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화. 호경에 남느냐, 떠날 것이냐.
제 33 화. 호경에 남느냐, 떠날 것이냐.
융족이 쳐들어오고 있는지 오래되었으며
융족의 형세가 절대 가볍지 않도다.
더구나 궁궐은 불에 타 남은 것이 하나도 없도다!
짐이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려 하는 것은
실로 어쩔 수업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주상, 본시 융족의 성질은 승냥이 같아
나라 안으로 끌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나?
이미 신후(申侯)의 실책이 되고 말았나이다.
주상, 신 위무공(衛武公)이 더 말씀드리겠나이다!
이제부터라도 야무진 방책(方策)을 세우시어
백성을 두루 위로하시고, 군사를 조련하사,
알맞을 때가 되었을 때, 융족을 섬멸(殲滅)하시면서,
우두머리 견융반(犬戎班)과 서융반(西戎班)을 붙잡아
그들의 목을 쳐 태묘(太廟)에게 바치면서
지난날의 치욕을 씻으시어야 하옵니다!
위무공(衛武公) 이신, 노(老) 사도(司徒)의 말씀은
구구절절이 모두가 옳사옵니다!
하오나, 호경(鎬京)의 궁궐은 복구하기 어려우며,
융족들의 세력은 날로 커지고 있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바
천도(遷都)는 부득이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周)나라 조정은 매일같이 조례가 열리면서, 호경(鎬京)에 그냥
있느냐. 낙읍(洛邑)으로 옮겨가느냐의 논쟁이 격렬하게 계속되었다.
주상, 신 위무공(衛武公) 이옵니다.
치욕이 두려워 원수를 피하면서까지 천도한다는 것은,
장차 더 큰 우환(憂患)을 불러들일 수 있사오니
깊이 유념하시어야 하옵니다!
요(堯)와 순(舜) 임금께서는 초가집에 사시면서
흙으로 제단(祭壇)을 쌓아 제사를 올렸으며
우(禹) 임금께서는 작고 낮은 궁실(宮室)에
사시며 누추하다. 말씀하지 않았사옵니다.
궁궐은 사시면서 정사(政事)를 보는 곳일 뿐임으로
크거나, 작거나, 화려하거나, 누추하거나,
결코. 볼거리로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주상께서는 시간을 가지고 국력을 회복하시어
차차 궁궐을 복구하시고, 군사를 조련하시어
지난날의 원수를 기어이 갚으시면서
호경(鎬京)을 지켜 내셔야만 하옵니다.
주상, 신 소주공(小周公) 훤(喧) 이옵니다.
노(老) 사도(司徒)의 말씀은 모두 옳으시나?
단지 현실에 부합(附合)하지 안 사 옵니다.
선왕께서 정사를 게을리하시어
도적 떼를 불러들인 결과를 만들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추궁할 수도 없사옵니다.
사고(司庫)가 텅 비어 재원이 없사온데
무엇으로 궁궐을 복구할 것이며
무엇으로 군사를 조련하겠나이까?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견융이 서융과 합세하여
수많은 기마병이 또 갑자기 쳐들어온다면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나이까?
이리되면, 민심은 흉흉하여 떠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사직이 잘 못 된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책임져 본들 망하고 난 뒤에 무얼 합니까?
신후(申侯)가 승냥이 같은 서융(西戎)을 불러들였으니
승냥이를 물리칠 계책도 가지고 있을 것이옵니다.
어서 신후(申侯)를 부르시옵소서?
그처럼 조당(朝堂)에서 의견이 분분할 때 국구(國舅)인 신후(申侯)가
갑자기 견융(犬戎)이 쳐들어와 몹시 위급하다면서, 표문(表文)을
만들어 사람 편에 올려보내 왔다.
견융(犬戎)이 멈추지 않고 침략하옵니다.
이대로면 아마도 신(申)나라가 망할 것 같사옵니다.
왕께서는 이 신(申) 나라를 어여삐 봐주시어
왕사군(王師軍)을 보내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때 신후(申侯)는 견융(犬戎)의 침공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다면서
긴급히 구원군을 요청하였으며, 이에 주평왕(周平王)은 올라온
표문(表文)을 뜯어 보며 난 후 아래와 같이 말을 하게 된다.
신후(申侯)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소.
견융(犬戎)의 침범으로 신후(申侯)의 표문(表文)이
급히 올라온바 구원군을 빨리 보내줘야 하겠소!
제후 군을 속히 신(申)나라로 보내주시오!
자, 다시, 하던 회의를 계속합시다.
주상, 신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 이옵니다.
허 어, 어서 말해보시오.
