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화. 비단 찢는 소리가 좋은가.
8. 포사의 시대
제 23 화. 비단 찢는 소리가 좋은가.
그때 늙은 대부 유포(有褒)는 평소 믿고 지내던 조숙대(趙叔帶)가
충간(忠諫)을 올리다 쫓겨나 왕성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입조(入朝)하여 강렬하게 충언하게 된다.
왕이시여. 신 유포(有褒) 이옵니다.
왕이시여. 정사(政事)를 올바로 살피셔야 하옵니다.
하늘의 변고(變故)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그나마 남은 어진 신하를 내쫓으니,
사직을 보존 못 할까 몹시 두렵사옵니다.
뭐라고, 사직이 어떻다고 하였느냐?
저 늙은이가 조숙대(趙叔帶)와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아주 괘씸한 자로다!
저 늙은이를 어서 깊은 옥(獄)에 가두어 놓아라!
대부 유포(有褒)가 충언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자, 이로부터 누구도
간언하지 않게 되면서 조정에서는 언로가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에 충성스러운 현인과 호걸들이 조례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둘씩 연고가 있는 제후국으로 알아서 떠나가니, 조정의
조당(朝堂)에는 충신이 더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유포(有褒)의 집안은 난리가 났다.
부인이 옳은 소리를 하지 말라며 그리도 말렸건만,
기어이 충간(忠諫)하다 옥(獄)에 갇히고 만 것이다.
유포(有褒)가 옥(獄)에 갇히게 되자, 그의 부인은 눈물로 밤을 새우게
되며, 매일같이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 아들 홍덕(弘德)은 어떻게
하든, 아버지 유포(有褒)를 옥(獄)에서 빼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갓난아기가 너무 배고파 울고 있습니다.
제발 아이에게 젖 좀 주십시오!
아이고. 가엾어라!
아이고, 젖을 마구 먹는구나!
쯔쯔쯔.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호호, 아니 여자아이잖아요?
남자가 갓난아기를 어떻게 키울 수 있겠어요?
더구나, 여자아이가 아니에요?
포씨(褒氏) 집 마님이 계집아이를 갖고 싶다던데.
그 집엔 아들만 다섯이에요!
포씨(褒氏) 집에 어린 딸을 주시지요?
포씨(褒氏) 집에 내가 말해볼까요?
활과 화살집을 잘 만드는 장인(匠人) 남자는 더는 키울 수 없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으므로, 포씨(褒氏) 집 마님에게서 비단(緋緞)
세필을 받고, 갓난아기를 넘기고는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으므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으나, 아마 고향을 돌아간 것 같다.
포씨(褒氏) 집에 넘겨진 갓난아기는 포사(褒姒)라는 이름을 갖게
되며, 용(龍)의 정기(精氣)를 받아서인지, 잔병 없이 잘 자랐다.
알나리깔나리. 알나리깔나리
주어서 왔데요. 주워 왔데요.
비단 받고 팔려 왔데요.
비단 주고 사서 왔데요.
알나리깔나리. 알나리깔나리
엄마. 내가 주워온 아이예요?
비단(緋緞) 주고 사 온 아이예요?
누가 그러더냐? 아주 고얀 놈들이구나!
너는 내 뱃속에서 힘들게 나온 아이야!
고놈들 내가 아주 혼을 내주마!
포사(褒姒) 야, 이제 울지 마라!
포사(褒姒)는 영특(英特)하고 총명(聰明)하여, 오빠들이 공부하는걸
곁눈질로 다 배우고 깨우쳤으며,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았지만
다만, 고집이 하도 세어 마음먹은 것은 모두 다 관철하려 하였다.
나는 주어 온 아이가 맞나 봐?
비단(緋緞)을 주고받은 아이가 맞나 봐?
포사(褒姒)는 사춘기를 맞으며, 동내 아이들이 놀리고, 오빠들
마저 은연중에 내뱉는 말과 자기의 생김새나 목소리로 보아,
형제들과 닮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며 짐작하여 알게 되었다.
이에 삐뚤어진 생각을 하여 말수가 적어지지만, 미모만큼은
너무나 어여쁘게 빼어나,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게 했다.
어유. 너무나 어여쁘구먼!
저 아이가 누구네 집 아이야?
포씨(褒氏) 집 막내딸이지. 뭐!
포사(褒姒)는 용(龍)의 정기(精氣)를 받아 태어나서인지, 자라면서
보는 사람마다 감탄할 정도의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으며,
너무나 어여쁘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널리 퍼져나가고 말았다.
유포(有褒)가 옥(獄)에 갇힌 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유포(有褒)의 집안은 포(褒) 땅에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어, 가을이 되면 아들 홍덕(弘德)이 가을걷이를
점검하려 매년 포(褒) 땅에 가게 된다.
