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 화. 어려운 나라를 뒤늦게 돕는가.
제 137 화. 어려운 나라를 뒤늦게 돕는가.
주공, 큰일 났습니다.
형邢 나라 피난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나이다.
뭣이라고, 형邢 나라가 패하였단 말이냐.
허 허, 웬 피난민들이 이곳으로
이렇게 많이 몰려오느냐.
아니, 저 쓰러지는 자가 누구냐.
주공, 저분은 형후邢侯 숙안叔顔 이옵니다.
형후邢侯 라니, 형邢 나라 군주란 말이냐
주공, 그러하옵니다.
허 어, 빨리 일으켜 세워드려라.
형후邢侯, 미안하오.
귀국을 일찍 구원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게 한 건 모두 과인의 잘못이오.
형후邢侯는 먼저 쉬면서
몸을 추스르도록 하시오.
뒤늦은 그때야, 제환공齊桓公은 송후宋侯와 조백曹伯을 불렀으며,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북적北狄을 물리칠 계획을 짜고는, 그 즉시
영채를 뽑고 북적北狄을 무찌르기 위하여 형邢 나라로 달려갔다.
수만瞍瞞 적반狄班 임, 척후병입니다.
무슨 일인가. 어서 보고하라.
제齊, 송宋, 조曹 세 나라 연합군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허 허, 이제야 온다는 것이냐.
적반狄班 임, 우리는 형邢 나라에 쳐들어와
노략질할 만한 건 다 챙겼습니다.
그렇도다.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도다.
자, 이제 포로와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가자.
적반狄班 임, 그냥 떠납니까?
이 형邢 나라 궁실을 모두 불 지르고 떠나십시오.
오, 좋도다. 모두 불 지르라.
불을 질러야 우리를 쫓아오지 못하리라.
삼 개국 연합군이 형邢 나라 도성에 이르렀을 때는 북적北狄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흔적도 없었으며, 공실宮室 뿐만 아니라
온 성안이 불바다가 되어 활활 타고 있었다.
이거 뭐야, 싸움은 안 하고 불만 끄고 있잖아.
어때서, 싸우다 죽는 거보다 났잖아.
야, 군인은 용감하게 싸워야 하는 거야.
야, 네가 갑옷 입은 갑사甲士 냐?
갑사甲士는 나라에서 뽑은 군인이지만
너와 나는 징발徵發 된 사병私兵 이야.
세 나라 연합군이 싸우러 왔다가 할 수 없이 열심히 불만을 끄게
되었으며, 그때야 제환공齊桓公은 형후邢侯를 불러 이야기하게 된다.
형후邢侯 숙안叔顔께서는 몸이 어떠시오.
패공霸公께서 보살펴 주시어 회복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기에서 계속 살겠소?
패공霸公, 이곳을 복구하자면
새로 짓는 거보다 더 어렵게 보입니다.
그러면 어찌 하는 게 좋겠소?
패공霸公, 지금 피난 간 백성 대부분이
이의夷儀 지방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이의夷儀 지방은 어떤 곳이오.
이의夷儀는 이곳보다 넓고 좋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송후宋侯와 조백曹伯과 함께 의논하여 형邢 나라
도성인 이의성夷儀城 쌓아주었다.
아울러 조묘祖廟 뿐만 아니라 무기고인 여사廬舍도
지어주었으며 또한, 백성들에게 소, 말, 염소, 돼지,
곡식 등을 제齊 나라에서 가져와 나눠 주도록 하였다.
이로써 형후邢侯 숙안叔顔을 비롯한 백성들을 옮겨가 살게 되었다.
백성들이 새로이 도성이 된 이의성夷儀城에 들어와 살게 되자,
마치 고향에 돌아와 살게 되는 듯 기뻐하였다.
패공霸公, 형邢 나라의 일이 끝났으니
이제 돌아갈까 하오.
아니요, 송후宋侯와 조백曹伯께
의논드려야 할 일이 있소.
위衛 나라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소.
