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 화. 손바닥 하나만 들면 무슨 뜻일까.
제 129 화. 손바닥 하나만 들면 무슨 뜻일까.
반般이 낙犖에게 살해당하자, 경보慶父는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하여 어인圉人 낙犖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계우季友의 재상宰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노魯 나라 공족公族 중에 가장 큰 세력을 지닌 당黨이 되었다.
이에 제일 먼저 기뻐한 사람은 애강哀姜 이었다.
애강哀姜, 내가 왔소.
이제 내 맘대로 내궁內宮에 들어 올 수 있으니,
정말 마음이 편하구려.
저도 소원을 이루어 기쁘옵니다.
이리 와요. 힘껏 끌어 앉아봅시다.
두 사람은 이제 드러내놓고 매일 한 침상에서 끌어 앉으면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속삭이면서 장차將次의 일을 꾸며나가게 되었다.
시숙媤叔 임. 이참에 아예 군위君位에 오르시지요.
아직 공실公室에는 공자 신申과 계啓가 있소.
이 둘을 제거해야 군위에 오를 수 있소.
달리 생각해 놓은 계책計策 이라도 있으신지요.
공자 신申은 똑똑하고 나이가 많아 만만치 않소.
나이 어린 공자 계啓를 우선 군위에 올리면서
백성들의 이목을 속여 민심을 잡아야 하오.
계啓의 생모가 숙강叔姜 이며, 당신의 동생이니
제齊 나라에서도 별말은 하지 않을 것 같소.
그렇긴 하지요.
그동안 우리 세력을 더욱 키워나갈 필요가 있소.
우선 계啓를 군위에 올려 세운다면
시숙媤叔은 노魯 나라의 태공망太公望이 되십니다.
시숙媤叔 임. 그런 후에 기회를 보아
먼저 공자 계啓를 해치우고, 그다음에
공자 신申을 처치할 생각이시군요.
쉬이, 조용히 하시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소.
극비리에 서서히 해치워야 하오.
시숙媤叔 임. 아무쪼록 꼭 성사시켜야 하옵니다.
이렇게 의논을 정한 애강哀姜과 경보慶父는 군위에 올랐던 반般의
죽음을 발상하고, 제일 어린 막내 조카인 공자 계啓를 군위에 올렸다.
이때 공자 계啓는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으나, 군위君位에 올라
노민공魯閔公이 되었고, 살해당한 반般은 시호諡號를 받지 못하였다.
어마마마. 무섭습니다.
주공. 왜 그러십니까. 용기를 가지세요.
경보慶父. 큰아버지가 무섭고요.
애강哀姜, 큰어머니가 더 무서워요.
여덟 살의 어린 노민공魯閔公은 군주의 자리에 오르긴 하였으나
애강哀姜의 쌀쌀한 미소에 소름끼쳐하였으며, 정권을 한 손에 쥐고
나랏일을 흔드는 큰아버지 경보慶父의 강한 눈빛이 너무나 무서워,
그가 시키는 대로 그저 따라서 할 뿐이었다.
이때 스승인 태부太傅 신불해愼不害가 노민공魯閔公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한 가지 계책을 알려주게 된다.
주공. 태부太傅 신불해愼不害 입니다.
주공. 두려움에 떠시면서 울면 아니 됩니다.
스승 임, 정말 무서운 걸 어떡하지요.
어찌 외숙外叔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십니까.
스승님, 외숙外叔 이라니요.
어머니 숙강叔姜은 제환공齊桓公의 여동생입니다.
패공霸公 이며 방백方伯 이신 제환공齊桓公에게
힘을 빌려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큰아버지가 나를 제齊 나라로 보내줄 리 없질 않소.
주공께는 새로이 군위에 올랐습니다.
제환공齊桓公에게 즉위 인사를 한다는 핑계를 대면
경보慶父도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노민공魯閔公은 다음날 경보慶父를 보자, 이를 이야기하였으며,
이에 경보慶父는 어쩔 수 없이 제齊 나라에 사신을 보내주게 된다.
