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열국지 101∼200 회

제 197 화. 큰일에 마음이 여린 결과는

서 휴 2022. 9. 11. 05:49

197 . 큰일에 마음이 여린 결과는 

 

       이극里克과 비정보邳鄭父의 제거는 신중해야 한다.

       칠여대부七閭大夫를 섣불리 건드려
       자칫 반역이 일어나서는 아니 된다.


       주공, 이극里克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자결한다면 큰 반발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한 명분이 있겠는가.
       이극里克은 해제와 탁자를 죽인 불충한 자입니다.

 

       주공, 두 군주를 죽인 자가 어찌

       벌건 대낮에 살아갈 수 있겠나이까?

 

       먼저 비정보邳鄭父를 진나라에 보내고

       난 후에 이극里克을 죽이는 것입니다.


진혜공晉惠公은 다음날 조례를 열어 신료들과 더불어 하서河西

5개 성을 주느냐, 안 주느냐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주지 않는다면 신의를 잃게 되고 또한,

       떼어준다면 우리가 너무 약한 나라로 보일 것이오.

 

       다섯 개의 성 중에서 한두 개 정도 할양하면

       진나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소?

 

       주공, 신 여이생呂飴甥 이옵니다.

       우리가 비록 한두 개의 성을 바친다 해도

       어차피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말은 듣게 됩니다.

 

       오히려 진의 분노만을 사게 되어

       자칫 전쟁을 도발시키는 일이 될 수 있으나

       주공, 이 판에 진나라가 전쟁을 걸겠습니까.

 

       주공, 아예 주지 못하겠다고 선언하십시오.

       그렇기는 하나 전쟁은 안 된다.

       좋은 방안을 찾아 국서를 써보도록 하라.

 

여이생呂飴甥과 극예郤芮 두 사람의 주장에 동조한 진혜공晉惠公

결국, 하서河西5개 성을 주지 못하겠다는 국서를 쓰게 하여

나라의 진목공秦穆公에게 보내게 했다. 여이생呂飴甥이 써서

진혜공晉惠公에게 바친 국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오夷吾가 진후秦侯에게 아룁니다.

       하서河西5개 성을 군주께 떼어주기로 약속드려

       다행히 진에 들어와 사직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 약조를 지키려고 했으나

       이곳의 원로대신들이 말하길

 

       무릇 나라의 영토란 선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주군께서 국외에 망명 공자의 처지에서

       어찌 나라의 땅을 함부로 떼어준다고 하였습니까?

 

       라고, 원로대신들 모두가 반대하며 말하고 있는바

       한동안 논쟁을 하였으나 그 뜻을 꺾을 수 없습니다.

 

       부디 진후秦侯께서 얼마간의 말미를 주신다면

       그 은혜를 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비정보邳鄭父는 자신이나 이극里克에게 약속한

약조도 지키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게 되어 분개한다.

 

       누가 과인을 위해 진에 사신으로 다녀오겠는가?

       주공, 비정보邳鄭父는 지금까지 외교를 맡아온

       훌륭한 외교의 전문가입니다.

 

       허허, 여이생呂飴甥은 별걸 다 인정하여 주는구먼.

       주공, 좋습니다. 신이 다녀오겠나이다.

 

       비정보邳鄭父는 진후秦侯에게 잘 말해주시오.

       넉넉히 준비하여 잘 다녀오도록 하시오.

 

진혜공晉惠公은 사전 계획대로 비정보邳鄭父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나라로 보내기로 하였다.

 

이때 이극里克은 조정에서 극예郤芮와 말다툼을 벌인 후에 분을

삭이지 못해 며칠째 집 안에만 틀어박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공연히 이오夷吾를 불러들여 화를 자초하였구나.
       처음 생각대로 중이重耳를 끌어들였어야 했었도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정리해보자.

       시종은 빨리 쫓아가 의논할 일이 있다고

       비정보邳鄭父에게 만나자고 전하여라.

 

단단히 결심한 이극里克은 비정보邳鄭父를 만나 의논하여 좋은

방도를 찾고자 급히 시종을 보냈다.


