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 화. 그대는 패왕지도를 아는가.
제 131 화. 그대는 패왕지도를 아는가.
제환공齊桓公이 이웃 나라면서 항상 근심거리인 노魯 나라를, 이번
기회에 아예 합병해 버려 앞날을 편하게 하자며 강하게 말하였으나,
조당에 모인 중신重臣 모두가 침묵하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제환공齊桓公의 눈길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훑고 있다가,
이윽고 그의 시선이 재상 관중管仲의 얼굴에 와 닿게 된다.
중보仲父는 어찌 생각하시오.
주공, 신이 몇 말씀 올려도 되겠는지요.
중보仲父는 어서 말씀해보시오.
주공께서는 패왕지도覇王之道를 생각해보셨는지요.
별안간 패왕지도覇王之道 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주공께서는 이미 천하의 모든 제후에게
부러움을 받는 패공霸公 이시며,
천하의 방백方伯이 되시었나이다.
모름지기 패왕覇王 이란, 도리道理를 바로 세우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말하나이다.
도리道理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주공, 신 관중管仲이 더 이어가겠나이다.
첫째 도리道理는 강强 함을 견제牽制 하고
약弱 함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도리道理는 포악한 정치를 못 하게 하며
탐욕貪慾 으로 침략을 일삼는 나라는, 곧바로
응징膺懲 하여 못된 버릇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정의로우나 아쉽게 망한 나라는
다시 살려내어 존속되도록 해주며
위태로운 나라는 안정을 도모해주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대代가 끊어진 나라는 대代를 잇게 해주는
이것이, 바로 도리道理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이 모두를 패왕지도覇王之道라 할 수 있나이다.
관중管仲의 말을 들은 제환공齊桓公은 그제야 패왕지도覇王之道에
대한 본뜻을 깨달아 크게 뉘우치면서, 신료에게 힘주어 말하게 된다.
중보仲父는 도리道理를 생각하라는 것이오.
그렇다면, 노魯 나라를 어찌하면 좋겠소.
노魯 나라는 예로부터 예의를 아는 나라입니다.
지금 군주를 죽이는 소동이 잇달아 일어났으나
백성들은 옛날부터 여전히 어진 예법을 숭배하오니
이를 견주어 보건대 노魯 나라를 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주공, 또한 공자 신申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밝고
재상 계우季友는 어진바, 두 사람은 어지러운 시국을
반드시 안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봅니다.
더구나 노魯 나라 백성들은 재상 계우季友를
잘 따르며 잘 복종하고 있다 하옵니다.
그러므로 주공께서는 이 기회에 노魯 나라에
대代를 잇게 하는 계절繼絶의 은혜를 베푸시어
패왕지도覇王之道를 행하심이 좋겠나이다.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의 깊은 말뜻을 깨달았다는 듯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또한 큰소리로 외쳐대었다.
중보仲父의 말씀이 옳고도 옳도다.
상경 고혜高傒는 지금 즉시 갑사甲士 3천 명을 이끌고,
어서 빨리 가 노魯 나라를 도우라.
제환공齊桓公의 명령으로 주邾 나라에서 귀국한 공자 계우季友는
제齊 나라의 상경 고혜高傒의 도움을 받게 되자, 그제야
공자 신申을 노魯 나라의 군위에 올려 모시게 되었다.
이로써 공자 신申이 어렵게 노희공魯僖公이 되었다.
계절繼絶은 끊어진 대代를 잇게 한다는 말이다.
이것 역시 제환공의 업적 중 하나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며
그에는 관중을 비롯한 신료들의 대범한 정치관이 작용하여
제환공을 천하의 패공으로 올려세웠다고 할 수 있다.
노魯 나라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공자 신申이 노희공魯僖公이
됨으로써, 깊은 수렁에 빠졌다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았다.
경보慶父와 애강哀姜이 아직도 살아 있도다.
두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또 불씨가 살아날 것이오.
두 사람은 반드시 정리하여야 할 것이오.
재상 계우季友는 곡부성曲阜城으로 돌아와 급한 일을 정리하고
나자마자, 첫 일성으로 이같은 말을 부르짖으며 즉시 거莒 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경보慶父를 잡아 들이려 하였다.
