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화. 참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제 14 화. 참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주공(周公) 단(旦)의 동생인 강숙(康叔)이 받은
봉지는 황하(黃河)와 기수(淇水)가 서로 만나는
유역이며 비옥한 곳으로 위(衛)나라가 되었다.
또한, 무경(武庚)의 숙부 되는 미자(微子)에게
공작(公爵)의 작위를 주면서 송(宋)나라 제후가
되게 하였으며,
상(商)나라 유민 일부를 이주시키면서
상(商)나라 조상의 제사를 이어가게 하였다.
주공(周公) 단(旦)은 어렵게 삼감(三監)의 난을 수습하고 나자,
몇 차례의 정벌에 나서며 황하(黃河) 유역인 화북(華北)의
평원(平原) 일대의 대부분을 왕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7년 만에 주성왕(周成王)이 성인이 되자
깨끗하게 섭정을 끝마치며 정권을 돌려주었다.
주공(周公) 단(旦)은 근면하고 아주 공평하게 국사를 봤으므로,
이에 감복한 주성왕(周成王)은 크게 감동하여 조상제를 지내는
행사에서 소비(小毖)라는 시를 지어 읊었다.
소비(小毖)라는 시는 징전비후(懲前毖後)라는 말이며
지난날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막는다는 뜻이다.
노(魯)나라로 돌아간 주공(周公) 단(旦)은 동쪽 지역을 관할(管轄)
하기 위해, 천하의 중심지라며 낙읍(洛邑) 자리에 부도(副都)를
세우고 낙고(洛誥)를 지어 올렸다.
또한, 예악(禮樂)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팔괘(八卦)의 효(爻)를
해설하여 역경(易經)을 완성했으며, 아울러 주(周) 나라의
주례(周禮)와 의례(儀禮)을 저술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상서(尙書)에서 나오는
치우(蚩尤)는 배달국인 구려(九黎=고조선)의
임금(天子)이며, 동북아 최초로 청동(靑銅)을 만들어
사용하던 선진의 나라였다.
옛날 황제(黃帝)는 오랫동안 구려(九黎)의 치우(蚩尤) 왕과 전쟁을
벌이다가 겨우 마지막에 승리하게 되자, 그 기념으로 치우(蚩尤)를
본받아 청동으로 된 정(鼎)을 만들었으며, 이는 정체성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 후대에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전해졌다.
정(鼎)은 세 발 달린 솥으로 천제(天祭)를 올릴 때
향을 피우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 솥이다.
주공(周公) 단(旦)은 이를 본받아 전국 각지의 9주(九州)에서
청동(靑銅)을 거두어 다시 정(鼎)을 만듦으로써, 천하의 백성들에게
주(周)나라 왕실의 권위를 상징시켜 주었다.
또한, 동쪽의 회이(淮夷)를 정벌하고, 엄(阉) 나라를
멸한 뒤, 송(宋)나라를 박고(薄姑) 땅으로 옮기게 했다.
주공(周公) 단(旦)이 태어나고 죽은 해는 분명치 않다.
그의 묘에 대해서도 그 위치가 불확실하였으나
2004년에 산서성(陝西省) 보계시(宝鶏市)에 있는
주공묘(周公廟) 부근에서 발견된 무덤을
주공(周公) 단(旦)의 묘(墓)로 보고 있다.
주성왕(周成王) 시대에 세워진 이름있는 나라는 송(宋), 위(衛),
노(魯), 진(晉), 초(楚), 채(蔡), 담(聃) 이다.
주성왕(周成王)의 동생인 숙우(叔虞)는 당(唐) 땅을 받았으므로
진(晉) 나라의 시조가 되며, 당숙우(唐叔虞)라 부르게 된다.
다른 동생들은 한(韓), 우(邘), 응(應), 세 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주성왕(周成王)은 아버지 주무왕(周武王)의 유업을
계승 받아, 오로지 열심히 정사에만 정진하면서
부도(副都)인 낙읍(洛邑)도 잘 경영하였다.
초기에 주공(周公) 단(旦)의 보좌를 받으며 열심히 나라를 다스리던
주성왕(周成王)이 병으로 죽었다.
주성왕(周成王)의 유언에 따라 소공(召公) 석(奭)과
필공(畢公) 고(高)의 도움으로 21세가 된 아들
희조(姬釗)를 왕위에 올려 주강왕(周康王)이 되었다.
이때가 기원전 1020년이었다.
주강왕(周康王)은 주성왕(周成王)의 유언에 따라 절대로 탐욕 하지
않으면서, 손수 근검절약을 하며 열심히 나라를 다스렸다.
문무백관들은 들으시오!
선왕이신 주성왕(周成王)의 유언을 지켜야 하오!
주문왕과 주무왕의 공적을 찬양하는 글을 만드시오!
천하에 돌려 주(周)나라에 복종하게 해야 하오!
이때 만든 글을 강고(康誥)라 한다. 그리고 주강왕(周康王)은
필공(畢公) 고(高)에게 특별히 명하여 신하들에게 자신의 임무를
열심히 다할 것을 당부하게 했다.
풍경(豊京) 성은 좁아서 호경(鎬京)을
우리 주나라의 수도로 삼을 것이오!
짐의 거처도 풍경(豊京)에서 호경(鎬京)으로
옮길 것이니, 마지막으로 제후를 부르시오!
풍경(鄷京)에서 마지막 조회를 열어봅시다!
