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5 화. 세 치 혀로 싸우는가.
47. 전쟁보단 화친이 좋다.
제 145 화. 세 치 혀로 싸우는가.
제齊와 연합군이 초楚 나라를 몰래 기습하려는 것은 중대한 일급
비밀이었으나, 시초寺貂는 원래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고, 또한
값진 뇌물을 받게 되자, 너무 쉽게 자랑삼아 말해버리게 되었다.
채蔡 나라 대부는 채성蔡城으로 급히 돌아가자마자 보고하게
되니, 이 엄청난 소식을 듣게 된 채목공蔡穆公은 깜짝 놀랐다.
제齊 와 연합군이 우리 채蔡 나라를
짓밟고 지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초楚 나라가 무너지면 우리 채蔡 나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며 심한 고초를 겪게 되리라.
채목공蔡穆公은 그날 밤으로 친족과 궁인들을 이끌고 초楚 나라로
달아났으며, 알게 된 내용을 모두 초성왕楚成王에게 고하게 되었다.
초성왕楚成王은 제환공齊桓公이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하여, 멀리
있는 남방까지 쳐내려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가
채蔡 나라의 급한 연락을 받게 되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아니 이럴 수가 있느냐.
제齊 나라가 우리 초楚 나라에 쳐들어온단 말이냐.
허허, 8개국 연합군이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이냐.
허허, 이거 정말 큰일이로구나.
영윤令尹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어찌 생각하시오.
이를 어떻게 대비하면 좋겠소.
투곡어토鬪穀於菟는 초楚 나라의 관중管仲이라 불릴 만큼 지략이
뛰어난 재상이었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답변한다.
우리가 정鄭 나라를 자주 침공하였기에,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가 합세하여
연합군을 결성했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정鄭 나라를 치러간 투렴鬪廉과 투장鬪章을
불러들여 막아낼 수 있는 방어 진지를 구축하면서
따로 말 잘하는 사람을 특사로 보내어
저들의 침략이 명분이 없음을 밝히며
스스로 물러가게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도, 저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저들은 천 리가 넘는 길을 달려온 원정군입니다.
시간을 끌면 그들의 군사들도 피곤할 것이며,
특히 무엇보다도 군량軍糧이 부족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관중管仲은 필시 중원中原의 세勢를
과시함으로써 우리를 위협할 것이며
함부로 무력을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속히 투렴鬪廉과 투장鬪章을
불러들이시고, 서둘러
제환공齊桓公에게 특사特使를 보내십시오.
누구를 특사特使로 보내면 좋겠소.
대부 굴완屈完 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사옵니다.
그 무렵에 제환공齊桓公은 연합군을 이끌고 채蔡 나라 국경을
돌파하였으며, 그때 시초寺貂 는 채목공蔡穆公으로 부터 뇌물을
받아먹은지라, 채성蔡城을 공격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다가
계면쩍게 제환공齊桓公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공. 신이 채군蔡軍을 무찔러
이 자리를 확보하여 놨나이다.
잘하였도다. 시초寺貂 야, 네 공이 크도다.
이제 이곳으로 연합군이 다 모일 것이다.
그간의 내용을 모르는 제환공齊桓公은 시초寺貂를 치하한 후
진채陣寨를 세우게 하였으며, 다른 나라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다음날부터 송환공宋桓公 노희공魯僖公 진선공陳宣公 위문공衛文公
정문공鄭文公 조소공曹昭公 허목공許穆公 등 7개 나라 제후들은
각기 군사와 병거兵車를 거느리고 속속 채蔡 나라로 모여들었다.
이제 8개 나라 군주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소.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소이다.
조촐하게 연회를 준비하여 놨소.
자, 다같이 연회장으로 갑시다.
더욱이 허목공許穆公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채蔡 나라로 달려왔으니,
맨 윗자리에 앉게 합시다.
자. 이제부터 여기서 전열을 가다듬어
초楚 나라로 쳐들어가야 합니다.
단합 연회를 열고 난 다음 날, 너무 무리하였음인지 허목공許穆公의
병이 마침내 도지더니, 자리에 눕게 되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마는
일이 갑자기 생기고 말았다.
허목공許穆公의 죽음을 애도하여
3일간 이곳에 머물기로 합시다.
허목공許穆公의 시신屍身과 허군許軍을
장례를 치루도록 돌려보냅시다.
우리 연합군은 초楚 나라 국경을 향하여
서남쪽으로 곧바로 출발합시다.
이때의 군사 출동은 춘추시대春秋時代가 개막된 이후로 가장
큰 규모의 연합군 동원이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날에 허許 나라를 제외한 7개국의 연합군은 초楚 나라
국경을 통과하여 형산荊山을 지나가게 되었다.
형산荊山은 초楚 나라 최북단으로
회수淮水의 3대 지류 중의 하나인
여수汝水의 상류에 있었으므로,
이곳은 채蔡 나라 채성蔡城 보다 도 북쪽이다.
이것은 그 당시 초楚 나라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제齊 나라로써는
너무나 먼 길까지 떠나왔다는 걸 알게 하여 준다.
형산荊山 기슭을 막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다. 수레를 길 한 편에
세워놓고, 무언가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중보仲父. 저 사람이 누구요?
주공, 의관을 바르게 갖추어 입은 것이
예사例事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은 제환공을 보자 다가오며,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라도 하듯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며 묻는 것이다.
잠깐만요. 실례지만 물어보겠소이다.
대군을 거느리시고, 앞장서 오시는 분은
바로 제환공齊桓公이 아니 시온지요.
