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 화. 큰마음은 큰 사람을 얻는가.
제 142 화. 큰마음은 큰 사람을 얻는가.
청(婧)의 말을 다 듣고 난 관중(管仲)은 그제야! 그녀 청(婧)이
고금의 경사(經史)와 문학에 통달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비로써 고개 숙여 사과하는 말을 하게 된다.
청(婧) 아, 너를 무시한 나의 잘못이로구나!
조금 전의 촌부가 알쏭달쏭한 말을 전해왔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구나?
나리, 무슨 말이었는지요?
그래 한번 들어보아라.
넓고도 넓구나!
햇빛은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여!
라고 말을 하였느니라.
그것 때문에 고심하시었나이까?
그것은 백수(白水)의 시(詩) 한 구절이옵니다.
백수(白水)의 시(詩) 라니 어떤 시인가?
옛날 한 현자(賢者)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강물을 바라보며 지은 노래라 합니다.
그래 청(婧) 아! 시의 내용을 알고 있느냐?
소첩이 좋아하는 시(詩) 이온데 모를 리 있겠나이까?
나리! 소첩 청(婧)이 읊어 보겠나이다.
나리께선 한번 들어보시옵소서.
浩浩白水 (호호백수) 넓고 넓구나, 백수 여!
鯈鯈之魚 (조조지어) 많고 많은 물고기 유유히 노니네.
君來召我 (군래소아) 군후, 오시 어 나를 부르니
我將安居 (아장안거) 내 장차 어디서 편히 살게 되리?
백수(白水)의 시는 일시(逸詩) 백수(白水) 편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 내용을 관중(管仲)과 청(婧)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청(婧) 아, 그 뜻이 무엇이냐?
나리! 이 시는 예로부터 초야에 묻혀 사는
현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소첩의 생각으로는 그 촌부도 나리께
아마 벼슬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애첩 청(婧)의 해석을 모두 들은 관중(管仲)은 모든 것을 확연히
깨달았으며, 그 촌부가 예사(例事) 인물이 아닌 것을 짐작하였다.
빨리 수레를 멈추어라!
그 촌부를 나에게 오게 하라!
촌부(村夫)! 그대는 누구시오?
이 촌부(村夫)는 위(衛) 나라 사람으로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척(戚)이라 하나이다.
으음, 위(衛) 나라 사람, 영척(寧戚)이라?
으음, 영척(寧戚)은 이리 가까이 와보시오.
그 촌부(村夫)는 자신을 영척(寧戚)이라 밝히면서 고개만 숙일
뿐으로, 공손히 절을 올리지 않았기에 건방지게 보였으나,
관중(管仲)은 그에 개의치 않으면서 또 물어보고 있다.
영척(寧戚)! 그대는 내게 할 말이 있는가?
어서 말해보시오.
상군(相君)께선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선비를 예의로 대접한다기에 사모하였던바
산 넘고 물 건너 제(齊) 나라까지 찾아와
요행히 이곳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관중(管仲)은 시험 삼아 그 촌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런 막힘도 없으면서 청산유수처럼 해박(該博)
하게 답변함으로, 속 깊은 인재인 것을 알게 되어 크게 감탄하였다.
호걸(豪傑)이 진흙 속에 묻혀있으니
찾아내 닦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참다운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대 영척(寧戚)은 들으시오?
우리 주공께서 제군(齊軍)과 함께 지나갈 것이오.
내가 편지를 한 통 써드릴 테니
주공이 지나가실 때 편지를 바치시오!
그러면 우리 주공께서 반드시
그대를 높이 등용하게 될 것이오!
관중이 편지를 써서 주고 떠나가자, 영척(寧戚)은 전과 다름없이
요산(猺山) 밑에서 소와 함께 제환공(齊桓公)을 기다리게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 제환공이 군사들과 함께 그곳을 지나가게 되자,
영척(寧戚)은 전처럼 짧은 홑바지에 낡은 삿갓을 쓰고, 수레가
가까이 다가오자, 소뿔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滄浪之水白石爛 (창랑지수백석란)
깊고 푸른 물속의 하얀 돌은 찬란하게 빛나고
中有鯉魚長尺半 (중유잉어장척반)
물속에 잉어는 한 자 반만큼이나 크구나.
