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화. 시기심이 나라를 망치는가.
제 59 화. 시기심이 나라를 망치는가.
허(許) 나라는 요(堯)임금 때 제후들을 감찰하던 관직의 하나인
태악(太岳) 이란 벼슬이 있었다. 그 태악(太岳) 직에 있던
허유(許由)가 영수(潁水) 남안을 봉지로 받으며, 세워진 나라이다.
상(商) 나라가 망하고, 주무왕(周武王)이 천하의 주(周)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남작(男爵)의 작위를 받은 작은 나라였다.
주공, 항복하는 것은 곧 멸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나라를 꼭 지켜 내야 합니다!
남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결심하였는가?
주공, 백성들의 마음이 그와 같사옵니다!
주공, 전심전력으로 우리 허(許)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허장공(許莊公)은 백성의 뜻에 따라, 성을 지켜 내기로 하였으며,
남녀노소나 어린아이까지 모두 죽기 살기로 방어를 하였다.
작은 허성(許城)이므로, 한 번만 공격하면 쉽게 함락시킬 줄
알았으나, 허(許) 나라 백성들의 굳센 저항에 부딪혀, 오히려
연합군의 군사들이 많이 죽어 나가며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물러서지 않는구나.
허(許) 나라 백성들이 왜 이리 강한가?
주공, 허장공(許莊公)이 평소 덕을 많이 쌓아
민심이 똘똘 뭉쳐 철통같이 성을 굳게 지켜 내니
쉽게 함락하지 못하고 있나이다.
주공, 제(齊)와 노(魯) 두 나라는
자기들을 위한 싸움이 아니란 듯이
적극적으로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허 어, 이러다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이제 어찌해야 좋겠는가?
주공, 그렇사옵니까? 그렇다면 이 영고숙이
허성(許城)의 성벽에 맨 먼저 올라가겠사오니!
어서 성벽의 높이만큼 망루(望樓)를 세워주십시오!
영고숙(穎考叔)이 모호(蝥弧) 깃발을 움켜쥐고, 망루를 일순간에
박차며 뛰어올라, 허성(許城)의 성벽 위에 막 서려던 참이었다.
그때 아무도 모르는 화살이 날아와 가슴을 꿰뚫으니
영고숙은 모호(蝥弧) 깃발과 함께 떨어져
처참하게 죽고 마는 일이 벌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하숙영(瑕叔盈)이 울분을 참지 못하며, 모호
깃발을 집어 들고, 성벽 위를 뛰어올라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주공께서 허성(許城) 위에 올라오셨다!
자, 우리 정군(鄭軍)은 다 같이 공격하라!
정(鄭) 나라 군사들이 용기백배하여 허성(許城)의 성문을 깨트리고,
성안으로 공격해 들어가자, 제군(齊軍)과 노군(魯軍)도 뒤따라
들어가게 되며, 그때 그 짧은 틈에 허장공(許莊公)은 변복하고
직계 가솔(家率) 몇 명만을 대동하고 위(衛) 나라로 도주했다.
자! 이제 방을 붙여 허(許)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오!
이제 점령된 바 허(許) 땅은 노(魯) 나라가 갖도록 하시오!
아닙니다 ! 지난번에 고성(郜城)과 방성(防城)을
가져갔으니, 더는 받을 수 없소이다!
그러면 제(齊) 나라가 가져가시오!
아니 오! 갖지 않겠소이다!
정백(鄭伯)은 어찌하여 매번 양보만 하십니까?
지난번에 성(郕) 나라를 복속시킨바
우리 제(齊) 나라의 영토는 넉넉하오.
이번 계책(計策)은 정(鄭) 나라가 세웠으니
정(鄭) 나라가 반드시 가져가는 게 옳을 것이오!
제(齊)와 노(魯)는 마땅히 정(鄭) 나라가 허성(許城)을 가져가야!
한다고 권했으나, 정장공은 속으로는 욕심을 내면서도 겉으로는
체면과 눈치를 보며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鄭) 나라는 왕명을 세우려 하였을 뿐이오!
땅이 탐나 허(許) 나라를 친 것은 절대 아니었소!
허허, 노(魯)와 우리 제(齊) 나라도 가져가지 않겠다니
이제 정백 (鄭伯)께서 차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소이다.
이번 일은 이렇게 된바 허성(許城) 땅과 가까운
정(鄭) 나라가 마땅히 합해야 합니다!
허성(許城)을 가져가겠다는 걸 서로 양보하고 있을 때, 회의하는
영채(令寨) 밖에서 갑자기 통곡과 애원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더는 회의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
허(許) 나라 대부라는 노인과 어린아이가
세 분 군주를 꼭 뵙겠다고 엎드려 울고 있나이다.