홍덕(弘德)은 포사(褒姒)의 소문을 듣게 되며, 궁금해서 찾아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비록 차림은 시골 처녀지만,
타고난 국색(國色)의 자태는 숨길 수 없구나!
어찌 이리 궁벽한 시골구석에 어떻게 저런
천하절색(天下絶色)이 살고 있었더란 말이냐?
부친이 호경(鎬京) 옥에서 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석방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렇다, 저 처녀를 사서 왕에게 바칠 수만 있다면,
부친께서 풀려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홍덕(弘德)은 곧이어 이웃집에 가서 포사(褒姒)의 집안과 나이를
확실하게 알아본 후에 집에 돌아와 모친에게 고했다.
어머님. 아버님을 살려낼 좋은 수가 있습니다!
그래, 그게 무어냐? 어서 말해보아라!
포(褒) 땅에 포사(褒姒) 라는 처녀가 있사온데
얼마나 어여쁘던지 누구나 한번 보기만 하면
가슴을 설레게 하며 반해버리고 맙니다.
호오, 그렇게 어여쁘단 말이지?
그래, 몇 살이나 되었다고 하더냐?
올해 열일곱으로 시집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포사(褒姒)를 유왕(幽王)에게 받히면
아버님을 빼낼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
어머님, 염려 마십시오. 소자가 해내겠습니다.
아들아, 그리만 된다면 어찌 재화를 아끼겠느냐?
속히 그 집에 가서 포사를 데려오도록 하여라!
어머니의 승낙을 받은 홍덕(弘德)은, 포(褒) 땅의 포씨(褒氏) 집과
교섭하여, 비단(緋緞) 300필을 주고 포사(褒姒)를 데려간다.
비단(緋緞) 300필이라면, 나락 300가마 이상의 값이 될 것이므로,
그 당시의 가치로 보아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으므로, 포씨(褒氏)
집에서도 망서리지 않고 얼른 승낙하게 되었다.
어머니. 어찌 이럴 수가 있어요?
비단 300필에 나를 팔다니요?
비단 3필에 사 와, 300필로 되파는군요!
너무 합니다. 정말 너무 해요!
미안하다 ! 정말로 미안하다!
어머니! 비단 한 필만 가져와 보세요.
엤다. 여기 가져왔다.
찌 이익, 찍! 비단 찢는 소리가 좋기도 하구나!
아, 아 슬프구나.
팔려 왔으니 팔려 가야 하는 것으로 구나.
아, 참으로 매정한 세상이로다.
포사(褒姒는 눈물을 흘리며, 비단 한 필을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포씨(褒氏) 집을 떠나 홍덕(弘德)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어머님. 이 아이입니다.
흠. 과연 정말로 어여쁘구나.
궁궐에는 누굴 통하려 하느냐?
그 문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이 아이에게 궁중 예법을 잘 가르쳐
후궁(後宮)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포사(褒姒) 야. 너는 궁중 예법을 잘 익혀
유왕(幽王)을 모시는 후궁(後宮)이 되어야 한다?
후궁(後宮)이 무엇입니까?
지엄하신 왕비(王妃)의 다음 자리란다!
왕비나 세자빈(世子嬪) 자리는 없습니까?
큰일 날 소릴 하는구나!
너의 미모로 보아 충분하긴 하다만
욕심내다가 목이 달아날 수 있단다!
궁에서는 매사에 조심조심하여야 한다!
포사(褒姒) 야, 오늘부터 향탕(香湯)에
목욕하며 열심히 몸을 가꾸거라!
포사(褒姒) 야, 궁중 예법은 까다롭단다!
하나하나 잘 배워 익혀야 하며
비단옷을 맵시 있게 입어야 하느니라!
홍덕(弘德)은 포사(褒姒)가 이른 시일 내에 궁중 예법을 잘 익히게
되자, 많은 예물을 싣고는 삼공(三公) 중의 하나이며 아첨꾼으로
제일 소문난 괵석보(虢石甫)를 찾아간다.
그간 안녕하셨사옵니까?
그대는 누구인가?
유포(有褒)의 아들 홍덕(弘德) 이옵니다.
호오, 그렇지. 오랜만에 보는구먼!
어쩐 일인가?
이것이 왕께 바칠 예물이 오며
이것은 공께 바칠 선물이옵니다.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가져왔구먼!
아무쪼록 아버님을 살려주십시오!
저 얼굴 가린 처자 아이는 누구인가?
제 집안의 포사(褒姒) 라는 여자아이입니다.
포사(褒姒) 라. 어쩌자는 것이냐?
제 24 화. 어찌해야 왕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