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열국지( 001∼94회 )

제 39 화. 나라를 크게 만드는가.

서 휴 2023. 3. 21. 17:00

12. 편애한 사랑.

 

39 . 나라를 크게 만드는가.

 

주평왕(周平王)이 정백(鄭伯) ()에게 환()이라는 시호(諡號)

내리니, 그가 곧 정() 나라의 시조가 되는 정환공(鄭桓公) 이다.

 

       정환공(鄭桓公)은 주여왕(周厲王)의 아들이자,

       주선왕(周宣王)의 사랑하는 이복, 막내 동생으로,

 

       주선왕(周宣王) 22년인 기원전 806년에

       정() 땅을 봉지로 받았으며,

 

       조카인 주유왕(周幽王)이 정사를 어지럽히자,

       다가오는 화를 피하여 왕실을 떠나려 할 때,

 

       이를 알게 된 동쪽의 동괵(東虢)과 회(),

       두 나라에서 열 개의 읍()을 양도하여 주어,

       겨우 정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정환공은 평왕(平王)의 조부 벌이며, 유왕(幽王) 때는 사도(司徒)

봉직하면서, 남달리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높았었다,

 

       그러나 정환공(鄭桓公)의 아들 정무공(鄭武公)

       강직한 아버지 정환공(鄭桓公)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주평왕(周平王) 13기원전 758에 위무공(衛武公)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정무공(鄭武公)은 주() 나라 정사를 혼자서

독단적으로 장악하다시피 하였다.

 

       우리 정()나라는 신생(新生) 국가이다.

       나라라는 것은 그렇도다

 

       제대로 나라의 규모를 잘 갖추어야

       나라다운 행세를 할 수가 있도다

 

       미안한 일이나, 이웃인 동괵(東虢)

       회() 나라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도다.

 

정무공은 왕실의 경사(卿士)로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잘

파악하게 되었으므로, 강직한 정환공(鄭桓公)과는 서로 다른

정치를 하면서 일찍부터 영토를 넓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영토를 넓히려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좋겠는가?

       주공, 신 대부 관기사(關其斯)이옵니다.

       주공, 가까운 회(鄶)나라를 치시옵소서

 

       방금 무어라고 말하였느냐?

       회()나라는 내 인척의 나라다

       네 어찌 인척의 나라를 치라고 하느냐?

 

       주공, 인척이긴 하나 먼 인척이옵니다

       아주 못된 놈이로다

       저놈을 끌고나가 참하여라

 

정무공 재위 2년이며 기원전 757년에, 그렇게 관기사(關其斯)

죽여버리자, 그 소식을 전해들은 회()나라의 군주는 정(鄭)

나라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러자 그 틈을 탄 정무공이 회()나라를 기습하여

       회()나라 군주를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아 버렸다.

 

() 나라는 지금의 하남성 밀현(密縣)에 있었으며, 정환공이

()나라를 세울 때, 땅까지 떼어준 고마운 나라였으나,

정무공은 모든 안면(顔面)을 몰수하고 점령한 것이다.

 

재위 4년차인 기원전 755년에는, 동괵(東虢)이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서쪽 약 20키로 지점의 형양시(滎陽市)에 부근에

있었던 제후국이었으나, () 나라처럼 점령하였다.

 

       정무공(鄭武公)은 고마웠던 동괵(東虢)과 회() 나라를

       점령하여, 도읍지를 그곳으로 옮겨놓고는

       신정(新鄭)이라 부르게 하였다.

 

정무공(鄭武公)은 상(商) 나라의 유민들을 받아들이면서,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는 등으로, 부족한 백성들을 체워 나갔다.

 

       또한, 낙읍(洛邑)과 가깝게 약 150km 떨어진

       형양(滎陽)에 경성(京城)을 쌓았으며, 그 앞으로

       쭉 나아가 제읍(制邑) 땅에 관문(關門)을 세웠다.

 

       동쪽과 남쪽에서 정(鄭) 나라를 쳐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문(關門)을 지나가야 했던 요새(要塞)였기에

       그 후에 호뢰(虎牢)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정무공(鄭武公)은 소규모에 불과하던 정() 나라를 크고 강하게

만들어놓고는, 그때부터 낙읍(洛邑) 보다, 새로 세운 신정(新鄭)

더 머물면서 국내를 안정시켜가며, 낙양(洛陽)에 있기도 하였다.

 

       허 허. 부인은 태평도 하시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갓난아이가 있더란 말이요?

       아 이. 부끄럽게 자꾸 놀리지 말아요

 

정무공(鄭武公)의 정비(正妃)인 군부인(君夫人) 무강(武姜)

() 나라 신후(申侯)의 외손녀이며, 평왕(平王)의 누이동생이다.

 

       군부인 무강(武姜)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을 잠자다 낳았다 하며 놀려대나,

       사실은 어려운 난산(難産)으로 잠시 까무러쳐

       정신을 잃다 보니 생긴 일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잠 깰 오()자를 써, 오생(寤生)이라 하고,

       둘째는 단번에 쑥 낳았다 하여 단()이라 불렀다.