허 어. 이리 들라고 하여라!
그대는 누구이기에 울고 있는가?
신은 허(許) 나라 대부 백리(百里)라 하옵니다.
이 아이는 누구요?
이 아이는 허장공(許莊公)의 동생으로
이름이 허숙(許叔)이라 하옵니다.
왜? 땅에 이마를 찧고 애원하는 거요?
허장공(許莊公)께서는 자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 아이 허숙(許叔)에게 태악(太岳)의 제사라도
이어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나이다!
허(許) 나라 대부 백리(百里)라는 노인이 땅에 머리를 찧으면서
애걸하자, 모두 애처롭게 보고 있는데, 정장공(鄭莊公)이 일어선다.
어찌 조상의 제사를 끊기게 할 수 있겠소?
허숙(許叔)이라는 저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우리 정(鄭) 나라가 맡아주고 있으면 되지 않겠소?
정백(鄭伯)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소이다!
정백(鄭伯)! 좋소! 그렇게 하시지요.
정장공(鄭莊公)은 허(許) 나라 땅이 탐이나 벌린 일이었으나, 욕심이
목에까지 차올라도 체면을 지키려 양보하다가, 마침 허(許) 나라의
조상인 허유(許由)의 제사를 돕겠다며 차지하고 말았다.
정장공은 허(許) 나라를 두 지방으로 나누어 동쪽은 허숙(許叔)과
대부 백리(百里)에게 태악(太岳)의 제사를 받들며 살게 하고,
서쪽은 정(鄭) 나라 대부 공손 획(獲)을 보내어 다스리게 했다.
공손 획(獲)을 보낸 의도는 겉으로는
허(許) 나라를 돕는다고 하지만, 실은
허(許) 나라의 일반 정사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노(魯)와 제(齊), 두 나라 군주는 정장공의
그 계책을 알지 못하고 그의 조치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칭찬해 마지않았다.
대부 백리(百里)가 세 나라 군주들에게 감사하고 물러가자,
세 나라 군주들도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위(衛) 나라로 도망쳐간 허장공(許莊公)은 그곳에서 늙어 죽었다.
그 동생 허숙(許叔)은 동쪽 지방의 영주로 임명되었다.
허숙(許叔)은 정(鄭)의 갖은 압제를 견뎌내는 사이에,
정장공이 죽게 되자, 그의 아들들 사이에
수십 년간에 걸친 후계자 싸움이 일어났다.
세자 홀(忽)과 돌(突) 뿐만 아니라, 그 동생들도
서로 군주 자리를 찬탈하려는 혼란을 일으켰으며
그사이에 공손 획(獲)은 병들어 죽게 된다.
그 틈을 이용하여 허숙(許叔)의 계책을 받아들인
백리(百里)가 몰래 허성에 잠입하여
허(許) 나라를 복국 시켰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정장공(鄭莊公)은 이처럼 간교한 방법으로 성(郕)과 허(許)를
멸망시키고. 대성(載城)을 빼앗았으며, 이제는 제사를 핑계삼아
허(許) 땅을 정(鄭) 나라 영토로 만드는 술수를 썼다.
이때부터 정장공(鄭莊公)으로 말미암아, 1백 년여를 지켜왔던 제후
나라라 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토벌당하면서,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뀌게 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번 전투에서 하숙영(瑕叔盈)의 공로가
매우 커, 허성(許城)을 점령할 수 있었도다!
하숙영(瑕叔盈)에 많은 상을 내리리라!
주공. 소신의 공(功)이 아니오라
모두 영고숙(穎考叔)의 공(功)이 되옵니다!
충성스러운 영고숙(穎考叔)이 죽다니
너무나 애통하고 안타깝도다!
허군(許軍)의 화살이 아니라는 소문이 퍼져있도다!
누가 쏘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암전(暗箭) 이란
소문이 퍼져있는 것이다!
어찌 암전(暗箭)의 화살에 죽을 수가 있겠는가!
영고숙(穎考叔)의 혼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하숙영은 암전(暗箭)을 쏜 사람을 알 수 있는가?
주공! 신은 전혀 짐작 못 하는 일이옵니다!
신은 영고숙이 성벽 위에서 떨어지자마자,
급하게 쫓아가 모호(蝥弧) 깃발을 집어 들고
그저 성벽에 급히 뛰어 올라갔을 뿐이옵니다.
정장공은 허성을 공략하여 허(許) 나라 땅을 정(鄭) 나라 땅으로
편입시키고 돌아오자, 너무나 억울하게 죽은 영고숙(穎考叔)을
몹시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하였다.
제 60 화. 죽은 영고숙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