천하의 제후들을 모두 불러 풍경(豊京)에 모이도록 한 것은 옛날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진군(進軍)할 때
맹진(孟津) 나루터에서 제후들에게 맹세한 서약을 지키려 한
것이었다. 이것을 풍궁(鄷宮)의 조회라고 하였다.
주강왕은 재위 12년인 기원전 1009년 6월에
풍경(鄷京)의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올렸다.
필공(畢公) 고(高)는 비록 주공(周公) 단(旦)의 이복동생이었으나
끝까지 신의를 지키며, 상(商)나라 유민들을 계속 교화시켜
나갔으며, 그리고 이름난 산과 큰 강에 가서 성을 쌓았다.
주(周)나라는 건국된 후로 주성왕(周成王)과
주강왕(周康王) 때까지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면서
처음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때를 주성왕(周成王)과 주강왕(周康王) 대에 문화가 창성(昌盛)
한 시기로, 성강지치(成康之致)라 부르며, 나라의 경제와 국방력도
강해졌으며, 건국 이래 처음으로 만들어진 태평성대라며 기뻐했다.
주강왕(周康王)은 재위한 지 25년 만인
기원전 996년 죽었다. 그 아들인 희하(姬瑕)가
즉위하니, 그가 제4대 주소왕(周昭王)이다.
주소왕(周昭王)은 즉위 원년인 기원전 995년에 동이족(東夷族)이
쳐들어오자 물리쳤다.
재위 11년, 재위 14년, 재위 16년에
초나라 정벌을 떠났으나 병력만 잃고 돌아왔다.
주소왕(周昭王)은 자주 군사를 징발하여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므로, 재위 26년에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일을 벌이겠다고 결심하고는,
제후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왕사군(王師軍)만으로 무리하게
초(楚) 나라를 정벌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주소왕(周昭王)은 남쪽으로 사냥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아닙니다. 사냥 나간 게 아니랍니다.
형초(荊楚) 사람이 하얀 꿩(白雉 백치)을 바치려 하자,
흰 꿩은 길조(吉兆)의 새라 하시며
친히 백치(白雉)를 받으려 남쪽으로 갔답니다.
아니요. 순수(巡狩)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아니요, 순수(巡狩) 갔다가 죽은 게 아니라
형초(荊楚)에 쳐들어갔다가 패하여 죽었답니다.
형초(荊楚)라면 초(楚)나라가 아니오?
그렇지요. 초(楚)나라가 맞지요!
그렇다면 초(楚)나라가 죽인 것이 아니겠소?
나도 들은 이야기 오만 강에 빠져 죽었답니다.
그렇소. 나도 그렇게 들은 바 있소!
소왕(昭王)이 한수(漢水)에 빠져 죽다니 참말이오?
그렇소. 한수(漢水)를 배를 타고 건너갈 때
미리 배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아교와 흙으로 구멍을 막았는데
배가 강 중류를 지날 무렵에 아교와 흙이 녹아
구멍이 뚫리면서 배가 가라앉았다고 하네요.
허허, 누가 그럽디까?
겨우 살아난 호위 군사가 하는 말이지요.
허 어. 보통 일이 아니네요.
글쎄 말이외다. 그놈들이 우리 왕을 죽이다니요?
앞으로 초(楚) 나라와 전쟁이 일어나겠네요.
초(楚)나라뿐만이 아니지요?
융족(戎族)들도 변방(邊方)을 괴롭히니
융족(戎族)들을 먼저 정리하고 나야!
그다음에 초(楚) 나라에 쳐들어갈 수 있지 않겠소?
여씨춘추(呂氏春秋)와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에 따르면,
주소왕(周昭王)이 제후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초(楚) 나라를
정벌하려고 원정(遠征) 나갔다가, 패하여 도망가다가 죽었을
가능성이 크기에, 제후들에게 공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주소왕(周昭王)이 초(楚) 나라의 원정 도중에 행방불명되자,
임시로, 그 아들인 만(滿)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정사를 보다가,
그 이후 주소왕(周昭王)이 죽은 것으로 판명되자, 정식으로
주목왕(周穆王)이 되었다.
나, 주목왕(周穆王)은 우리 주(周) 나라의 전통에 따라
친정(親征)에 나서, 주변의 오랑캐를 무찌를 것이요!
나는 아버지 소왕(昭王)께서 남방 정벌에 실패하시고,
목숨까지 잃은 것을 거울삼아!
우선으로 서북쪽 융족(戎族)들을 토벌해버리고
그리고 반드시 초(楚) 나라를 정벌하고 말 것이오!
그 당시 주왕(紂王)을 도와 온갖 포악무도 짓을 돕다가 참수된
비렴(蜚廉)의 5대손으로 조보(造父) 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보(造父)는 말을 기르고 다루는 데 천재성이 있었다고 한다.
조보(造父)의 덕에 주목왕(周穆王)은 매우 빠른 여덟 마리의
팔준마(八駿馬)을 타고 천하를 빠르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흙을 밟지 않을 정도로 빠른 절지(絶地)의 말
새의 날개 같은 번우(翻羽) 의 말,
하룻밤에 만리(萬里)를 달리는 분소(奔霄)의 말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하는 월영(越影)의 말
빛보다 빠른 유휘(踰輝)와 초광(超光)의 말
구름을 타고 달리는 등무(謄霧)의 말
날개를 펼치는 협익(挟翼)의 말들이었다.
제 15 화. 여자를 탐하여 제후국을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