거莒 나라 군주께 아뢰오.
경보慶父는 우리 노魯 나라의 간적奸賊 입니다.
그를 잡아 우리에게 넘겨주거나 목을 베어 보내시면
섭섭지 않은 사례謝禮를 반드시 하고자 합니다.
거莒 나라는 지금의 산동성 거현 일대에 있었으며, 기원전 1043년
주무왕周武王이 상商 나라를 무너트리고, 주周 나라를 세우면서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자손을 찾아내어 봉지封地를 줌으로써
세워진 나라이다.
거莒 나라 군주인 거자莒子는 이미 경보慶父 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고 망명을 허락하였기에,
만일 계우季友의 요구대로 경보慶父를 죽이거나
붙잡아 노魯 나라로 돌려보내 주게 된다면
백성들로부터 몹시 비난받을 입장이었다.
그러나 거자莒子는 경보慶父로 인하여 노魯 나라와 원수가 되고
싶지도 않았으며 또한, 노魯 나라에서 섭섭지 않게 많은 예물을
보내 주겠다는 말에도 구미가 크게 당겼다.
어서 동생 영나贏拿를 부르라.
형님 무얼 걱정하십니까.
경보慶父를 죽이거나 붙잡아서 보내 준다면
많은 예물을 보내 주겠다, 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걱정이로구나.
형님. 경보慶父에게서 이미 뇌물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경보慶父를 다른 나라로 보내시면
경보慶父를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으응. 동생의 생각이 참으로 묘책이로다.
동생은 이 뜻을 경보慶父에게 전하라.
거자莒子의 동생 영나贏拿는 경보慶父를 만나 거莒 나라의 입장을
설명하며, 하루빨리 거莒 나라를 떠나줄 것을 이야기하였다.
우리 거莒 나라는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이외다.
공자 때문에 우리 거莒 와 노魯 나라 사이가
의義가 상하여 싸움이라도 일어날까 두렵소이다.
미안하지만, 공자께서 스스로
우리 거莒 나라를 떠나주시면 고맙겠소이다.
허 참. 내가 어디로 떠난단 말이오.
내가 줄 만큼 뇌물도 많이 줬잖았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오.
그러나 경보慶父는 떠나갈 곳도 없었으며, 이제 떠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니, 악착같이 거莒 나라에 머물려고 하였다.
형님. 경보慶父가 떠날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동생아. 어찌하면 좋겠는가.
아무래도 강제로 내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거자莒子의 동생인 영나贏拿는 직접 군사를 동원하여 경보慶父를
함거轞車에 싣고 갔으며, 문수汶水 강변에 떨어트리고 돌아갔다.
문수汶水는 제齊 나라의 국경과 붙어 있으므로, 경보慶父는 제齊
나라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변방을 지키던 제齊의 국경 성장城將이
이미 경보慶父의 악행을 알고 있는바, 접근조차 못 하게 단속하였다.
이런 변방 문수汶水에서 내가 살수 있단 말인가.
아아,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넓은 천지에 내 몸 하나 갈 곳이 없다니.
지난날이 너무나 슬프고 애통哀痛 하구나.
경보慶父 형님 거기서 무얼 하십니까.
어. 아니, 너는 동생 해사奚斯가 아니냐.
형님은 거莒 나라에 계시는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이곳 문수汶水에서 떠돌고 계십니까.
동생은 어디를 다녀오는 길인가.
사절단으로 제齊 나라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해사奚斯는 노환공魯桓公의 시녀侍女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며,
한때는 서형庶兄인 경보慶父와 사이가 매우 좋았었다.
그러나 경보慶父가 마구간지기인 어인圉人 낙犖을 시켜
공자 반般을 살해하였을 때, 비로써 그의 흑심을 알아차리고,
경보慶父의 당黨을 탈퇴한 바가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아니 형님은 왜 이리 초라한 모습을 보이십니까.
부끄러우나. 거莒 나라에서 쫓겨났느니라.
함께 귀국하시어 종묘宗廟에 용서를 비십시오.