형邢 나라에 도성을 쌓아주고
위衛 나라에 도성을 쌓아주지 않는다면
위衛 나라 백성들이 심히 원망하게 될 것이오.
이리된바 위衛 나라를 돕는 것이 어떻겠소.
패공霸公, 군사들이 힘들어할 것 같소이다.
그 문제는 송후宋侯와 조백曹伯께서 도와주시오.
소와 돼지를 잡아 군사들이 넉넉히 먹도록
만들고, 이에 따른 식량을 돕겠소이다.
좋습니다. 패공霸公의 뜻에 따르겠소이다.
고맙습니다. 자, 다 같이 초구楚丘로 갑시다.
초구楚丘는 지금의 하남성 활현滑縣 동쪽 일대이다. 제환공은
여러 나라에 연락하여 축조에 필요한 여러 기자재를 부조扶助
받아, 위衛 나라 도성인 초구성楚丘城을 쌓아주었다.
위衛 나라 도성이 완성되자
위문공衛文公은 초구성楚丘城으로 도성을 옮겼다.
위衛 나라는 초구성楚丘城에서, 그때부터
나라다운 규모인 성곽과 궁실을 갖추게 되었다.
위문공衛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의 깊은 뜻의 배려에 감격하여
모과木瓜 라는 시를 지어 그의 은혜를 기리었다.
이 시詩도 유명하며 시경詩經 국풍國風 용풍편鄘風篇에 실려
있으면서,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해오고 있다.
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투아이목과 보지이경거)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패옥 구슬로 보답하려는데
匪報也 永以為好也 (비보야 영이위호야)
보답이 아니라 오래도록 그로써 좋아하려 함이네
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투아이목도 보지이경요)
나에게 복숭아를 주기에 고운 옥구슬로 보답하려는데
匪報也 永以為好也 (비보야, 영이위호야)
보답이 아니라 오래도록 그로써 좋아하려 함이네
投我以木李 報之以瓊玖 (투아이목이 보지이경구)
나에게 오얏을 주기에 옥거울로 보답하려는데
匪報也 永以為好也 (비보야 영이위호야)
보답이 아니라 오래도록 그로써 좋아하려 함이네
모과木瓜는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쓰임새가 많은 과일이며, 매우
향이 좋아, 그냥 열매만 방에 놓아둬도 온 방 안이 향기로워진다.
식용이 가능하나 생과의 맛이 시고 떫기에
보통 생으로는 잘 먹지 않고, 꿀이나
설탕에 재어서 모과木瓜 차로 마신다.
위문공衛文公이 모과木瓜 라는 시를 지은 것은 제환공齊桓公의
베풂이 향기로우며, 그 향이 널리 퍼져나간다는 뜻일 것이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제환공齊桓公이 위태로움에 빠진 나라들을
구해주었다고 칭송하며 감격하였다.
제환공齊桓公은 멀리 북쪽까지 진출하여
산융山戎 인 영지국令支國과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여, 위기에 빠진 연燕 나라를 구해주었다.
그 후로 첫 번째는 대代가 끊어진 노魯 나라에
노희공魯僖公을 세워줌으로써 대代를 잇게 하였다.
두 번째는 도성都城을 잃은 위衛 나라에
초구성楚丘城을 쌓아줌으로써,
망한 위衛 나라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세 번째 또한, 도성都城을 잃은 형邢 나라에
이의성夷儀城을 쌓아줌으로써,
망한 형邢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러한 공로로 제환공齊桓公은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다섯 패공覇公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패공覇公으로 손꼽히게 된다.
이러한 역사에 대해 잠연潛淵 선생이 다음과 같이 읊었다.
周室東遷綱紀摧 (주실동천강기최)
주나라가 낙양으로 동천 한 후 기강이 쇠퇴했는데,
桓公糾合振傾頹 (환공규합진경퇴)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해 무너지는 것을 진정시켰네
興滅繼絶存三國 (흥멸계절존삼국)
패망한 나라를 일으켜 세 나라를 존속시켰으니,
大義堂堂五霸魁 (대의 당당오패괴)
대의를 떨쳐 당당하게 오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도다.