 

군부인 무강(武姜)은 너무 고생하며 낳은 큰아들 오생(寤生)에게

()이 가지 않았으며, 순탄하게 낳은 단()을 더 어여뻐하였다.

 

       둘째 단()이 당신을 너무 많이 닮았어요

       얼굴도 준수하고 힘도 세어 활도 아주 잘 쏘지요

 

       첫아들 오생(寤生)보다는

       둘째 아들 단()이 훨씬 똑똑하지요

 

       단()이 더 잘 생기고 무예도 뛰어나니

       단()을 세자로 세우면 어떻겠어요?

 

       허허,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둘째가 잘나 봐야 장남을 따라갈 수 없는 거요

 

       부인은 어찌 둘째만 감싸는 것이오?

       뭐라고요? 내 참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이

       군위(君位)를 이어받아야 하잖아요?

 

       허 허. 장유유서(長幼有序)란 게 있지 않소?

       첫째 오생(寤生)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

       어찌 둘째를 세자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부인은 왜 이리 둘째에게 집요(輯要)하시오

       첫째도 좋은 점이 많은 데 왜 그러시오?

 

       똑같이 낳은 아들인데 왜 둘째만을 감싸는 거요?

       자식을 편애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오

 

무강(武姜)이 둘째 단()이 너무 현명하다고 자꾸 칭찬하였으나,

정무공은 첫째 오생(寤生)을 세자로 세우고, 둘째 단()에게는 작은

공성(共城)을 주게 되니, 이때부터 단()을 공숙(共叔)이라 불렸다.

 

       무강(武姜)은 이에 늘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첫째 오생(寤生)을 보면 기뻐하지 않았다.

 

정무공(鄭武公)이 정() 나라를 중원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어놓고, 기원전 771년부터 기원전 744년까지 28년간을

정나라 제2군주로 재위하다 죽었다.

 

오생(寤生)이 아버지 정무공(鄭武公)의 뒤를 이어 정장공(鄭莊公)

되며 경사직(卿士職)도 물려받았으며, 이에 왕실의 경사(卿士)

있으면서 () 나라 정사를 보는 기간이 많아졌었다.

 

       주공, 이제 오시는 거요?

       어마마마,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주공. 보위에 오른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지요?

 

       주공께서는 수백 리의 땅을 다스리면서

       동생에게는 손바닥만큼도 안 되는

       공성(共城)에 있게 하다니 이게 말이 되오?

 

       어마마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읍(制邑) 땅에 성()을 지어 살게 해주시오

 

       제읍(制邑) 땅은 지형이 험하며, 나라의 관문이라

       선군(先君)께서 아무도 봉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주공, 제읍(制邑)이 안 된다면

       형양(滎陽)의 경성(京城)을 주도록 하시오

 

       주공, 왜. 말이 없는 거요?

       그도 안 된다면 먼 타국으로 내쫓아

       내 눈에서 아예 보이지 않게 하시오

 

       아니옵니다.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머님! 경성(京城)으로 내보내겠습니다.

 

정장공은 어머니 무강이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과 달리,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밤새 고심하다가 조례를 열어, 이에 대한 사정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기 시작하였으며, 중신들의 의견을 묻긴

하였으나 어머니 무강(武姜)의 권유대로 시행하려 했다

 

       공숙(共叔) ()을 경성(京城)에 봉하려 하니

       이에 대해 대비를 하도록 하시오

 

       주공, 신 채족(祭足) 이옵니다.

       경성(京城)은 선군께서 백 길이나 되는

       높고 튼튼한 성()쌓으셨습니다.

 

()는 옛날 성벽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높이 1장이며,

길이 3장을 1치라고 했다. 즉 백치의 성이란 높이 2.2m의 높이에

길이가 220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가진 것을 말한다.

 

       또한, 경성(京城)은 땅은 넓고 백성이 만사와,

       이곳 신정(新鄭)과도 같사옵니다.

 

       경성(京城)에 봉하는 것은 한나라에

       군주가 둘이 되는 것과 같사옵니다

 

       더구나 모후(母后)의 은총(恩寵)이 계속

       이어진다면, 장차 큰 우환(憂患)이 될까.

       두렵사오니, 명을 거두시옵길 바라나이다.

 

       그건 잘 알겠으나. 모후의 간절한 부탁이오

       내 어찌 모후(母后)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소?.

 

       일단 그렇게 시행하여 보시 오

       주공, 심히 장래가 걱정되옵니다

 

어머니 무강(武姜)의 권유대로, 공숙(共叔) ()을 경성(京城)

봉하게 되니, 공숙(共叔) ()은 형인 정장공(鄭莊公)에게 사은

숙배하고, 내궁에 들어가 어머니 무강(武姜)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제 공숙(共叔) ()을 경숙(京叔) ()이라 고쳐 부르게 된다.

 

40 . 편애 하는 사랑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