生不逢堯與舜禪(생불봉요여순선)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행한 선양의 일을
내 평생 아직 보지 못하여
短褐單衣才至骭(단갈단의재지한)
짧은 바지 홑적삼이 정강이도 가리지 못하는구나.
從昏飯牛至夜半(종혼반우지야반)
새벽부터 시작한 소몰이는 어느덧 야밤이 되네
長夜漫漫何時旦(장야만만하시단)
긴 밤은 언제 지나고 아침은 언제 올 것인고?
제환공(齊桓公)은 영척(寧戚)의 노래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걸 알고는
시종에게 명하여 영척(寧戚)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였다.
그대, 촌부(村夫)는 누구인가?
성은 영(寧) 이며 이름은 척(戚)이라 하나이다.
영척(寧戚)이라 하였는가?
그대는 한낱 소를 키우는 촌부가 아닌가?
어찌 감히 나랏일을 풍자(諷刺 )하는 것이냐?
신은 소를 치는 한낱 농부로서
어찌 나랏일을 기롱(譏弄) 할 수 있겠나이까?
그대는 알고 있는가?
지금, 위로는 주왕(周王)이 계시고 아래로는 과인이
주왕(周王)을 도와 만백성을 생업에 즐기게 하여
초목도 봄빛의 혜택을 받고 있어.
요순(堯舜) 시대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니라!
너는 어찌하여 요순(堯舜) 시대를 못 만나,
밤만 길고 아침은 오지 않는다고 노래하는 것이냐?
이 시절을 비웃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 고?
신이 비록 한낱 촌부이긴 하오나?
요순(堯舜) 시대의 일은 들어서 알고 있나이다.
그때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법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잘 따르고 순종하였다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하시나이까.?
지금은 기강(紀綱)도 서지 않고 교화(敎化)도 실행되지
않는데 걸핏하면 요순시대(堯舜時代)와 다름없다고
말하니 소인은 정말로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옵고 또 들은 바에 따르면,
요순시대(堯舜時代) 엔 백관이 올바른 정사를 펴자
모든 제후가 올바르게 따르며 복종하였고
순(舜) 임금 떼는 백성에게 폭행을 일삼던
사흉(四凶)인 공공(共工), 환두(驩兜), 곤(鯀),
삼묘(三苗)를 쫓아내고 제거하였나이다.
그에 천하가 안정되어, 태평성대라 말하지 않아도
백성은 평화롭고 나라의 위엄이 섰다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하나이까?
어제 동맹(同盟)을 맺고 오늘 배반(背反)을 합니다.
아들은 아비를 죽이고 동생은 형을 죽이는바
수시로 군주의 자리가 바뀌고 있나이다.
군사들은 쉴 새가 없고 백성들은 지쳐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형편이옵니다.
그런데도 태평성대라 말씀하시니
소인은 그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제환공은 영척(寧戚)이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수시로 변하며 몹시 화가 나 고함을 지른다.
소치는 촌부가 이다지도 공손(恭遜) 하지 못할까?
냉큼 저놈을 끌어내 당장 목을 베어버려라!
군사들이 달려들어 영척(寧戚)을 밧줄로 묶고 칼을 뽑아 들어 목을
치려 하였으나, 영척(寧戚)은 추후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아, 나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치노라!
폭군 걸왕(桀王)은 충신 관용봉(關龍逢)을 죽였고
폭군 주왕(紂王)은 충신 비간(比干)을 죽였도다!
오늘 이제 영척(寧戚)이 죽는다마는 나의 이름은
그들과 함께 천추에 빛날 것이로다!
영척(寧戚)의 기상은 늠름하기까지 하여,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공손습붕(恭遜襲封)이 비로소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주공, 주공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
저 사람은 죽음 앞에 이르렀건만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나이다!
신이 보건대 단순한 촌부가 아니옵니다!
저 촌부를 살리심이 어떠하실는지요?
그 말에 제환공도 깨닫는 바가 있어 마음을 고쳐먹고, 밧줄을
풀어주도록 명하며, 영척(寧戚)을 향하여 부드럽게 말하였다.
과인이 잠시 그대를 시험하여 보았소!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선비로다.
아니, 이게 무엇인가?
앞서간 중보(仲父)께서 남기신 편지이옵니다.
어찌 이제 편지를 내놓는 것인가?
제 143 화. 덕을 베풀어 굴복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