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 화. 늙은 말의 지혜에 따르라.
제 126 화. 늙은 말의 지혜에 따르라.
의심하고 망설일 계제가 아닌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이 제안한
대로, 늙은 말 10여 마리에 고삐를 풀어주고 마음대로 가게 하였다.
말을 몰거나 쫓지 말고, 가는 데로 내버려 둬라.
모든 군사는 저 말들의 뒤만을 따라가도록 하라.
제齊 나라 군사들은 늙은 말의 뒤를 쫓아 험한 바위산 사이를
행군하기 시작하였는데 과연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제군齊軍은 이리 틀고 저리 트는 말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죽음의
땅인 한해旱海에서 천신만고 끝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라는 사자성어는
늙은 말이 지혜롭다. 라는 뜻으로,
어느 동물이나 사람도 연륜이 깊으면
오랜 습관에서 좋은 점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전국시대 말기의 유명한 법치주의자인 한비자韓非子는 자신의
저서인 한비자韓非子의 세림說林 상편에서 이때 관중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처음으로 노마지지老馬之智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중보仲父가 없었던들 어찌 우리가
이 무서운 한해旱海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중보仲父의 지혜가 너무나 놀랍고 고맙도다.
한편 황화黃花는 제환공齊桓公과 제군齊軍을 한해旱海로 유인하는
데 성공하자, 답리가答里呵가 있는 양산陽山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황화黃花 장수. 어디로 가는 거요.
고흑高黑 장수, 그저 따라만 오시 오.
뒤따라올 주공이 염려되니 이곳에서 기다립시다.
이곳에서 우리 군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
꼭, 함께 가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아닙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어서 답리가答里呵를 잡아 죽여야 합니다.
고흑高黑은 황화黃花가 너무 빨리 가자,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일어
그는 움직이지 않고 제환공齊桓公이 뒤따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안 되겠다. 저자를 끌어내려라.
묶어서 양산陽山으로 끌고 가라.
황화黃花의 군사들이 달려들어 고흑高黑을 말 위에서 끌어 내리자
사로잡힌 고흑高黑은 답리가答里呵가 있는 양산陽山으로 끌려갔다.
임금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밀로密盧와 속매涑買는 마편산馬鞭山에서
제군齊軍과 용감하게 싸우다 모두 죽었습니다.
신은 계책대로 제환공齊桓公과 제군齊軍을 유인하여
한해旱海 속에 몰아넣고 왔습니다.
여기 또 제군齊軍 장수 고흑高黑을 사로잡아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답리가答里呵는 모든 것이 계책대로 진행이 잘된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면서 의기양양해져 고흑高黑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네가 항복하면 높은 벼슬을 주겠노라.
내가 대대로 제나라의 은혜를 입었거늘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신하가 되겠는가.
고흑高黑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답리가答里呵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다시 황화黃花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네놈의 꼬임에 빠져 여기까지 왔으나
이 몸이 죽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도다.
우리 주공이 오시는 날 너희들은 모두 다 죽고
없어질 것인즉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너희들이 항복하여 살길을 찾아라.
너희들은 시간이 많지 않도다.
황화黃花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충신인 고흑高黑을
죽이고, 답리가答里呵는 황화黃花의 군마와 합하고 재정비하고
나자 무체성無棣城을 공격하러 떠나갔다.
주공, 큰일 났습니다.
고죽국孤竹國이 쳐들어왔습니다.
제군齊軍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어떻게 답리가答里呵가 쳐들어왔단 말인가.
자, 모두 들 저놈들을 막아라.
연장공燕莊公은 많지 않은 군사로 열심히 싸웠으나, 답리가答里呵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무체성無棣城에 불을
지르고 단자산團子山을 향하여 달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땅 한해旱海를 빠져나온 제환공齊桓公은
전열을 재정비한 후 무체성無棣城을 향하여 진군하여 나갔다.
저 앞에 한 떼의 군마가 오는구나.
싸울 태세를 갖추고 공격 준비를 해라.
주공. 우리 편입니다.
