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 화. 풍전등화에 복귀하다니
43. 왕자 퇴의 반란.
제 151 화. 풍전등화에 복귀하다니
왕자 퇴(頹)의 사부 위국(蔿國)을 비롯한 변백(邊伯),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 선부(選夫) 석속(石速)의 오대부(五大夫)는
자신들의 가병을 총동원하여 난을 일으키고 만다.
그러나 뜻밖에도 왕실의 신료(臣僚) 들과 주공(周公) 기보(忌父)와
소백(召伯) 요(寥) 등이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군을 진압해 버렸다.
이에 사부 위국(蔿國)과 오대부(五大夫)는
소(蘇) 땅으로 달아났으며,
그곳에서 주(周) 왕실과 사이가 나쁜
위(衛)와 연(燕) 나라를 충동질하여
다 같이 음모를 꾸미는 데 노력하였다.
그들은 드디어 위군(衛軍) 과 연군(燕軍)을 동원하여
재차 왕성(王城) 인 낙양성(洛陽城)을 공격하였다.
제2차 반란은 반란군이 승리하였기에 왕실의
주공(周公) 기보(忌父)와 소백(召伯) 요(寥)는
할 수 없이 주혜왕(周惠王)을 모시고
온(溫) 땅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부 위국(蔿國)과 오대부(五大夫) 등은 왕자 퇴(頹)를 다시
추대하여, 다시 왕으로 세우는 데 성공하였으며, 왕실을 완전히
차지하고 기고만장해졌다.
주공, 신이 그간의 왕실에서 일어났던
상황(狀況) 들을 모두 말씀드렸나이다.
그동안 사숙(師叔)은 고생하였도다.
모처럼 왕실과 손을 잡으려 하였는데
정(鄭) 나라에 운이 따르지 않음인가?
너무나 안타깝게 되었구나!
주공, 신 숙첨(叔詹) 이옵니다.
사숙(師叔)의 말에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왕실은 반란자들의 소굴(巢窟)로 변하여
민심이 물 끓듯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되옵니다.
이 기회에 군사를 일으켜 주혜왕(周惠王)을 도와
왕궁으로 환궁(還宮)하게 도우신다면
이보다 더 큰 공로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정(鄭) 나라는 낙양(洛陽)에 매우 가까우므로
맹주를 자처하는 제환공(齊桓公)이 개입하기 전에,
속히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제압하시옵소서.
허, 거, 정말 묘책(妙策) 이로다.
숙첨(叔詹)의 말대로 왕실의 신뢰를 얻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로다.
정여공(鄭厲公)은 먼저 발 빠르게 사숙(師叔)을 온(溫) 땅으로 보내,
그곳에 피신해 있던 주혜왕(周惠王)과 그 일행들을 정(鄭) 나라의
역성(櫟城)으로 정중히 모셔 들이게 하였다.
역성(櫟城)은 정여공이 17년간 머물던 곳이므로, 궁실(宮室)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었으므로 보실만한 장소가 되었다.
주상께옵서는 강건(强健) 하시온지요?
정백(鄭伯)의 도움으로 많이 좋아졌소!
주상, 다음 해 봄에 낙양성(洛陽城)에 쳐들어가
환궁(還宮) 하시도록 돕겠나이다!
정백(鄭伯)! 그리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정여공(鄭厲公)은 직접 역성(櫟城)으로 달려가 주혜왕(周惠王)을
찾아 알현하고, 왕실을 안정시키기 위해, 군사를 몰고 낙양으로
쳐들어갔으나, 그러나 왕궁을 지키고 있던 위(衛)와 연(燕)의
연합군에 패하여 아무런 소득도 없이 정(鄭) 나라로 되돌아왔다.
주공, 신 사숙(師叔) 이옵니다.
우리 정(鄭) 나라 혼자 힘으로는 힘들겠나이다.
위(衛)와 연(燕) 모두 철수할 때를 기다렸다가
괵(虢)과 연합하시어 공격하시옵소서!
정여공(鄭厲公)은 그해 겨울 동안 서괵공(西虢公)에게 여러 차례
공들여 사자를 보내었으므로, 서로 연합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다음 해 4월, 미(弭) 땅에서 군사를 합류하여
정여공(鄭厲公)과 서괵공(西虢公)은 두 길로
나누어 왕성인 낙양성(洛陽城)으로 진격하였다.
정여공은 주혜왕과 더불어 친히 정군을 독려하면서
낙양성(洛陽城)의 남문을 쳤으며, 서괵공(西虢公)은
다소 약한 북문을 향하여 쳐들어갔다.
