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3 화. 강한 자에 아첨이 따르나.
제 153 화. 강한 자에 아첨이 따르나.
송(宋) 나라 유(幽) 땅의 회맹에서 돌아온 제환공(齊桓公)은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며 기분이 좋아졌으므로, 제(齊) 나라로 돌아오자마자,
조정의 신료들을 모아놓고 커다란 연회를 베풀게 하였다.
이제 과인(寡人)이 천하의 주왕(周王)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이제, 주왕과 같은 권위와 권력을
과인이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모두 들 고생들이 많았소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즐겨 봅시다.
자. 모두 술잔을 높이 들어 보시 오!
오늘은 정말 즐거운 날이 아니겠소!
주공. 만수(萬壽)! 만수(萬壽) 하시옵소서!
포숙아(鮑叔牙)는 왜 술잔을 들지 않는 거요?
이제 이룬 패업(覇業)이 즐겁지 아니한 것이오?
신이 어찌 오늘이 즐겁지 아니하겠나이까?
다만 총명(聰明)하신 우리 군주와 어진 신하는
비록 즐거울지라도 지난날의 근심하던 때를
결코, 잊지 않는 법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좌석을 돌아보니, 군신들이 모두
즐거움에 도취(陶醉)하여 있을 뿐으로
지난날의 일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지난날 망명(亡命) 하던
시절을 잊지 마시고,
관중(管仲)은 지난날 함거(轞車) 속에 갇히어
황곡(黃鵠)의 노래를 부르던 때를 잊지 말 것이며,
대부 영척(寧戚)은 가난하고 외로웠던
촌부(村夫)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포숙아(鮑叔牙)의 이 말은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직간(直諫)에서
물망재거(勿忘在莒) 라는 이야기로 나온다.
물망재거(勿忘在莒) 란?
말 물勿, 잊을 망忘, 있을 재在, 나라 이름 거莒.
물(勿)은 무엇을 감거나 똘똘 마는 것을 뜻한다.
곧 옛일을 잘 간직하자는 뜻이 되겠다.
제환공(齊僖公)이 공자 시절에 어머니 나라인
거(莒) 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시절을
돌이켜보며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된다.
영척(寧戚)은 위(衛) 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있었으나, 처지가 너무나 궁곤하여 상인의 짐수레를
모는 하인 생활도 하였으며, 남의 천거를 받을 수가 없었으나,
다행히 관중(管仲)을 만나 제(齊) 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이 같은 말에 제환공(齊桓公)은 깜짝 놀라며, 불현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포숙아(鮑叔牙)에게 읍하고 난 뒤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포숙아(鮑叔牙)의 말을 다들 들었소?
지금, 이 순간부터 포숙아(鮑叔牙)의 말대로
과인부터 어려웠던 시절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오!
포숙아(鮑叔牙)의 말은 이 모두!
우리 제(齊) 나라 사직(社稷)의 무궁한 복이오!
이때, 왕실의 주공(周公) 기보(忌父)와 소백(召伯) 요(寥)는 왕자
퇴(頹)의 난(亂)이 일어났을 때, 주혜왕(周惠王)을 따라다니며
보호하였던 측근 중의 측근이었는데, 소백(召伯) 요(寥)가 왕실의
사자로 제(齊) 나라에 오게 된 것이다.
소백(召伯) 요(寥) 임, 어서 오십시오.
어찌 기별(奇別)도 없이 오셨나이까?
내가 온 까닭을 모르시오?
왕명을 어찌 짐작(斟酌) 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왕자 퇴(頹)의 난에 돕지 않은 것을
탓하시러 오신 것입니까?
소백(召伯) 요(寥)는 의아해하는 제환공(齊桓公)을 바라보며, 가지고
온 함에서, 주혜왕(周惠王)의 칙서(勅書)를 꺼내어 읽어주었다.
왕명을 받으시오!
이제 회맹의 맹주가 된 제공(齊公)에게
방백(方伯)의 직위를 내리노니!
제공(齊公)은 불의를 정벌하는 데 온 힘을 쏟아라.!
지난날 위(衛) 나라 위혜공(衛惠公)은 짐을 몰아내고
왕자 퇴(頹)를 도와 왕위에 앉혔었노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위(衛) 나라를 징벌치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탄(恨歎)하며 서러울 따름이로다.
다행히 제공(齊公)이 맹주(盟主)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제 방백(方伯)이 된 바이라,
위(衛)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짐의 분한 마음을 씻어주기를 바라 노라!
주혜왕(周惠王)은 칙서(勅書)로써 방백(方伯) 이란, 칭호를 내렸다.