내가 노魯 나라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으나
누구보다도 계우季友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돌아가거든 네가 계우季友에게
잘 말해서 나를 살려달라고 대신 빌어보아라.
우리는 다 같이 선군先君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가 아니냐.
형님 알겠습니다.
꼭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해사奚斯는 경보慶父와 작별하고는 문수汶水를 건너 노魯 나라에
들어가자마자, 도중에 경보慶父를 만났던 일을 고하면서
경보慶父의 초라한 행색을 상세히 알리었다. 이에 노희공魯僖公은
측은한 마음이 일어, 숙부이며 재상인 계우季友를 돌아본다.
계우季友 형님, 이 아우 해사奚斯 입니다.
경보慶父 형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사오니
한번 용서하여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질 마라.
주공, 경보慶父 형님을 살려주십시오.
해사奚斯 삼촌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계우季友 숙부님,
해사奚斯 삼촌의 말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한번 용서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주공, 군주를 죽인 자를 죽이지 않고 용서하여 준다면
장차 무엇으로 뒷사람들을 경계하려 하십니까.
허 어, 그렇긴 합니다.
해사奚斯 아우는 내말을 잘 듣도록 하라.
해사奚斯 동생은 다시 문수汶水로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목숨을 끊으면 자손子孫의 대를 잇게 하여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손子孫도 보존保存 하지 못하리라.
계우季友 형님, 경보慶父 형님의 가족은
이미 백성들에게 짓밟혀 모두 죽었습니다.
해사奚斯 삼촌, 할 수 없습니다.
계우季友 숙부님의 말씀대로 그리 하십시오.
계우季友 형님, 이 아우 그리 전하겠습니다.
다음날 해사奚斯는 수레를 타고 다시 문수汶水로 달려갔으나,
차마 계우季友의 말을 전할 수가 없어, 경보慶父가 머무는 집
대문 앞에서 큰 소리로 애처롭게 통곡痛哭을 하고 말았다.
저 통곡痛哭 소리는 해사奚斯의 목소리가 아닌가.
동생 해사奚斯는 나의 뜻을 만들지 못하였구나.
울고만 있으니 이는 계우季友의 뜻이리라.
아. 모든 게 지나간 한낱 꿈이 되고 말았구나.
경보慶父는 마침내 길게 탄식歎息 하며 허리띠를 대들보에 걸쳐놓고,
목을 매고는 스스로 한 많은 세상을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아 아, 나 경보慶父 야.
지성至誠 이란. 지극하게 정성을 들인다는 말이 아니냐.
지성至誠 이란. 무엇을 위하여 정성을 올리는 것이냐.
지성至誠 이면 감천感天 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정성을 다하여 치성致誠을 올리면
하늘도 감동하여, 바라던 소원所願을
이루도록 도와준다는 말인 모양이다.
그래, 사람이 살아가며 열심히 바라는 것은
오르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 나는 소원所願을 이루었을까.
그러나, 나는 하나도 이룬 게 없어.
나는 반절은 이루었으나,
백성의 마음을 몰랐던 거야.
나는 백성의 마음을 몰라 실패한 거야.
나는 백성을 위하여 정성껏 치성致誠을
드린 바가 한번도 없었어.
나는 그져 보위에 오르려고만 하였어.
나는 나의 탐욕貪慾 만을 이루려 하였던 거야.
나의 탐욕貪慾이 올바르지 않은데
어찌 하늘이 나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겠는가.
그래, 인생살이는 탐욕이 아닌 것 같아.
탐욕으로 거창巨創 한 것을 이루려 하거나
바라던 것을 얻게 되는 소원성취도 좋지만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평범平凡 하게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幸福 이란 것이 있었어.
나는 이 평범한 행복을 왜 몰랐을까.
나의 탐욕 속에는 왜 행복幸福이 없었을까.
해사奚斯는 목관을 만들어 경보慶父의 시신을 정성스레 담았으며
노魯 나라로 돌아가면서 인생무상을 생각하며 눈물을 뿌렸다.
제 132 화. 잘못된 사랑의 종말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