이때는 위(衛)와 연(燕)의 군대가 모두 철수한 뒤였으므로, 왕성의
군사만으로는 두 나라 연합군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삽시간에 낙양성(洛陽城)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지자
위국(蔿國)이 퇴(頹)에게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황급히 찾아갔다.
주상. 사부 위국(蔿國)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지금 소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지 않으냐?
다음에 오라고 하여라!
이때 왕자 퇴(頹)는 후원에서 소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있었으므로
성 밖의 사정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다음에 오라고 하면서 사실상
만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구나. 가까운 위(衛) 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국서를 써서 보내리라.
왕자 퇴(頹)의 사부(師傅)인 위국(蔿國)이 위(衛) 나라에 원군을
청하는 국서를 써서 보내고 있을 무렵에, 낙양성(洛陽城) 안의
백성들은 성밖에 주혜왕(周惠王)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가 낙양성(洛陽城) 성문을
열어젖히고 말았다.
주상, 신 위국(蔿國)이 다시 왔사옵니다.
사부 위국(蔿國)! 이게 무슨 함성(喊聲) 소리요!
주상. 이제 큰일 났사옵니다.
낙양성(洛陽城) 안의 백성들이 성 밖에 주혜왕(周惠王)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歡呼聲)을
지르며, 몰려 나가, 남문의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주혜왕과 정여공을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주상, 어서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주상, 신 위국(蔿國)이 한탄하옵니다.
주상, 소 때문에 다 잡은 천하를 놓쳤습니다.
주상, 아 아. 원통하고 원통옵니다!
위국(蔿國)은 이렇게 탄식하고는,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으며,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부(詹夫)는 백성들에게 사로잡혀
맞아 죽었으며, 변백(邊伯)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그러나 왕자 퇴(頹)
만은 요행히 서문으로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선부(選夫) 석속(石速) 아!
소를 빨리빨리 몰아라!
주상. 소들이 살이 쪄 잘 걷지를 못하나이다!
주상, 소들을 버리시옵소서.
이 아까운 소들을 버릴 수는 없잖느냐?
어떻게 하던 빨리 가게 하여보아라!
왕자 퇴(頹)는 비단(緋緞) 옷을 입은 소 떼를 몰고 가니, 도망가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으므로, 결국 추격해온 정군(鄭軍)에 사로잡혀,
얼마후가 되자, 낙양성 남문에 걸린 퇴(頹)의 목을 볼 수가 있었다.
이에 염옹髯翁이 왕자 퇴頹의 어리석음을 시를 지어 탄식했다.
挾寵橫行意未休 (협총횡행의미휴)
왕의 총애를 믿고 제 마음대로 하더니
私交乘舋起奸謀 (사교승흔기간모)
사사로이 모의하여 역모를 꾸몄구나.
一年南面成何事 (일년남면성하사)
일 년 동안 왕이 되어 무얼 하였던가?
只合關門去飼牛 (지합관문거사우)
단지 성 밖에 나가 소를 먹였을 뿐이로다.
주혜왕(周惠王)은 정여공(鄭厲公)과 서괵공(西虢公)의 도움을 받아
겨우 낙양성(洛陽城)에 돌아와 다시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짐이 다시 낙양성(洛陽城)에 돌아온 것은
정백(鄭伯)과 괵공(虢公)의 공이 너무나 컷도다.
정백(鄭伯)에게 호뢰(虎牢) 동쪽의 땅과
거울 달린 허리띠를 하사(下賜) 하노라.
서괵공(西虢公)에게는 주천(酒泉)의 땅과
제사 때 쓰이는 옥잔(玉盞)을 하사(下賜) 하노라.
정여공(鄭厲公)은 왕자 퇴(頹)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며
마치 자기가 왕이나 되는 양 큰 연회를 베풀면서 거들먹거렸다.
정여공은 참 소갈머리 없는 사람이오!
왕자 퇴(頹)의 행동을 본받고 있소이다.
저자도 머지않아 화를 당할 것이오!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겉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모두
손가락질하고 있다는걸, 정여공(鄭厲公)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이제, 주상을 등에 업고 천하를 평정해
우리 정(鄭) 나라를 우뚝 세워보리라!
정여공(鄭厲公)은 그해 5월이 되자, 주혜왕(周惠王)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물러 나와, 정(鄭) 나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정여공(鄭厲公)은 돌아가는 도중에
먹은 음식이 체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겨우 신정(新鄭) 성에 당도(糖度) 하기는 하였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니, 그는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만다.
뒤를 이어 세자 첩(捷)이 새로이 군위에 올라 정문공(鄭文公)이
되며, 그때가 제환공(齊桓公) 13년이며 기원전 673년에 해당한다.
제 152 화. 음기를 버리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