마침내 제齊 나라에 보낸 사신이 돌아와, 제齊 나라의 낙고落姑
땅에서 회담하기로 정해졌다고 하자 노민공魯閔公은 곧바로 떠났다.
이미 60줄에 접어든 천하의 패공霸功 인
제환공齊桓公은 회담이라고 하여 나왔다가,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어린 노민공魯閔公을
그윽이 바라보며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민공魯閔公은 제환공齊桓公의 옷소매를 부여안고 흐느껴 그저
울기만 할 뿐으로 말을 하지 못하자, 제환공齊桓公은 측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따뜻한 목소리로 물어보게 되었다.
조카는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하지 말고 어서 말해보라.
공자 경보慶父가 너무 무서워
늘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외숙外叔께서는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노魯 나라에도 인물이 있을 터인데
어떻게 도와 달라는 말인가.
노魯 나라 대부 중에 누가 제일 현명한가.
작은아버지인 공자 계우季友가 현명하기는 하지만
진陳 나라에 망명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를 불러오지 않는가.
재상 경보慶父가 해치려 하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노민공魯閔公과 또한 같이
따라온 태부太傅 신불해愼不害를 내려다보면서 위로의 말을 한다.
이제 조카는 안심하라.
내가 계우季友 공자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지금 즉시 사람을 보내 그를 귀국시키도록 하겠노라.
만일 경보慶父가 허튼수작을 하면,
그자 경보慶父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알려라.
중보仲父, 먼저 사자를 진陳 나라로 보내어
공자 계우季友는 망설이지 말고
노魯 나라로 빨리 귀국하라고 알리시오.
제환공齊桓公이 친히 계우季友의 귀국을 명령하자, 노민공魯閔公은
그제야 안심하면서 감사의 절을 올리고 바삐 귀국길에 올랐다.
잠시 어가御駕를 멈추어라.
주공. 왜 멈추십니까.
노魯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시렵니까.
아니 오, 귀국할 것이오,
내관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아라.
주공, 제齊 나라 낭郎 이라는 곳입니다.
이 낭郎 땅은 어떤 곳인가.
주공, 이곳은 진陳 나라와 우리 노魯 나라가
서로 오가는 길목이 되옵니다.
마침 잘 되었구나.
좋다. 이 낭郎 땅에서 기다려 보겠노라.
태부太傅 임, 혼자서 돌아가기가 두렵습니다.
계우季友. 작은아버지와 함께 귀국하겠습니다.
한편 계우季友는 제齊 나라의 사자로부터 제환공齊桓公의 명을 전해
받자마자, 즉각 진陳 나라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밤을 도와 수레를 달리는 중에
낭郎 땅에서 노민공魯閔公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자
더욱 말에게 채찍을 가하여 수레를 달렸으며
마침내 낭郎 땅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반가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노魯 나라 도성인 곡부성曲阜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제환공齊桓公은 노魯 나라에도 사자를 보내어, 이러한 사실
모두를 재상인 경보慶父에게 알려주었다.
계우季友가 노민공魯閔公과 같이 돌아왔단 말이냐.
어린놈이 나를 완전히 속였구나.
재상 경보慶父 임,
제齊 나라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제후齊侯께서 계우季友를 재상으로 삼으라 하나이다.
어린놈이 제齊 나라까지 완전히 움직이고 왔구나.
나, 경보慶父가 그리 쉽게 물러날 줄 아느냐.
좀 더 두고 기회를 찾고 말리라.
노민공魯閔公 원년이며, 그해 겨울에 제환공齊桓公은 노魯 나라의
뒷일이 걱정되어, 대부 중손추仲孫湫를 불러 명을 내리게 된다.
대부 중손추仲孫湫는 노魯 나라에 다녀오되
그곳 실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오라.
