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50 화. 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서 휴 2022. 8. 5. 17:17

150 . 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수지首止에 모인 여러 나라 제후들은 회맹 준비가 모두 끝나자,

제환공齊桓公이 마련한 제단으로 올라가, 태자 정을 가운데

모셔놓고, 입술에 피를 바르며 맹약盟約의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凡我同盟 (범아동맹) 우리가 다 같이 맹세하노니

       共翼王儲 (공익왕저) 힘을 합쳐 왕자를 도와

       匡靖王室 (광정왕실) 왕실을 바로 잡는다

       有背盟子 (유배맹자) 맹세를 어기는 자가 있다면

       神明殛之 (신명극지) 천지신명께서 용서하지 않으리라.


수지首止 회맹에서 7개국 제후들이 다 함께 충성을 맹세하자,

태자 정 어찌나 감읍感吟을 받았던지 자기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제후들을 바라보았다.


      제후들이 이렇듯 주왕실을 잊지 않고,

      또한, 나를 도우니, 나 또한

      제후들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회맹이 끝났으나, 제후들은 10여 일을 더 머물면서, 태자 정鄭을

위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면서 우의를 다지고는 다들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인사를 올렸다.

 

낙양洛陽에 있는 초나라의 많은 세작이 늘 주왕실의 동태를

살피다가, 예사롭지 않은 보고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주혜왕周惠王이 정문공鄭文公에게 밀서를 내렸습니다.

      아마도 제환공齊桓公의 독주에 불안을 느낀 듯합니다.
      이것은 초나라에 매우 유리한 정보입니다.

 

초성왕楚成王과 투곡어토鬪穀於菟는 매우 유리한 첩보를 받자마자,

또한 정문공鄭文公에 대한 첩보도 들어오고 있었다.


      주혜왕周惠王이 회맹에서 정나라를

      이탈하게 하다니, 이는 우리를 돕는 것이로다.

 

      우리 초楚 나라를 돕는다니 무슨 말이오.
      왕이시여, 아직 이른 판단이옵니다.

      먼저 제환공齊桓公의 반응을 살피셔야 합니다.

      어떻게 살핀단 말이오.
      먼저 회수淮水 가에 있는 현나라를 공격하십시오.

 

      만일 제환공齊桓公이 지난해 소릉召陵에서 맺은

      맹세를 내세워 현나라를 돕는다면

 

      정문공鄭文公의 동맹 이탈이 제환공齊桓公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환공齊桓公나라의 이탈에 대하여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가 되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입지는 한결 좋아지게 될 것이며

      우리가 정나라와 동맹을 맺으면서

      중원中原으로 향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옵니다.

나라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주 왕실로부터 자작子爵

작위를 받은 나라로, 지금의 호북성 회수현 서쪽 일대에 있었다.


      나라는 아주 작은 소국이오.

      굳이 현나라를 비호 할 까닭이 없질 않겠소.


      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는 작기는 하지만

      제환공齊桓公과 인척 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나라의 군부인 君夫人

      바로 제환공齊桓公이 아끼는 딸입니다.

 

      나라가 우리를 섬기지 않고

      나라를 추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과연 그대의 계책은 참으로 신묘하오.
      좋소. 올겨울에 현나라를 침공하겠소.

 

나라만을 믿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있던 현나라의

군주는 갑작스럽게 초나라가 침공해오자 몹시 당황하였다.

 

       그 무렵 제환공齊桓公은 정나라 토벌만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구원군을 파병하지 않아,

       현나라는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환공齊桓公이 현나라를 돕지 않은 것은 큰 실수가 되었다.

나라를 병탄하고 난 후, 상황이 초나라에 유리해진다고.

판단한 투곡어토鬪穀於菟는 곧바로 초성왕楚成王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제환공齊桓公은 현나라를 돕지 않았나이다.

      이는 정나라 정벌에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왕이시여, 이제야말로 이때를 놓치지 말고

      나라와 수교를 맺어야 하옵니다.


      제환공齊桓公이 정나라를 징벌하려는 것인데

      정문공鄭文公이 우리의 제안에 선뜻 응하겠소.


      왕이시여, 신에게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사옵니다.
      나라의 신후申侯에게 지령을 내리겠나이다.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치밀한 판단으로, 발 빠르게 정나라에

사자를 보내면서, 별도로 대부 신후申侯 에게도 지령을 내렸다.

 

       신후申侯는 원래 초나라 신하였으므로,

       초나라의 지지자로 수지首止 회맹에서

       탈퇴하도록 정문공鄭文公를 부추겼었다.

 

나라 대부 신후申侯는 초나라의 지령을 받자마자, 비밀리에

정문공鄭文公을 찾아가 은밀하게 또 부추기는 말을 한다.


      주공께서는 어찌 가만히 계시나이까.

      주혜왕周惠王의 밀지密旨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초나라에 사람을 보내지 않나이까.

      그대 신후申侯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주공, 수지首止 회맹에서 탈퇴한 일로

      제환공齊桓公이 쳐들어 올거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아니, 그렇게 빨리 쳐들어올 수가 있단 말인가.
      주공, 제환공齊桓公을 당해낼 힘이 있는 나라는

      오직 초나라뿐이오니,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와 제나라 모두에게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주공, 그렇게 되면 우리 정나라는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망국의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허 어, 상황이 이리 급하게 생겼는가.

      대부 신후申侯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대가 초나라에 좀 다녀오도록 하시오.

 

      주공, 신이 초나라와 맹약을 맺고 오겠나이다.

      빨리, 잘 다녀오도록 하시오.