공손습붕恭遜襲封 장수께서 오셨습니다.
주공. 무사하셨나이까.
고생이 많았소. 어서들 오시 오.
제환공齊桓公은 무사히 돌아온 공손습붕恭遜襲封의 군사들을 합쳐
다시 무체성無棣城에 가까이 다가가자,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백성들이 왼 일로 몰려가는 것인가.
어서 쫓아가 물어보라.
우리나라 임금이 연燕 나라 군사를 몰아내고
무체성無棣城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저희는 산속에 피난하여 있다가
이제 무체성無棣城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연장공燕莊公이 무체성無棣城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났구나.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주공. 신 관중管仲 이옵니다.
신의 계책으로 답리가答里呵를 사로잡겠나이다.
호아반虎兒班 장수는 군사들을 피난민으로 가장하여
먼저 무체성無棣城 안으로 몰래 들어가 기다리시오.
우리가 당도하여 진채를 세우거든
성안에서 불을 질러 우리와 호응하시오.
호아반虎兒班이 명령을 받고 떠나가자, 관중管仲은 장수들을
한 사람씩 호출하며 작전을 자세하게 설명하고는 명령을 내린다.
수초竪貂는 남문을 공격하고
연지連摯는 서문을 쳐라.
개방開方은 동문을 치되 북문만 남겨두어
달아날 길을 만들어 열어주도록 하라.
성보成父와 공손습붕恭遜襲封, 두 장수는
두 길로 나누어 북문 밖에 멀리 매복하고 있다가
답리가答里呵가 성을 버리고 도망치거든.
앞을 끊고 사로잡거나 죽여 버리시오.
관중管仲은 일일이 지시하고는 제환공齊桓公을 모시고 10리쯤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우고 무체성無棣城의 상황을 살피게 된다.
무체성無棣城에 들어간 답리가答里呵는 연군燕軍이 성안에 붙이고
간 불을 급히 껐으며, 장수들을 배치하고 군마를 정돈시키고 나자,
안심하면서 장수 황화黃花를 불러 함께 술을 한잔하려던 참이었다.
한밤중에 왼 함성이냐.
답리가答里呵 임금임. 큰일 났습니다.
제齊 나라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아니. 제군齊軍은 한해旱海에서 다 죽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서 예까지 왔단 말이냐.
황화黃花는 제군齊軍이 한해旱海에서 죽은 줄 알았다가 뜻밖에
그들이 살아서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성루에 올라갔다.
으음. 제군齊軍이로구나. 모두 비상을 걸어라.
장수님. 성안 곳곳에서 불이 났습니다.
뭐라고. 불낸 놈들을 모조리 잡아드려라.
밝은 낮에 백성으로 가장하고 성안으로 들어간 호아반虎兒班은
밤이 되자 군사들을 이끌고 곳곳에 불을 지르며, 곧장 남문을
지키던 고죽국孤竹國 군사들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젖혔다.
제군齊軍은 모두 성안으로 밀고 들어가라.
모든 곳을 점령하고 잘 지켜라.
수초와 호아반은 고죽국의 뒤를 쫓아라.
고죽국 임금 답리가答里呵와 황하黃花는 사태가 급박해지자 얼른
말을 타고서 무체성無棣城의 북문을 열고 급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이제 오시는가. 기다리고 있었노라.
답리가와 황화는 도망가지 말고 무릎을 꿇어라.
별안간 앞과 옆쪽에서 무수한 횃불들이 솟아오르며 금과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듯 울려 퍼지면서, 그곳에 매복하고 있던 제군齊軍과
성보成父와 공손습붕恭遜襲封이 일어나며 고함을 지른다.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된 답리가答里呵와 황화黃花는
어쩔 줄 모르며 모든 걸 포기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칼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벌 떼처럼 달려든
제齊 나라 군사들의 창에 황화黃花는 찔려 죽고,
고죽국 재상 올률고兀律古는 난전 중에 짓밟혀 죽었으며,
그런 중에 답리가答里呵는 성보成父에게 잡혔다.
