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 화. 자기 그릇만큼 판단한다.
40. 천하를 제패하는 제환공.
제 141 화. 자기 그릇만큼 판단한다.
제환공(齊桓公)이 노(魯) 나라에 보여준 결단은
중원의 제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며
큰 믿음을 심어주게 되었다.
조말(曺沫)의 과감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의로운 일을 행한 사람이라는 말로, 협객(俠客), 협자(俠者),
유협(遊俠), 임협(任俠) 등의 시조(始祖) 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曺) 나라 조후(曺侯)와
위(衛) 나라 위혜공(衛惠公) 역시
북행(北杏) 모임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서 서둘러 사자를 보내,
용서를 빌면서 회맹에 가담하겠다고 전해왔다.
큰마음으로 조말(曺沫)을 용서하고, 빼앗았던 수(遂) 나라와 촉(蜀)
땅까지 돌려주자, 조(曺)와 위(衛)가 저절로 굴러들어온 것에
비로소, 제환공은 관중(管仲)의 깊은 뜻을 확연(確然)하게 깨달았다.
중보(仲父)! 덕분에 귀중한 것이 무언가를 알게 되었소.
주공. 얻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관중(管仲)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 대답하자. 제환공은 다음으로
송(宋) 나라 문제를 거론하며 토벌할 생각을 피력(披瀝) 하였다.
송환공(宋桓公)은 우리 덕에 군위를 인정받았음에도
자신이 맹주(盟主)가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새벽에 도망치듯 북행(北杏)에서 떠나질 않았소?
주공, 역(逆) 하는 자는 벌(伐) 하여야 하옵니다.
거역(拒逆) 하는 자는 무력(武力)으로 다스려야 하옵니다.
제환공은 왕실에 사자를 보내어, 송(宋) 나라가 왕명을 받들지도
않으면서, 회맹에도 참석하지 않았기에 토벌하겠다는 뜻을
상고(上告)하자, 주희왕(周僖王)은 쾌히 승낙하며 명을 내려주었다,
이에 제환공(齊桓公)은 모든 제후국(諸侯國)에게 송환공(宋桓公)의
죄상을 널리 공표하여 알리고 있을 그때, 뜻밖에도 왕실에서
주희왕(周僖王)의 칙서(勅書)가 내려오는 것이다.
짐(朕)이 알리노라!
천하의 질서가 많이 흐트러져 있도다.
제(齊) 나라 백구(伯舅)의 뜻에 따르지 않는
제후는 모두 토벌하도록 하라!
토벌을 돕기 위해 왕사군(王師軍)을 보내노라.
주희왕(周僖王)이 왕명뿐만 아니라, 왕사군(王師軍)까지 보내주자,
비록 많은 군사의 수는 아니었지만, 왕사군(王師軍)을 파견하여
준 것은 대단한 믿음을 부여하여 주는 일로써, 제환공에게
자신감을 느끼게 하였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 되었다.
왕사군(王師軍)을 이끌고 온 왕실 대부
선백(單伯)은 주성왕(周成王)의 작은아들로
진(陳) 나라에서 분봉하였던 선(單) 나라 제후이다.
그때 작위는 백작(伯爵)으로 높았으나 선(單) 나라는 아주 작았다.
지금의 섬서성 보계현(寶鷄縣)에 있었다.
왕실이 우리 제(齊) 나라를 믿고 의지하는구나!
과인의 명(命)은 주왕(周王)의 명(命)과 같으렷다!
이보다 더 당당한 명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처럼 제환공은 자신을 갖게 되었으며, 어느 사이에 송(宋) 나라를
토벌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진(陳)과 조(曺) 나라도 스스로
지원군을 파견하겠다는 통보를 하여 왔다.
이때가 주희왕(周僖王) 재위 2년이며, 제환공(齊桓公) 6년으로
기원전 682년의 일이다,
이제 봄이 되었소! 출정합시다.
중보(仲父)께서는 선발대로 1군을 거느리고
먼저 임치(臨淄)를 출발하여 송(宋) 나라 국경에서
진(陳)과 조(曺), 두 나라 군사들과 합세하시오.