주상. 14년 전의 꿈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무슨 꿈 이야기가 있었는지 어서 말해보시오.
선왕(宣王)의 꿈속에 문득 아름다운 여인이
궁궐 서쪽에서 걸어 들어와
사당인 태묘(太廟) 안으로 들어갔으며
여인은 태묘(太廟) 안에서 크게 세 번 웃더니
또 큰소리로 세 번 슬픈 곡을 하고 난 후에
칠묘(七廟)를 걸어 다니며, 일곱 신주(神主)를
한 다발로 묶어 동쪽으로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상기(想起)하여 보시옵소서.
그때가 선왕(宣王) 43년(기원전 784년)이었으니
이미 14년 전에 동쪽인 낙읍(洛邑)으로
천도하도록 예측하신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짐(朕)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으나
오늘에야 새롭게 상기(想起)시켜 주는구려.
칠묘(七廟)의 위패(位牌)를 모두 가지고
동쪽으로 갔다는 것은
나라를 동쪽으로 옮긴다는 뜻이 아니겠소?
주상,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더 논의해봐야.
더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이제 낙읍(洛邑)으로 천도하기로 정하시오.
주상, 신의 벼슬이 사도에까지 이르렀사온데
왕께서 도읍을 옮긴다면, 백성들의 생활이
어지럽게 되는바 신의 허물도 면하기 어렵나이다.
위무공(衛武公)의 충정은 알겠으나
나라의 운명이 이러한 걸 어찌하겠소?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는 천도(遷都)하기
좋은 길일(吉日)을 택하여 올리도록 하시오.
그동안 연일 회의하느라 수고들이 많았소.
이제 천도(遷都)를 위한 회의는 끝냅시다.
주상, 신이 사도(司徒)의 직에 있는바
만약 주상께서 먼저 가버리시면,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사도의 직에 있는 신의 직분도 잃게 되나이다.
마땅히 방문(榜文)을 붙이게 하여,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옵니다.
알겠소, 경의 말에 따르리다.
주평왕(周平王)은 모월 모일 낙읍(洛邑)으로 천도한다는 연유를
축사(祝辭)로써 칠묘(七廟)에 고하였으며, 나라 곳곳에 방(榜)을
붙이면서, 긴급하게 모든 제후에게 연락하였다.
백성들에게 알리노라.
이제부터 낙읍(洛邑)을 새 도읍지로 정하노라.
어가(御駕)를 따라 동쪽으로 가려는 자는
속히 준비하여 길을 떠나 따라오도록 하라.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는 낙읍(洛邑)으로 천도 하기로 결정 되자,
자기가 친 점괘를 되돌아보며, 지나간 날들을 회상해보았다.
옛날 주선왕(周宣王)이 제궁(祭宮)에서 잠이 들었을 때 아름다운
여인이 태묘(太廟)의 서쪽에서 들어와 크게 세 번 웃고, 또 크게
세 번 곡을 하였으며, 태묘(太廟)의 7개 신주를 모두 묶어서,
동쪽으로 나가버린 꿈이었다.
크게 세 번 웃은 것은 여산(驪山)에서 포사(褒姒)가
봉홧불로 제후들을 세 번 희롱(戱弄)한 것이며
크게 세 번 울었다고 한 것은 주유왕(周幽王)과
포사(褒姒)와 아들 백복(伯服)이 모두
전란 중에 죽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주를 묶어서 동쪽으로 가버린 것은,
동도(東都)인 낙읍(洛邑)으로 천도하라는 것이니
그 꿈은 하나도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한, 주선왕(周宣王) 때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가 물러나면서,
점을 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점괘를 바친 일이 있었다.
哭又笑 笑又哭 (곡우소 소우곡)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羊被鬼呑 馬逢犬逐 (양피귀탄 마봉견축)
양이 귀신에게 잡아 먹히고
말이 개를 만나 쫓겨 다니니
愼之愼之 檿弧簊箙 (신지신지 염호기복)
조심하고 조심할지어다.
뽕나무 활과 산죽(山竹) 화살집이여.
양(羊)이 귀신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은 기원전 782년 때 주선왕이
재위 46년 기미년(己未年)에 귀신을 만나 죽은 것을 말하는 것이며
말(馬)이 개(犬)에게 쫓기게 되었다는 것은 기원전 771년
때인 주유왕(周幽王) 재위 11년 경오년(庚午年)에
견융(犬戎)이 쳐들어온 것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때 이르러 서주(西周)가 망하면서, 하늘이 정한 수명을
다하였다고 한 것이므로,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의 점괘가
얼마나 신통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제 34 화. 동주 시대가 열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