여희(驪姬)는 벌떡
일어나 시녀의 머리채를 잡아채고는, 입에 술을 들이붓자, 어린
시녀의 아홉 구멍에서 피가 솟아 나왔다. 이에 여희(驪姬)는 흥분하여
눈물을 쏟으면서, 전혀 내용을 모르는듯이 거칠게 말을 한다.
주공. 저의 잘못입니다.
평소 덕을 베풀지 못하여,
세자가 저와 주공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제가 죽어줘야. 주공께서 편안히 사실 것입니다.
주공, 이 술 제가 마시겠나이다.
주공, 안녕히 계시옵소서.
여희(驪姬)가 순간적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술잔에 입을 데자,
깜짝 놀란 진헌공(晉獻公)이, 쫓아가 술잔을 빼앗았으나, 말릴 사이도
없이, 이미 마셔버린 여희(驪姬)가 몸을 부르르 떨다가 뻗어버렸다.
뭐 하느냐? 의원을 빨리 불러라!
뭣들 하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조례(朝禮)가 시작되자, 간밤의 일을 전해 들은
신료들이 웅성거리며, 초조히 진헌공(晉獻公)이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다 모이라 하였는데 다 왔는가?
호돌(狐突)은 나이 많아 불참이옵니다.
이극(里克)은 수레에서 떨어졌사옵니다.
대부 비정보(丕鄭父)는 고향에 내려갔사옵니다.
이번에 세자가 몹쓸 짓을 하였도다.
나에게 올린 고기와 술에 독약을 탔도다.
나 대신에 마신 여희(驪姬)가 죽게 생겼노라!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냐?
세자는 너무나 무례하옵니다.
신에게 군사를 주시오면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주공, 신도 주공께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오.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 인가?
그대들의 충성심을 받아드리노라!
나머지 대부들은 뭐 할 말이 있는가?
내가 마땅히 군사를 시켜 역자를 죽이리라!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는 상군을 거느리고
곡옥(曲沃)에 쫓아가 세자를 잡아 오너라!
궁중의 소식을 심복에게서 급하게 전해 받게 된 호돌(狐突)은 급히
곡옥(曲沃)으로 가신을 보내 자초지종을 알리게 된다.
태부(太傅) 두원관(杜原款)은 세자와 함께 망명 가시오!
타국에 망명가는 것만이 살아나는 길이요!
어서 빨리 가도록 하시오!
태부 두원관(杜原款)은 강성(絳城)에서 세자 신생을 잡으러, 상군이
이미 곡옥(曲沃)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 급하게 세자를 찾는다.
세자. 이웃 나라에 망명을 갑시다?
우선 살아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세자, 대부 선우(鮮于) 이옵니다.
억울하게 당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하군(下軍)을 이끌고 강성(絳城)에 가서,
잘잘못을 확실하게 따져야 하며,
경위도 소상히 밝혀내야만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희의 죄가 드러나도 죽이지 않을 것이오.
아버님은 늙어 그리되길 원치 않을 것이며
나도 또한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소!
세자, 빨리 망명하고 난 후에 생각하셔도 됩니다.
세자, 어서 망명을 준비하십시오!
아니 오, 아버님이 나를 살피지 않으시는데,
내가 죄를 뒤집어쓰고 망명한다면
아버님을 더욱 욕되게 하는 불효자가 되오!
도망간들 누가 나를 받아들이며, 받아준들
이런 누명을 쓰고 어찌 편안히 살아갈 수 있겠소?
인자(仁者)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으며
지자(知者)는 두 번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으며
용자(勇者)는 도망치다가 죽지 않는다. 하였소.
신생(申生)이 말을 마치고 편지를 써서 호돌(狐突)이 보낸 사람에게
다시 주어 전하게 하고는, 북쪽인 강성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린다.
이 신생이 죄가 있어 죽음을 피하지 않나이다.
비록 저는 죽게 되었으나 부왕은 연로하시고
해제(奚齊)가 어리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될 뿐입니다.
스승께서는 온 힘을 다하여 부왕을 보좌하시어
국가를 이끌어주시기를 바라오며
이 신생이 비록 죽게 되었지만,
스승께 받은 은혜는 실로 막중하였나이다.
스승님, 부디 안녕히 계시옵소서.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가 곡옥(曲沃)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세자 신생(申生)이 자결하고 난 뒤였으므로, 그 대신에 태부(太傅)
두원관(杜原款)을 묶어 함거에 싣고서는 강성(絳城)으로 돌아갔다.
주공, 세자가 자기의 죄를 알아 도망치지 않았으며
저희가 당도했을 때는 이미 자결하였나이다.
태부(太傅) 두원관(杜原款)을 빨리 꿇려라!
너는 어찌하여 세자를 망령되게 만들었느냐?
이 두원관(杜原款)이 세자를 따라 죽지 않은 것은
세자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요!
세자가 보낸 고기와 술은 6일이나 지났었소!
그간에 누가 독약을 섞었는지 살피지 않고
왜 세자에게 누명을 씌워 자결하게 하였소!
시끄럽다. 아주 건방진 놈이로구나.
입만 살아 있는 저놈을 당장 죽여라!
자기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쳐왔을 때,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그 상황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따라간 것을 운명적인
결정으로 그리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타나 있는 현상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인간적인 심리 현상을
운명이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에 세자인 신생(申生)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자결하고 만 것이다.
여희(驪姬)는 무슨 일로 울고 있느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가 세자와 합세하여
저와 주공을 죽이러 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울지마라!
아뢰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 공자가
강성(絳城)까지 왔다가, 세자가 자결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황급히 돌아가고 말았나이다.
뭐라고. 괘씸하구나! 무슨 일로 예까지 왔다가
인사도 없이 그냥 돌아갔단 말이냐?
여희(驪姬)야. 너의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진헌공(晉獻公)은 이제 여희(驪姬)의 어떠한 말이라도 무조건 믿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여희(驪姬)의 의도대로 움직여지게 되었다.
대부 가화(賈華)는 군사를 이끌고 굴성(屈城)에 가서
이오(夷吾)를 반드시 잡아 오도록 하라.
내시(內寺) 발제(勃鞮)는 포성(蒲城)에 달려가
중이(重耳)를 반드시 잡아 오도록 하라.
주공. 반항하면 어떻게 하옵니까?
그렇다면. 죽여도 좋다!
호돌(狐突)은 원로대신으로 진헌공(晉獻公)이 세자를 바꾸려 하자,
폐(廢) 세자를 하여서는 안 된다며 충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집에 칩거(蟄居) 하고 있었다.
원로 어른.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속히 말해보라?
발제(勃鞮)를 보내 중이(重耳)를 죽이려 합니다!
호돌(狐突)은 심복에게 궁중의 소식을 듣자마자, 믿는 가신을 시켜
호모(狐毛)와 호언(狐偃)이 있는 포성(蒲城)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제 242 화. 세상이 어찌 편안하게 놔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