제환공齊桓公은 이러한 일들이 고생 끝에 모두 이뤄지자, 그제야
비로써 자기가 좋아하는 사냥을 모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대규모 사냥은 단순히 짐승을 잡는 유희적遊戱的 집단
행동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사냥은 한나라의 연례행사 중의 하나였으며,
제후諸侯 에게는 의무 사항이기도 하였다.
사냥을 게을리하는 제후는 태만한 군주이며
그 나라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계절별로 사냥의 이름을 달리하였으며
잡는 짐승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봄에 하는 사냥은 수蒐 라 하여,
이때는 새끼를 배지 않은 짐승만을
골라서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여름의 사냥은 묘苗 라 하여,
곡식을 해치는 짐승들만을 잡게 하였고,
가을에는 오로지 군사훈련만을 하였기에
짐승을 잡지 않았으며,
겨울철은 수狩라 하여 짐승을 마음껏 잡게 하였다.
오늘날 행하는 사냥은 바로 겨울의 수狩 사냥으로 수렵狩獵 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기인하였다고 봐야 한다.
제齊 나라는 그해 겨울 어느 날에 중신과 대부들이
모두가 참가하는 대규모 수狩 사냥으로,
큰 연못이 있는 야산으로 떠났으며,
관중管仲 만이 임치臨淄에 남아 궁을 지키게 하였다.
패공覇公인 제환공齊桓公이 오랜만에 벌리는 사냥인 만큼 그 규모와
위세가 엄청 대단하였으며, 군주와 신하들이 수레를 타고 일제히
달리며 어지러이 달아나는 짐승들을 쫓는 광경은 장관을 이루었다.
가장 사납거나, 가장 큰놈을 잡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 모두 힘써 사냥을 잘하도록 하라.
이렇게 사기를 북돋아 주는 명命을 내리고, 제환공齊桓公 자신 또한,
커다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 부리나케 그 뒤를 쫓고 있었다.
내 저 노루를 잡고 말리라.
저놈이 연못가로 가는구나.
수레야. 빨리 연못으로 달려가라.
저놈 노루가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구나.
천천히 화살을 제어 힘껏 쏘리라.
헉. 어 허. 수레를 멈추어라.
주공.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커다란 노루가 사정권 안으로 들어와 제환공齊桓公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막 당기려고 하던 그때였다.
별안간 제환공齊桓公이 수레를 멈추라고 외치자, 마부는 급히
고삐를 당기고는 제환공을 돌아보자, 이상한 태도態度가 보였다.
제환공齊桓公은 당긴 시위를 도로 푼 채
연못 한가운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
제환공齊桓公은 당긴 활시위를 푼 채로, 연못 한가운데를 뚫어지게
응시凝視 하였으며, 얼굴에는 두려움의 빛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사이 쫓기던 노루는 완전히 달아나고 말았다.
주공,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주공, 무엇을 두려워하시나이까.
주공. 쫓던 노루가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뒤를 따르며, 안전安全을 보살피던 내시 수초竪貂가 앞으로 달려가
물었으나, 제환공齊桓公은 여전히 정신 나간 표정으로 연못의
한가운데만을 바라보며, 망연히 서 있는 것이었다.
주공. 무슨 일이시옵니까.
무엇을 그렇게 바라보고 계시나이까.
나는 방금 귀신鬼神을 보았노라.
그 모양이 하도 괴상하여 지금도 가슴이 떨리는구나.
불길한 징조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구나.
주공. 귀신鬼神은 음물陰物 이옵니다.
어찌 대낮에 귀신鬼神이 나타나겠나이까.
허 어. 그렇기는 하지만 지난날
제양공齊襄公이 고분姑棼 에서 멧돼지 같은
괴물을 본 것도 대낮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어서 가서 중보仲父를 모시고 오너라.
주공, 중보仲父가 성인聖人 도 아닌데
어찌 귀신鬼神의 일까지 알 수 있겠나이까.
제 138 화. 대낮에 귀신이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