방백(方伯) 이란, 제후(諸侯) 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일찍이 주(周) 왕조를 세울 때 주무왕(周武王)이 태공망(太公望)
강상(姜尙)에게 방백(方伯) 이란, 지위를 내린 적이 있었으므로,
이는 실로 300여 년 만의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제환공(齊桓公)이 누려왔던 패공(覇公)이나,
맹주(盟主)라는 지위는 왕실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왕실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중원의 여러 동맹국인
제후들 간에만 통용되는 호칭이었다.
주혜왕(周惠王)에게서 방백(方伯)이라는 직위를 제수받게 되니
패공(霸公)이라 자처하는 것보다 더한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이제 왕명(王命)이 내려진 바이오.
왕명으로 위(衛) 나라를 징벌할 것이오!
자, 봄이 되었다.
제군(齊軍)은 모두 출동하라!
제환공(齊桓公)은 주혜왕(周惠王)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대뜸 위(衛) 나라 국경을 돌파해 버렸다.
이때 왕자 퇴(頹)를 도와 주혜왕(周惠王)을 핍박했던
위혜공(衛惠公)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으며,
그의 아들 적(赤)이 새로이 군위에 올라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위의공(衛懿公) 이다.
위의공(衛懿公) 역시 제환공이 침략해오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곧장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첫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우리가 싸우긴 하였다 만!
제군(齊軍)이 왜 쳐들어온 것인가?
주공. 왕실의 명을 받았다 하니
왕자 퇴(頹)의 난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선군(先君)의 잘못이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먼 옛날의 일이라고 하오나?
이는 위(衛) 나라 이름을 징벌하는 것입니다.
아들 개방(開方) 아. 잘 들어라.!
제환공(齊桓公)에게 이 뇌물들을 주면서
강화(講和)를 꼭 맺고 돌아오도록 하라!
위의공(衛懿公)의 장남이며 세자인 개방(開方)이 황금과 비단을
다섯 수레나 싣고 강화를 요청하자, 이런 사실을 모두 알게 된
제환공은 많은 뇌물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아비는 왕실에 몹쓸 짓을 하였노라. 그러나
아비의 죄는 자손에게 미치지 않는다!
내 어찌 위의공(衛懿公)을 핍박하겠는가?
원래 말재주가 좋았던 세자 개방(開方)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제환공(齊桓公)이 패공(覇公)이며 방백(方伯)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호방(豪放) 한 모습을 보자, 불현듯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는 위(衛) 나라로 향하던 발길을 되돌려 다시 제환공을 찾아갔다.
세자 개방(開方)은 어찌하여 되돌아왔는가?
신은 제(齊) 나라에서 군후(君侯)를 모시며 살고 싶나이다.
신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대는 위의공(衛懿公)의 장자(長子)가 아닌가?
그대는 다음날 위(衛) 나라 군주(君主)가 될 터인데?
어찌하여 이리 쉽게 군위(君位)를 버리고
신하가 되면서까지 나를 섬기려 하는가?
제후(齊侯)께서는 천하의 명군이십니다.
명군을 옆에서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커다란 영광이 되옵는데,
어찌 군주 자리만 못 한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제환공(齊桓公)은 위(衛) 공자 개방(開方)이 재밌으면서 추겨주는
말솜씨에 마음이 흡족해졌으므로, 개방(開方)에게 대부 벼슬을
내려주면서 데리고 다니며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방백(方伯 )께옵선 아시는지요?
개방(開方)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신의 어린 고모(姑母)가 너무나 어여쁩니다.
그냥 놔두기는 너무 아깝나이다.
수초(竪貂) 야! 어서 위(衛) 나라에 다녀오너라.
위의공(衛懿公)은 수초(竪貂)가 폐백을 바치며, 여동생 위희(衛姬)를
달라면서 개방(開方)의 말을 전하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을 또 첩(妾)으로 보내게 되니, 언니를 장위희(長衛姬)라 고쳐
부르게 되며, 그 동생을 소위희(小衛姬)라 불렀으며, 그때는 이미
장위희(長衛姬)가 낳은 무휴(無虧)가 제(齊)의 장자가 되어있었다.
스스로 거세하고 내시(內侍)가 된 수초(竪貂)와
자기 아들을 죽여, 사람고기 맛을 보인 역아(易牙)와
그리고 위(衛) 나라의 세자 자리를 버리고 제(齊) 나라로
옮겨온 위(衛)의 세자 개방(開方)을 두고
사람들은 어느 사이에 삼귀(三貴)라 부르거나,
지나치게 총애를 받는다 하여 삼총(三寵)이라 불렀다.
제환공(齊桓公)이 비위를 잘 맞추는 아첨꾼들을 너무 총애하자,
장차 큰 화(禍)를 당할 거라는 이야기가, 벌써 제(齊) 나라 곳곳의
사람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제 154 화. 방백의 역할을 다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