싸움이 끝나면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자, 제환공齊桓公은 제나라
군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무체성無棣城 안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북방의 고죽국孤竹國 마저 완전히 멸망하게 된 것이다.
답리가答里呵는 아주, 나쁜 놈이로다.
저자의 목을 자르고 죄목을 일일이 써 붙인 후에
목과 함께 남문의 성루에 걸도록 하라.
연장공燕莊公은 뒤늦게 단자산團子山에서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제환공齊桓公에게 진심으로 승리를 축하하면서 함께 기뻐하였다.
연공燕公. 그동안 고생 많이 하시었소.
제공齊公께서는 연燕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먼 길을 달려와 다행히 영지令支와 고죽孤竹
두 나라를 무찌르셨습니다.
연공燕公, 과인은 영지令支와 고죽孤竹 두 나라의
5백 리 넓은 땅을 차지할 생각이 없소이다.
이번에 얻은 두 나라의 영토는
모두 연공燕公이 다스리도록 하시오.
아닙니다. 뜻밖의 말씀입니다.
방백方伯의 은혜를 입어 사직을 보존한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만족하는 바이온데
어찌 감히 땅까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방백方伯께서 이 땅 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연공燕公, 그렇지 않소.
이 북방은 우리 제齊 나라와 거리가 너무 멀어
연공께서 이 땅을 다스리며 북쪽의 방패가 되어주시면,
과인 또한 마음을 놓을 수가 있소이다.
호아반虎兒班은 많은 공을 세웠도다.
소천산小泉山 일대의 땅을 무종국无終國이 다스리도록 하라.
방백方伯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너무나 감사드리옵니다.
호아반虎兒班은 크게 감격感激 하며 자기의 무종국无終國으로
의기양양意氣揚揚 하게 돌아갔으며, 제군齊軍은 5일 동안 충분히
쉬고 난 후에 무체성無棣城을 떠나 제齊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공齊公이 돌아가시는 길을 배웅하겠습니다.
연공燕公은 멀리 오지 않아도 괜찮소이다.
다시 비이계鼻耳溪를 건너게 되는군요.
복룡산伏龍山 산세가 참으로 험준합니다.
이 험준한 산을 지나오다니 꿈만 같소이다.
이 모두 제공齊公의 뛰어남과 의기義氣 이지요.
연공燕公, 영지국令支國 산천이 황량하게 변하였습니다.
무도한 산융山戎의 군주로 인하여, 그 재앙이
영지令支의 초목에까지 미치게 하였구려.
제환공齊桓公과 연장공燕莊公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
험한 길을 되돌아 나오며 어느덧 규자관葵玆關에 도착하였다.
주공. 어서 오십시오.
주공. 규자관葵玆關에서 이제 쉬어가십시오.
포숙아鮑叔牙 대부 반갑소.
부족하지 않도록 군량미를 조달한 공이 너무나 컸소.
연공燕公.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규자관葵玆關은 교통요충지이니,
이곳에 수비군을 두어 지키면 어떻겠소.
제공齊公, 좋은 말씀이십니다.
제공齊公의 뜻대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연공燕公. 이제 제齊 나라 국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공齊公, 조금만 더 배웅하겠습니다.
정이 들다 보니 헤어지기가 무척 어렵소이다.
자고로 제후諸侯가 다른 제후諸侯를 배웅할 때는
자기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법이오.
과인은 연공燕公의 무례를 범하게 할 수는 없소이다.
연공燕公이 배웅 나온 50리 길의 제齊 나라 땅을
사과의 뜻으로 연공께 할양割讓 하겠소이다.
땅을 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결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연공燕公. 사양仕樣 할 수가 없는 일이외다.
제공齊公. 할 수 없이 받겠습니다. 만은
이 땅에 성을 쌓아 연유성燕留城 이라 하겠습니다.
제공齊公의 은덕恩德이 길이 남겨진다는 뜻이지요.
연燕 나라는 이때부터 서북지역의 500리 땅을 얻게 되었으며
비로써 북방의 대국이 되게 되었다.
제 127 화. 노나라 반란이 일어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