       나리, 비정보邳鄭父께선 오늘 아침에

       사신으로 진나라로 떠나셨다 합니다.

 

       아차, 이거 한발 늦었구나.

       어서 빨리 쫓아가 보자.


시종의 보고를 받은 이극里克은 재빨리 수레에 올라탔으며, 그의

뒤를 쫓아 교외까지 나가보았으나, 끝내 비정보邳鄭父의 행렬을

따라잡지 못하고 성안으로 돌아와 집에 가게 된다.


       아니, 집 앞에 웬 무장 군사들인가.

       이극里克 장수, 어서 오십시오.

 

       여이생呂飴甥, 우리 집에 웬일인가.

       주공의 명을 받들고 왔소이다.

 

       무슨 일인가 어서 말해보시오.

       주공의 칙서勅書를 받으시오.

 

이극里克은 여이생呂飴甥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안 좋은

예감을 직감하면서 칙서勅書를 읽기 시작하였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과인이 어찌

       군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두 군주와 한 대신을 죽였다.

       그런 신하로 인하여 백성들 앞에서

       군주 노릇 하기가 얼마나 곤란한지 아는가?

 

칙서勅書를 읽자 이극里克은 잠시 순식筍息의 얼굴을 떠올렸으나,

이미 진혜공晉惠公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날이 이리 빨리 닥칠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러나 이런 죄목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랴. 모두 나의 탓이로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얼 하겠는가.

 

       세자 신생申生의 원수를 갚지 않았는가.

       내가 할 일은 이제 다 한 셈이다.

 

       어차피 굴욕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도다.

       민심이 흉흉하니 나의 원수는 백성이 갚아주리라.

       이제, 미련 따위는 두지 말고 떠나자.


이극里克은 조용히 웃으며 자세를 바로 하고는 여이생呂飴甥

내미는 단검을 받아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단검은 시퍼렇게 햇빛에 번뜩였다.

       이극里克은 단검을 입에 물었다.

 

       순간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엎어졌다.
       단검의 칼끝이 목 뒤에서 보였다.


진혜공晉惠公은 방을 붙여, 이극里克이 지난날 두 어린 군주와

충신이었던 순식筍息을 죽인 일로 크게 뉘우치고, 스스로 자진自盡

하였다고 공표하였으나, 그러나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이 방을 본 많은 군신이 불만을 품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자진自盡 하게 강요하지 않았는가.

 

       이 나쁜 놈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도다.

       우리 칠여대부는 반드시 복수하여야 하오.

 

       참으시오. 비정보邳鄭父가 진나라에 있소.

       그가 돌아오거든. 결행합시다.

 

       우리가 결행하는 비밀은 꼭 지켜야 하오.

       그렇지요. 반드시 지켜 복수 해야 합니다.

 

이극里克과 노선을 같이하던 칠여대부 들은 분노했으며, 더구나

이 같은 비극이 그들에게도 언제 닥칠지 몰라 불안하게 되었다.

칠여대부에게는 진혜공晉惠公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지켜낼 만한

힘이 없었으므로, 모두 모여 대책을 세우고자 깊이 토론하게 된다.


       이참에 칠여대부 七閭大夫도 죽여버리시오.
       주공, 아직은 시기적으로 빠릅니다.

 

       비정보邳鄭父가 없는 사이에

       칠여대부七閭大夫 그 일당을 모두 제거하면,

 

       비정보邳鄭父가 이를 알게 될 것이며,

       틀림없이 의심하여 자기 계획을 짤 것이므로

       진나라에서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릅니다.


진혜공晉惠公은 내친김에 이극里克을 추종하던 칠여대부는 물론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조리 죽여 없애려 했다.


그러나 진혜공晉惠公의 모신謀臣 인 극예郤芮는 머리도 좋고 술수도

뛰어나, 진혜공晉惠公을 진정시키면서 모든 것을 조정했다.

 

       주공, 일단 기다려보셔야 하옵니다.

       비정보邳鄭父가 돌아오면 그 동태를 보아

       칠여대부와 함께 동시에 처단하여야 합니다.


