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화. 주선왕, 악귀를 만나는가.
제 19 화. 주선왕, 악귀를 만나는가.
왕이시여! 두백(杜伯)을 끌고 나가지 마시옵소서!
요(堯) 임금은 9년 홍수에도 자리를 잃지 않았으며
탕(湯) 임금은 7년 가뭄에도 왕위를 해치지 않았나이다.
두 임금께서는 이러한 천변에도 오히려 별고 없었거늘
왕께서는 요사한 갓난아기를 왜 두려워하십니까?
왕께서 두백(杜伯)을 죽이시면
이 소문은 멀리 퍼져 나갈 것이며
이를 오랑캐들이 알면 왕실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좌유(左儒)는 벗을 위하여 짐의 명을 거역하려는가?
이는 벗을 귀히 여기고 과인을 가벼이 보는 것이리라!
주공! 임금이 옳고 벗이 그르다면 마땅히 왕을 따를
것이며, 벗이 옳고 임금이 그르다면 임금의 명을
어길지라도 마땅히 벗을 따를 것이옵니다!
두백(杜伯)이 죽어야 할 죄가 아무것도 없사온데
만약 두백(杜伯)을 죽이신다면
천하 백성이 현명한 왕이라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신이 옳지 않은 왕명을 막지 못하였다며
천하가 신을 불충한 자라 할 것입니다!
시끄럽다! 너희 둘은 서로 친한 친구가 아닌가?
시끄럽게 변명해도 소용없느니라.
너희는 무얼 망설이느냐?
어서 끌고 나가 참(斬)하여라!
두백(杜伯)이 참수당하자, 그의 친구 좌유(左儒)는 두백(杜伯)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두백(杜伯)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두백(杜伯)이 억울하게 죽자, 두백(杜伯)의
아들 습숙(隰叔)은 진(晉) 나라로 떠나갔다.
습숙(隰叔)은 진(晉) 나라에서 사사(士師) 벼슬을 하며 살았기에,
사씨(士氏)가 되었으며, 그 후손이 범(范) 땅을 식읍(食邑)으로
받았기에 사씨(士氏)에서 범씨(范氏)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두백(杜伯)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두릉(杜陵) 땅에다 그의 사당을 세웠다.
그 사당의 주인을 두주(杜主)라 불렀으며
또는 우장군(右將軍)의 묘라고도 부르고 있다.
오늘날에도 두릉(杜陵) 땅에 두백(杜伯)의 묘가 있다.
주선왕은 좌유(左儒)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자, 너무나 놀랐으며,
두백(杜伯)을 참수시킨 일을 매우 후회하게 되면서 마음이
침통하고 허탈해져 일찍 퇴청하여 내궁(內宮)으로 들어갔다.
주상,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괜한 생각으로 오해하게 되었소이다.
두백(杜伯)과 좌유(左儒)를 죽게 하였소이다.
내 충신을 내가 죽이다니 너무 크게 후회되오!
어쩌지요? 주상, 참으로 안 된 일이옵니다.
주상, 크게 재물을 내리시어 위로하십시오.
휴 우, 이제 이미 다 지나간 일이 되었소!
주선왕은 좌유(左儒)가 자살하고 난 뒤부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며, 조례에서도 말의 두서가 없어지면서 어느덧
3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러가게 되었다.
주상, 매일 밤잠을 못 이루시면 어찌합니까?
시원한 들녘에 나가 사냥이라도 해보세요!
바깥바람을 쐬시면, 정신이 좀 맑아질 겁니다!
주선왕(周宣王)은 강후(姜后)의 권유에 따라, 주변의 제후들과
중신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가기로 하였다.
동교(東郊) 일대는 광활한 평원 지대이면서 숲이 매우 울창하여,
원래부터 유명한 사냥터로 잘 알려져 있었다.
사냥터에 도착한 주선왕(周宣王)은 엄한 명령을 내린다.
첫째. 곡식을 밟지 마라.
둘째. 수목에 불을 지르지 마라.
셋째.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넷째. 잡은 짐승은 모두 짐에게 바쳐라.
많은 상금을 내려주도록 하리라!
모두가 사냥감 몰이에 신이나 고함지르고 뛰면서 커다란 짐승을
발견하자, 서로 에워싸고 좁혀 들며, 활과 창을 쓰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 주선왕(周宣王)의 마음과 몸도 상쾌해졌다.
그날따라 즐거운 사냥은 늦게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우선 성에 들어가
다음날 시상식을 열며, 상을 내리기로 정하였다.
주선왕이 캄캄한 산길로 한창 돌아가고 있으며, 잠깐 꾸벅 조는
사이에 붉은 옷과 붉은 활을 멘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왕이시여. 그간 별일 없으셨는지요?
그대들은 누구인가?