제환공도 공손습붕(恭遜襲封), 왕자 성보(成父), 동곽아(東郭牙)를
앞세우고 왕사군을 이끄는 선백(單伯)과 함께 관중의 뒤를 따라간다.
관중(管仲)에게는 사랑하는 애첩으로
청(婧) 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청(婧)은 종리(鍾離) 땅 태생으로 여자임에도,
고금 경사(經史)와 문학에 통달하였으며
미모와 지혜가 출중하면서 마음도 너그러웠다.
원래 제환공은 여색을 좋아하여, 출행할 때건, 전쟁터건, 회담 때건
간에, 희빈(姬嬪) 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관중(管仲) 또한
언제나 애첩인 청(婧)을 동반시켜 다녔다.
언뜻 보기에는 꽃놀이 가는 듯이 관중(管仲)은 청(婧)과 함께 수레를
다정하게 타고 가는 모습으로, 송(宋) 나라를 토벌하러 가고 있었다.
벌써 요산(猺山) 밑에 이르러 지나가려 하는구나.
짧은 홑바지에 부서진 삿갓을 쓴 촌부(村夫)가
소를 놓아먹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구나!
촌부(村夫)는 길가에서 소뿔을 두드리며
무슨 노래를 저리 부르고 있는가?
정말, 한가로운 모습이로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예 이. 나리 무슨 일이시옵니까?
저 촌부(村夫)에게 술과 음식을 갖다 주어라!
예에, 대장수(大將帥) 어른, 바로 갖다 드리겠나이다.
관중(管仲)은 흥에 겨워 노래하는 촌부(村夫)에게 술과 음식을 갖다.
주게 하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는데, 술과 음식을 받고 난
촌부는 술을 가져온 종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나는 상군(相君) 중보(仲父)를 만나보고자 하오?
재상(宰相)께서는 벌써 지나가시었소!
나의 이 말을 상군(相君)께 전해주시오?
무슨 내용의 말을 전해 달라는 것이오?
종자(從子)는 급히 관중(管仲)의 수레에 쫓아가 촌부에게서 들은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전하여 주게 되었다.
넓고도 넓구나!
햇빛은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강물이여!
관중(管仲)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미간을 찌푸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첩 청(婧)은 궁금하여 살포시 물어보았으나,
관중(管仲)은 먼 산만을 바라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리께서는 어찌하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계시옵니까?
네가 알 바가 아니로다!
나리! 소첩(小妾)은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늙은 사람을 늙었다 업신여기지 말고
천한 사람을 천하다 업신여기지 말며
어린 사람을 어리다며 업신여기지 말고
약한 자를 약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청(婧)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나리! 옛날, 태공망(太公望)은 조가(朝歌)에
들어와 저잣거리에서 소를 잡으며 살다가
나이 팔십에 주문왕(周文王)의 스승이 되었으며
나이 구십에 제(齊) 나라 제후로 봉해졌나이다.
나리, 이것으로 견주어 보건대
늙은 사람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은(殷) 나라 개국공신 이윤(伊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신씨(有莘氏)의 딸이 은(殷) 나라 탕왕(湯王)에게
시집갈 때 데리고 간 요리사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러나 탕왕(湯王)은 그를 재상으로 삼아
천하를 다스리게 하여, 한때 태평성대를 이루었나이다.
나리, 이것으로 견주어 보건대
천한 사람을 어찌 천하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허 어,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나리,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하왕조(夏王朝) 때의 명신 고자(皐子)는
불과 다섯 살에 하(夏) 나라의 처음 임금인
우왕(禹王)을 도와 나라를 태평하게 이뤄놨나이다.
나리, 이것으로 견주어 보건대
어린 사람을 어찌 어리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나리, 한혈마(汗血馬) 라는 말은 태어나서 이레만 되면
어미 말을 앞지른다고 하였사옵니다.
나리, 이것으로 견주어 보건대
약한 것을 어찌 약하다고 할 수 있겠나이까?
제 142 화. 큰마음은 큰 사람을 얻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