 

제환공齊桓公은 정문공鄭文公을 응징하려던 차에, 초성왕楚成王

비밀祕密 조약條約를 맺었다는 세작의 보고를 받게 된다.


      더는 망설일 까닭이 하나도 없도다.

      수지首止에 모였던 제후들에게 긴급히 연락하라.

 

제환공齊桓公이 수지首止 땅에서 회맹을 가졌던, 제후들도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속속 모여들었으며,

연합군이 되어 나라 신정新鄭 성으로 쳐들어가게 된다.

 

      제후들이여. 신의를 저버린 저 정나라를

      일격에 쳐들어가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읍시다.

 

      패공이시여, 그렇습니다.

      신의를 없는 정나라는 혼이 나야 합니다.


이때가 기원전 654년 여름으로, 주혜왕周惠王 23년이었으며,

또한, 제환공齊桓公 32년이면서, 정문공鄭文公 19년의 일이었다.

 

        정문공鄭文公은 미리 나름대로

        튼튼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연합군은 신정성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연일 공격을 늦추지 않자,

        정나라는 하루아침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문공鄭文公은 감히 맞서지 못하며, 신정新鄭 성문을 굳게 닫아걸어

겨우 지키기만 하면서, 초나라가 구원해주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성왕楚城王 이시어.

       눈물을 뿌리며 호소하나이다.

       지금 신정新鄭 성이 위기에 빠져 있나이다.


       나라가 왕께 귀순한 것은

       초나라만이 능히 제환공齊桓公

       제어制御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온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위급 지경에 빠진

       나라를 구원하려 하지 않나이까.

 

그때 마침 정나라 대부 신후申侯는 초나라 와 비밀조약을

맺고 난 후에 초나라의 도성인 영성郢城에 머물고 있다가,

 

연합군의 침공으로 신정新鄭 성이 위기에 빠졌다는 다급한 소식을

듣고는, 쫓아가 눈물을 뿌리며 초성왕楚城王에게 호소하였다.


      영윤令尹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어찌 생각하시오.
      나라를 도와주는 것이 유리하겠소.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겠소.

      왕이시여, 먼저 허나라를 치십시오.
      나라라니. 지금 정나라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소.


      지난날 제환공齊桓公이 연합군을 거느리고

      소릉召陵 땅에 왔을 때이옵니다.

 

      그때 허목공許穆公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종군하였다가 군중軍中 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제환공齊桓公은 허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매우 극진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허나라를 쳐들어간다면

      제환공齊桓公은 반드시 신정新鄭 성의 포위包圍를 풀고

      나라를 도우러 달려갈 것이 분명합니다.

 

      제환공齊桓公이 정나라 포위를 풀고 쫓아온다면

      이 어찌 정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 오, 영윤令尹의 생각이 정말 절묘하오.
      호 오, 그대야말로 하늘이 내린 성인聖人 이시오.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이미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지체없이

의견을 내놓자, 초성왕楚城王은 그 계책에 따라, 긴급히 허나라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도다.

      초군楚軍은 한수漢水를 건너 허나라를 쳐들어가라.

 

      우리 초군楚軍이 허성許城을 완전히 포위하였구나.

      모두 맹렬하게 공격하여 허성許城을 점령하라.

 

      조금만 더 힘을 내 공격하라,

      이제 허성許城이 무너지고 있다.

 

      영윤令尹 . 긴급 첩보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이 신정성新鄭城의 포위를 풀고,

      허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남하하고 있나이다.


      그렇다면 이제 되었도다.

      왕이시여, 제환공齊桓公이 허나라로 오고 있습니다.

 

      허 어, 빨리도 오는구먼. 그렇다면 되었소

      . 이제 다들 본국으로 돌아갑시다.

 

제환공齊桓公이 허성許城에 당도하였을 때는 이미 초군楚軍은 마치

바람처럼 쳐들어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만 뒤였다.

      주공, 투곡어토鬪穀於菟에게 당하였나이다.

      주공. 연합군이 많이 지쳐있나이다.


      일단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나라 일을 의논하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때 마땅히 화친조약和親條約에 대한 초나라의 위반을 추궁

해야 했으나, 연합군은 모두 허탈해하며 지쳐있었으므로,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못하고, 단지 허나라를 구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에서 연합군을 해산하고 말았다.

 

       허희공許僖公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웠다.

       허나라는 제와는 멀고 초와는 국경에 접해 있다.

 

       다시는 허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도록,

       초나라를 단속하지 않고,

       제환공齊桓公과 연합군이 그냥 떠나버리자,

 

       언제 또다시 초나라가 쳐들어올지 몰라

       몹시도 불안하게 생각했다.

 

허희공許僖公은 초나라의 침공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며

몹시 고민하다가, 나라 채목공蔡穆公을 만나 의논하게 된다

 

      우리 허나라는 제나라와는 멀고

      나라와는 국경을 접하고 있소이다.

 

      채목공蔡穆公, 정말 걱정이오.

      언제 또 초나라가 쳐들어올지 알 수가 없소이다.

 

      제환공齊桓公 만 믿고 있다가는 나라가 망하겠소.
      채목공蔡穆公은 어찌 생각하시오.


      허희공許僖公. 시대는 변하는 것이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자를 섬겨야 하오.
      나라는 가까운 초나라를 섬겨야 살 수 있소.

 

      하지만 제환공齊桓公을 따라

      소릉召陵까지 진출하였던 바도 있고,

      예의없는 초나라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소이다.

 

      허 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결정이 더뎌집니다

      생각이 났을 때 실행에 옮기시오.


      초성왕楚城王이 허나라의 항복을 받아 줄까요.
      육단肉袒의 예로써 죄를 청하면 받아 주지 않겠소이까.

 

151 . 입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