       그 사이에 칠여대부가 백성을 선동하여

       반역을 일으키면 어찌하겠는가?


       주공, 백성들이 이극里克을 동정하는 것은

       세자 신생申生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지,

       결코, 이극里克을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주공, 세자 신생申生의 시신이 포성袌城 풀밭에

       쓸쓸히 묻혀 있다는 소문입니다.

 

       주공, 세자 신생申生의 묘를 개장하여 주시고,

       시호를 내리시어 그 원통한 원혼을 위로하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은 주공의 어진 덕을 칭송할 것이며

       이극里克의 죽음 따위는 금방 잊어버릴 것입니다.

       허 어, 정말 묘책이로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했는데

       민심도 흉흉 한판에 정말 좋은 방안이로다.

 

       그러면 누구를 보내 신생申生의 묘를 개장할 것인가.

       주공, 저의 동생 극걸郤乞을 보내시옵소서.

 

진혜공晉惠公은 극예郤芮의 종제인 극걸郤乞을 불러, 포성袌城

가서, 세자 신생申生의 묘를 개장하고 돌아올 것을 명했다.


       극걸郤乞은 세자 신생申生의 묘를 개장하고

       원로대신 호돌狐突은 좋은 묘비를 세우고 돌아오시오.

 

       효와 경을 두루 갖춘 공이라 하여
       세자 신생申生의 시호를 공세자恭世子로 정하노라.


극걸郤乞은 가장 좋은 관과 수의壽衣 등을 준비하여 포성袌城

들판에 묻혀 있는 신생申生의 무덤으로 찾아갔다.


       나리, 이거 보십시오.

       세자 신생申生의 모습이 산사람과 같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산사람과 같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냄새가 이리 심한가.

       나리, 코를 틀어막아도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극걸郤乞은 신생申生의 시신이 흡사 잠자고 있는 듯한 모습이면서

또한, 시체에서 견딜 수 없는 악취가 나고 있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신생申生의 시신 앞에 엎드려 향을 피우며 기도를 올렸다.


       세자께서 살아생전에 한없이 정결하시더니

       죽어서는 어찌 이다지도 불결하십니까?

 

       이 불결한 냄새가 세자의 것이 아니라면

       일꾼들을 놀라게 하지 말아주시옵소서.


극걸郤乞이 분향을 마치자 숨을 쉴 수 없었던 악취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아름다운 향기가 묘 주위로 퍼졌다.

 

      포성袌城 사람들은 모두가 성안을 비우고

       슬픈 곡을 하면서 장례 행렬을 따랐다.

 

극걸郤乞은 신생申生의 시신을 정성스레 염하고 입관까지 마친 뒤

고원高原에다 새로운 묘를 마련하며 이장을 끝냈다.

 

       장례가 끝난 지 3일 만에 호돌狐突

       제사에 쓸 물건들을 가지고 당도했다.

 

       원로대신 호돌狐突은 명에 따라

       위패를 세우고 존영에게 절을 한 다음

       진공태자의묘 晉共太子之墓 라 쓴 비석을 세웠다.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끝낸 호돌狐突이 고원高原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뽀얀 안개가 밀려오면서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는데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한 수레가 가까이 다가왔다.

 

       국구國舅, 호돌狐突 어른 어서 오십시오.

       아니, 태부太傅 두원관杜原款이 아니시오.

 

       국구國舅, 세자께서 모셔오라 하십니다.

       같이 가시지요.

 

호돌狐突은 백발이 성성한 두원관杜原款이 진헌공晉獻公에 죽임을

당한 사람인 걸 모르고 따라갔으며 한 수레 앞에 멈추게 되었다.

 

       세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저 수레에 타고 계십니다.

   

호돌狐突이 수레에 다가가자, 신생이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앉아있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했다.

   

       외조부께선 아직도 이 몸을 생각하십니까?    

       세자, 세자의 원통함은 모든 이가 다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사옵니다.

       이 호돌이 감히 잊을 리 있겠습니까?

 

198 . 지피지기가 무슨 뜻인가.