당신은 누구시어 여기에 있는 것이오?
신은 초楚 나라 대부 굴완屈完이라 하옵니다.
우리 초왕楚王께서는 제환공齊桓公께서
오실 줄 미리 알고 계시며
신에게 기다리게 한 지 오래입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초楚 나라 투곡어토鬪穀於菟의 비밀지령을
받아 밤새 달려온 초楚 나라 공족公族 대부 굴완屈完 이었다.
굴완屈完이 부여받은 임무는 초楚 나라를 침공하는
명분이 하나도 없음을 밝히는 것이었으며,
또한, 연합군의 행군 속도를 최대한 늦춤으로써
초군楚軍의 방어 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은 초楚 나라 국경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예기치 않은
굴완屈完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얼굴빛이 돌변할 만큼 놀랐다.
이는 초楚 나라가 연합군이 움직이는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므로, 마치 조롱嘲弄 이라도 받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당황하게 되었다.
중보仲父. 초楚 나라가 우리가 오는걸
어찌 알고 사람을 미리 내보냈겠소.
우리 중에 누군가 기밀을 누설하였나이다.
중보仲父. 아니, 그놈이 어느 놈이요.
주공, 초楚 나라가 우리가 오도기도 전에 미리 알고
준비할 시간을 준 자가 누구로 보이십니까.
주공. 이미 이 지경이 되었는바
그자를 알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중보仲父, 굴완屈完을 어찌 대하는 것이 좋겠소.
초楚 나라가 굴완屈完을 특사特使로 보낸 것은
틀림없이 주공을 설득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굴완屈完은 우리 연합군이 초楚 나라를
침공한 까닭을 반드시 물으려 할 것입니다.
주공, 신이 나가 굴완屈完을 상대하겠나이다.
신은 대의명분으로 굴완屈完 을 꾸짖을 것이며
부끄러움을 알게 하여, 항복을 받아내겠나이다.
관중管仲이 분개한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제환공齊桓公을 대신하여,
수레를 몰고 나아가 굴완屈完에게 다가가 말하려 하였다.
이 굴완屈完이 먼저 말하겠소.
우리 왕께서는 귀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여수汝水를 넘으려 한다는 소식에 신을 보내셨습니다.
제齊 나라는 북해北海에 있고,
초楚 나라는 남해南海 가까이 있어,
본시本是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바이라,
지금까지 아무런 은혜와 원한도 맺은 바가 없어
서로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이요.
그런데도, 어찌하여 무슨 이유가 있어
이 먼 초楚 나라까지 찾아온 것이오.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바람 풍風, 말 마馬, 소 우牛, 아닐 불不, 서로 상相, 미칠 급及.
발정發情 난 말과 소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사기史記의 제환공齊桓公 기紀에 나오는 말이며,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제희공齊僖公 4년에 나오는 고사古事 이다.
굴완屈完이 명재상 관중管仲에게 당당하게 따지고 들어오자,
관중은 이미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굴완屈完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호기롭게 답변하게 된다.
옛날 주성왕周成王께서 우리 제齊 나라의 선조이신
태공망太公望에게 제齊 나라를 내려주시면서
대대로 주周 왕실의 국방을 도우라 하시었소.
동쪽으로는 동해 東海에 이르기까지
서쪽으로는 하수 河水에 이르기까지
남쪽으로는 목릉 穆陵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는 무체 無棣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도록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한 자가 있으면,
모든 제후가 힘을 합쳐,
그자를 용서하지 말라 하시었소.
그런데 주周 왕실이 동쪽으로 천도遷都 한 후에는
많은 제후諸侯 들이 방자하여 졌소이다.
그래서 우리 주공께선 왕명을 받들어 맹주盟主로써
옛 왕업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오.
그런데 초楚 나라는 비록 남방에 있기는 하나?
다른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포모包茅를 바치면서
반드시 왕의 제사를 도와야 하거늘
일체의 공물과 축주縮酒 도 바치질 않고 있소.
우리 주공께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7개국 연합군을 거느리고 초楚 나라로 가는 중이요.
초楚 나라는 본래 주周 왕실로부터 자작子爵의 작위爵位를 받은
제후국으로, 당시 제후국 들은 주周 왕실에 자기 나라의 특산물로
매년 공물과 술을 밭쳐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초楚 나라는 초무왕楚武王 대에 이르러
분수에 맞지 않게 왕호를 참칭僭稱 하면서,
진공進貢의 의무를 거부하고 있소.
초楚 나라는 어찌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는 것이오.
초楚 나라가 그러한바, 우리가 주周 왕실을 대신하여
초楚 나라를 문책하고자 내려온 것이오.
그렇기는 하나, 이 굴완屈完이 답변하겠소이다.
주周 왕실이 자기의 기강을 잃었기에
천하가 주왕周王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는 것이오.
어찌 초楚 나라만 탓할 수가 있을 것이오.
관중管仲의 절묘한 역공에 굴완屈完은 당황한 듯하였으며, 얼굴이
붉어진 채 잠시 가만히 있을 때, 또 관중이 말을 이어갔다.
뿐만 아니라. 옛날 주소왕周昭王께서
남방을 순수巡狩 하러 나가셨다가
한수漢水의 강물에 빠져 돌아가신 적이 있소이다.
이것 또한 초楚 나라 사람의 소행이 아니겠소.
우리 주공께서는 이 책임도 물으실 작정이오.
굴완屈完, 그대는 이래 도할 말이 있는 것이오.
제 146 화. 정도로써 굴복시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