중손추仲孫湫는 노魯 나라 도성인 곡부曲阜에 들어가, 먼저
노민공魯閔公에게 제환공齊桓公의 안부를 전하며 절을 올렸다.
노후魯侯 께옵 선 안녕 하시 온지요.
중손추仲孫湫께선 어서 오세요.
제齊 나라 중손추仲孫湫는 인사를 올리며 말을 하자, 노민공魯閔公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더듬거리니, 더는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노민공魯閔公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하지만
눈물만 찔끔거릴 뿐으로 말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어린 노민공魯閔公은 군주 재목이 아니로다.
이제 공자 신申을 만나러 가보자.
중손추仲孫湫은 노민공魯閔公의 형인 공자 신申을 만났다. 공자
신申은 세상일뿐만 아니라, 학문적 이야기도 줄줄하며 막힘이 없었다.
재상 계우季友 임, 무얼 하시오.
중손추仲孫湫 님. 어서 오십시오.
공관에서 유숙하시는 데 불편은 없으신지요.
덕분에 편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申 공자는 공실公室 안의 실정은 물론이며
여러 분야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으며
태도가 신중하고 말에도 조리가 있소이다.
어여삐 봐주시어 고맙습니다.
재상 계우季友 임,신申 공자의 앞날이 매우 유망합디다.
계우季友께서 잘 보호 해야 할 것 같소이다.
저도 염두念頭에 두고 있습니다.
중손추仲孫湫는 공자 계우季友를 만난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한 가지 일에 의문이 생겨 더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경보慶父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오.
아니 오른 손바닥만을 보이다니요.
아 하.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소이다.
제가 우리 주공께 알리겠소이다.
노魯 나라에 어떤 변이 생긴다면
우리 제齊 나라가 좌시坐視 하지 않을 것이오.
정말, 너무나 고맙습니다.
중손추仲孫湫는 계우季友가 대답 대신에 오른쪽 손바닥을 허공에
흔들어 보이자, 한쪽 손바닥만으로 어찌 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계우季友의 뜻을 알아차리고, 공관公館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그때 공자 경보慶父가 은밀히 찾아와 만나주기를 청하였다.
이 경보慶父, 중손추仲孫湫께 인사 올립니다.
먼 곳에서 오시 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공자 경보慶父 임.
대부의 노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적으나마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어서 받으시지요.
고맙습니다. 하오나 만약
공자께서 귀 노魯 나라에 충성忠誠을 다하신다면
우리 주공께서도 기꺼이 받으실 겁니다.
어찌 저 혼자 예물을 먼저 받을 수 있겠소이까.
중손추仲孫湫는 공자 경보慶父의 예물을 정중히 거절하고는, 조당에
들어가 노민공魯閔公에게 인사를 올리고 제齊 나라로 돌아갔다.
주공. 신 중손추仲孫湫 노魯 나라에서 돌아왔나이다.
고생하였소. 노魯 나라 사정이 어떠하였소.
노魯 나라는 여전히 공자 경보慶父의 손안에 있어.
그를 없애야만 노魯 나라가 안정되겠나이다.
우리 제군齊軍이 쳐들어가
경보慶父를 죽이면 어떻겠소.
주공, 그것도 방법일 수 있사옵니다.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주공, 그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경보慶父가 노魯 나랏일을 전횡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고 있으므로
아직은 그를 제거할 명분이 되지 않나이다.
그보다는 계우季友가 암시한 대로
경보慶父가 스스로 죄를 짓기를 기다렸다가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나이다.
경보慶父가 아직 빌미를 주지 않는단 말이오.
주공, 신의 생각은 그러하옵니다.
주공, 경보慶父는 남의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니므로
주공, 그자는 반드시 변變을 일으킬 것입니다.
신 중손추仲孫湫 도 중보仲父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다들 그리 생각하니, 그럼 그때를 기다려봅시다.
제 130 화. 이 어지러움을 누가 막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