아니, 두백(杜伯)과 좌유(左儒)가 아닌가?
너희는 아직도 살아있었느냐?
아니로다. 허 어. 악귀(惡鬼)가 되어있었구나!
왜 명부(冥府)로 들어가지 않고 있느냐?
어서 썩 물러가도록 하라!
왕이시여! 너무나 억울하고 억울하옵니다!
왕이시여! 젊은 날의 총명(聰明)은 어디에 버리시고
함부로 누명(陋名)을 씌워 억울하게 죽이십니까?
아아, 이미 다 지나간 일이로다!
너희들은 빨리 저승으로 돌아가거라!
이 무도한 혼군(昏君) 아!
지금도 변명만 하고 있느냐?
이제 혼군(昏君)의 운수(運數)도 다 되었도다!
혼군(昏君)이여! 우리들의 화살을 받으시어
우리와 함께 구천(九泉)을 건너갑시다!
주선왕은 붉은 두 사람이 쏜 새빨간 화살에 명중되자, 크게
비명을 지르면서 기절하였고, 이때부터 병석에 눕게 되었다.
태사, 어디 다녀오시오?
주상을 만나고 나옵니다.
전에 동요(童謠)를 듣고 궁시(弓矢)의 변(變)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을 드린 바가 있었지요?
그 조짐으로 왕께서는 악귀(惡鬼)들의
붉은 화살을 맞아 위독하게 되었소이다.
내가 매일 밤 천문을 보고 있었소이다!
지금도 요사스러운 기운이 궁궐에 퍼져있어,
왕의 몸으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소!
태사의 말도 맞소만!
태사는 천도(天道)만을 말하며
사람의 인사(人事)는 말하지 않는구려!
하늘이 정한 사람의 운수는
사람의 계책을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사람의 계책도 하늘의 운수를
뛰어넘기도 하는 법이잖소!
나라에는 삼공(三公)과 육경(六卿)이 있으니
다 함께 힘을 합쳐봅시다!
앞으로 본 글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 이해를 돕기 위해 조정의
높은 벼슬인 삼공(三公)과 육경(六卿)을 파악해보고 가자.
삼공(三公)은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이며
태사(太師)는 왕의 스승이고, 태부(太傅)는 세자의
스승이며, 태보(太保)는 종실(宗室)을 이끄는 대표이다.
육경(六卿)은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의 여섯
글자에 따라, 육부의 장(長)을 6경(六卿)이라 했다.
천(天)자의 총재(冢宰)를 천관(天官)이라고 하며
관청(官廳)의 전반적인 행정과 내외의 금전 출납
사무를 총괄하였다.
후에 태재(太宰)라고도 했으며,
일반적으로 재상(宰相)이라 불렀다.
사도(司徒)를 지관(地官)이라고 하며,
백성의 교육, 농업, 공업, 상업 등을
담당하고 지방 행정을 관리한다.
종백(宗伯)을 춘관(春官)이라고 하며
제사(祭祀)와 외국 사절 및 외국과의 회합
등을 관장하며, 대종백(大宗伯)이라 불렀다.
사마(司馬)는 하관(夏官)이며, 군사와 국토 사무를 관장했다.
사구(司寇)는 추관(秋官)이며 법령, 소송 등을 관장했다.
사공(司空)은 동관(冬官)이며 토목, 건축 공사 등을 관장하였다.
그렇지요! 삼공(三公)과 육경(六卿)은 힘을 합쳐
그 붉은 악귀를 몰아내야만 합니다!
자, 다 같이 열심히 제(祭)를 올리도록 합시다!
태사 백양보(伯陽父)는 노신(老臣) 윤길보(尹吉甫)와 소호(召虎),
주정(周定) 공(公)과 소목(召穆) 공(公), 그리고 중산보(仲山甫),
방숙(方叔), 신백(申伯), 등의 중신들과 함께 마음을 합해
정성껏 제(祭)를 올렸으나, 주선왕은 끝내 유언을 남기게 되었다.
경들의 도움으로 보위에 오른 지 46년이나 되었소.
경들과 함께 남정북벌(南征北伐) 하며 오랑캐를
많이 토벌한바 나라가 이만큼 편안해진 것이오.
뜻밖에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구려.
세자 궁열(宮涅)이 우매하니 경들이 잘 보좌하여
이 주(周) 나라 대업을 이끌어나가게 하여주시오.
주선왕은 막내아우인 우(友)를 정(鄭) 나라의 군주로 봉했으며,
사주편(史籀篇) 이라는 서체(書體)로 대전(大篆)을 완성했다.
또한, 주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서 선왕중흥(宣王中興) 시대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기도 했으며, 비교적 열심히 나라를
안정시키면서 발전시켜 나갔다.
제 20 화. 철없이 나라를 경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